저잣거리에서 쫓겨나는 'KBS'와 '노'가 남긴 것들..

by TVNEWS posted Jun 13,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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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초년을 벗어나지 못한, 입사 3년차. 그렇지만 대한민국 사회를 두루(?) 경험하는 시간으로 치자면 크게 모자람이 없었다. 선배들이 술자리에서 곧잘 늘어놓는 무용담도 이제 제법 내 것이 됐다. 말하자면 발언 통로의 발굴(물론 이것이 가장 큰 과제이긴 하지만)을 제외하면 기자로서 꿀릴 게 없다는 얘기이다.

카메라 기자는 ‘현장’을 피할 수 없다. 사실 이것은 가장 위험하고 괴로운 일이면서 동시에 가장 떳떳하고 보람된 일이기도 하다. 아주 짧은 기자 생활이긴 하지만, 나 역시 현장에서 생명을 걸고 일해왔다. 사실 그것은 카메라 기자의 숙명이다. 화재 현장이나 살벌한(?)시위 현장에서 경찰은 머뭇거릴 수 있어도 카메라 기자는 그럴 수 없다. 카메라 기자는 앵글 안에 ‘순간’을 담기 위해 밥 먹듯이 이성을 버린다.

그런 카메라 기자들에게, 최근 벌어지는 일들은 대단히 모욕적이다. 사실 시민들이 기자를 신뢰하지 않는 관습이야 새로울 게 있는가? 스스로 보수라고 말하는 가짜 언론인들이 해방 이래 지금까지 ‘언론’을 너무 먹칠해왔다. 내가 입사해서 아주 조금이라도 당당했던 것은 적어도 내가 선 곳이 가짜 언론 지대는 아니라는 시민들의 지지 때문이었다. 오직 그것 때문에 입사를 지원했고 선배들을 존경했다. 하지만 요즘의 일련의 상황은 매우 참담하다. 시민들의 화살은 이제 KBS를 향하고 있다. 술 취한 행인이 KBS냐고 시비를 걸고 카메라의 로고를 떼고 취재를 나가고 있다. KBS가 저잣거리로부터 외면 당하고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모든 게 ‘자업자득’이다. 분명히 KBS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금 대한민국 기자들은 과연 얼마나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고 창의적으로 일하고 있는가? 기자들이 우리 사회의 그늘을 걷어내고 스스로 불씨가 돼 사라질 준비가 돼 있는가? 불행한 일이지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KBS는 한 술 더 떠서 한참 과거로 회귀했다. 멍청한 일부 KBS인들은 몰라도 똑똑한 몇몇 시민들은 눈치를 챈 모양이다.

나는 지난 회보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검찰 소환 조사에 대한 술회를 썼다. 그 글이 지면으로 나간 지 한 달도 채 안 돼 서거 사태가 발생했다. 마음이 몹시 슬프고 괴롭다. 현장에서 MBC는 들어오고 KBS는 나가라고 해서가 아니다. 사실 그런 분위기가 최근의 일은 아니다. 한 명의 자연인으로서, 또 기자로서 가장 절망스러운 것은 과연 우리에게 미래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고인이 된 노무현은 서거 몇 달 전부터 ‘정치하지 마라’는 말을 했다. 공과에 대한 평가를 떠나서, 적어도 평생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스스로 불씨가 돼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고 공공연히 말하던 사람이, 평소 자신의 스타일 대로 몸을 던졌다. 하지만 언제나 ‘희망’을 전제로 자신을 던졌던 저항적 소신의 정치인이 마지막 남긴 말은 온통 ‘절망’만을 담고 있다. 이것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솔직히 나 역시, 특별히 큰 희망의 단서가 없다. 이제 와서 검찰이 어떻니, 청와대가 어떻니, 언론이 어떻니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매일 같이 확인하는 절망의 그늘 속에서 멈출 수가 없어 그저 걸을 뿐이다. 물론 걷다 보면 아주 잠깐 햇살을 만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언제나 밝은 햇살이 내리쬐는, 이른바 ‘양지’를 확실하게 획득할 수 있다는 희망을, 지금으로서는 갖기 어렵다. 어쩌면 ‘혁명’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더욱 우울하다.

노는 떠났다. 바위 위에서 산화했다. 대한민국이 또 시끄럽다. 신문에서 방송 뉴스에서 토론에서 논객들이 떠든다. 보수도 있고 진보도 있다. 무엇이 달라질 수 있을까? 무엇이 변할까? 그러나 여전히 절망만이 가슴 언저리에 맴돈다. 당분간은 그럴 것 같다.

KBS 영상취재국 기자 김정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