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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저널리즘이 아니다

‘영상기자들의 묵시록’

 

 

영상보도 가이드라인(book).jpg

 

 

 대충 짐작은 했지만 현실은 더욱 열악했다. <영상보도 가이드라인> 작업을 하면서 듣게 된 취재현장에 관한 이야기는 외부자로서 다소 충격적이었다. 대다수 영상기자들이 오랜 기간 겪었으며 지금도 겪고 있을 현실은 가이드라인 곳곳에 반영되었다. 그래서 이번 가이드라인을‘ 영상기자들의 묵시록’이라 부르고 싶다.
 

 ‘인권보도준칙’‘, 재난보도준칙’‘, 성폭력범죄보도 세부권고기준’ 등 지금까지 언론 관련 자율규범은 여러 차례 만들어졌다. 모두 나름의 의미가 있는 기준이지만 이들과 확연히 구별되는 <영상보도 가이드라인>만의 의의를 두 가지로 요약해보았다.

 

 먼저, 영상보도와 영상기자에게만 집중했다. 모든 언론보도가 대체로 그렇겠지만 방송뉴스 역시 일종의 협업 산물이다. 영상기자 외에도 취재기자가 있고 편집·디자인 등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위로는 부장과 국장이 있다. 지금까지 나온 각종 준칙·기준·강령 등은 이러한 기자 내지 언론인의 직역을 세밀하게 구분하지 않고 두리뭉실하게 다루었다.
 

 특정 직역에 집중해서 구체적으로 자세히 이야기하기란 해당 직역에 대한 풍부한 경험과 전문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다. 영상취재현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베테랑 현역 기자 세 명, MBC 나준영 부장과 SBS 조춘동 차장, KBS 윤성구 기자의 내공이 가이드라인 전반에 깊게 스며있다. 원고 집필은 주로 교수와 법률가가 맡았는데 여기에 현장의 살아있는 감각이 더해져 생동감 있는 가이드라인이 되었다.
 

 영상이 대세가 된 지 이미 오래다. 방송뉴스는 말할 것도 없고, 다른 매체에서도 영상을 중요하게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영상의 중요성이 방송사 내부적으로 영상기자들의 위상에 제대로 반영되어 있는지 의문이다. 영상이 중요한만큼 이를 다루는 영상기자에게도 그에 걸맞은 역할과 권한이 부여되어야 한다. 앞으로 우리 언론계가 주목하고 개선해 나가야 할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다음으로, 기자 자신의 생명과 안전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인격 또한 존중받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가이드라인이라고 하면 주로 취재원의 권리를 어떻게 존중해야 하는지를 다루기 마련이다. 물론, 이번 가이드라인에는 저널리즘과 최신 판례, 조정사례 등을 토대로 취재원의 인격권 보호에 관한 진일보한 기준을 제시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이와 동시에, 다른 준칙·기준·강령 등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기자 자신의 초상권 보호 관련 내용도 있고 또 영상기자의 생명과 안전의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었다.

 

 이번 가이드라인 작업을 함께 했던 KBS 윤성구 기자는 지난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 취재를 다녀왔다. 출장이 결정되면 항공편 예약은 물론, 숙박·식사 등 출장에 필요한 제반 사항을 체크하고 준비하는 것을 스스로 해야 한다고 한다. 더욱 심각한 것은 현장에서 기자의 건강과 안전이 전혀 확보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실제로 이번 북미 정상회담 당시 윤 기자와 함께 현장을 지키고 있던 타사 기자가 쓰러지는 응급상황이 발생했다.
 

 집필진 중 한 사람인 SBS 조춘동 차장의 이야기는 더군다나 충격적이다. 조 차장이 방송사에 막 입사했을 무렵,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 현장에 급파된 조 차장은 극적으로 구조된 생존자가 머무르고 있었던 공간을 찍어오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한다. 붕괴 가능성이 있어 머뭇거리는 사이, 이를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선배 기자가 카메라를 낚아채 현장에 진입, 촬영을 마치고 나왔다. 이 광경을 지켜 본 다른 동료는 결국 정신적 충격으로 회사를 그만두기에 이르렀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 방사능에 피폭될 위험이 큰 현장에 기자를 급파하면서 방송사가 챙겨준 것이라고는 목장갑 한 켤레가 전부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니 말문이 막혔다. 그러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인격권을 존중받아본 경험이 없는 우리 기자들에게 취재원을 비롯한 일반 시민들의 인격권을 존중하라는 요청은 얼마나 공허하면서 이율배반적이었으며 자기모순이었던가. 연차가 많은 기자가 자랑했던, 숱한 고비와 위험을 극복한 과거의 무용담들은 어쩌면 참된 기자 정신의 발현이 아닌, 그저 우리 사회의 오랜 관행으로 자리 잡은 군대 문화의 잔재는 아니었을까 싶다.
 

 기자라면 응당 자신의 안전과 생명의 위험을 감수해야하는 것이 아니며, 그것을 강요하는 것이 저널리즘인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래서 가이드라인에 단호하고 결연한 문장으로 이렇게 썼다‘. 단지 영상을 확보하기 위해 계획에 없는 군이나 경찰의 기동을 요구하는 것은 올바른 저널리즘이 아니다.’(영상보도 가이드라인 60쪽‘) 건물이 붕괴한 사고 현장이다. 회사는 붕괴한 건물에 들어가 취재하라고 한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안 된다. 안 된다고 말해야 한다. 데스크는 안 된다고 말하는 현장의 반응을 수용해야 한다.’(영상보도 가이드라인 67쪽)
 

 사업 초기부터 차년도 작업을 염두에 두고 진행했기 때문에 아직 보완할 부분들이 있다. 우선, 체계적인 측면에서 총칙을 둘 필요가 있다. 가이드라인 전체를 관통하는 정신이라든가, 보편적인 원칙을 총칙에서 제시하는 것이 좋겠다. 또, 현재 다루고 있는 각론 분야(위험·전시·재난·범죄·식품안전·비즈니스·외부 이해관계 등) 이외에 우리 언론 현실에서 시급하게 정리되어야 할 문제와 주제를 선정하여 추가할 필요성이 있다.
 

 끝으로 가이드라인은 만드는 것보다 실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일단 현재까지의 이번 가이드라인에 대한 일선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애써 만든 가이드라인의 내용을 알리고, 교육하고, 실천에 옮겨지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앞으로 협회 차원에서 더욱 노력해야 할 점이다.

 

 

양재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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