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카메라기자 55명의 글 "그때 카메라가 내 눈물을 닦아 주었습니다"를 발간하며

by 안양수 posted Jan 17,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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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카메라가 내 눈물을 닦아 주었습니다」를 발간하며...

“카메라기자들의 마음만은 생명력을 잃지 않고 전해지길”

 카메라기자협회 지원으로 험지교육을 마치고 돌아와 출근하는 길. 올림픽대로는 꽉 막혀있었지만 가을햇살이 너무 포근해 짜증스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막히는 길 위에서 이런저런 행복한 상상에 빠져들었다. 그때 문득, 지금까지 다녔던 해외출장들이 떠올랐다. 카메라기자가 된 후 12년, 참 많은 곳을 다녀왔구나! 기억을 되살리려 했지만 두세 곳을 제외하곤 기록으로 남겨놓지를 않아 막연하기만 할뿐 어디서 누구를 만났는지도 알 수가 없다. 사진으로나마 남겨두었으면.... 너무 아쉬웠다. 책 한권 써도 될 만한 이야기꺼리들이 게으름과 무관심 때문에 한두 장 채울 만큼도 기억에 남아있질 않다니....

 사무실에 도착해 부서원들에게 출근길에서 느꼈던 심정을 이야기하며, 혼자서는 힘들지만 모두가 함께하면 책 한권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제안을 했다. 당시 팀장인 장준영 부장을

 비롯한 여러분이 카메라기자들의 해외출장 경험담을 소재로 책을 써보자는데 의견을 모아주었다. 작년 9월의 일이다. 돌이켜보면 팀원 모두가 너무도 자랑스럽게 느껴진 순간이다.

 한명이 글 하나씩만 쓰면 당장 3개월여 남은 연말에도 출간이 가능할 듯싶었다. 저술계획서를 만들어 여러 출판담당자들에게 메일을 띠우기 시작했다. 돌아온 답변은 대부분 콘셉트는 마음에 들지만 저자가 너무 많아 어렵다는 것이었다. 생각만큼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제안자의 입장에서 가장 크게 간과했던 부분이 바로 이 점이다. 오히려 글도 빨리 쓸 수 있고 쉬울 것이라 싶었던 일이 가장 큰 장애가 될 줄이야. 저자가 많은 출판을 가장 꺼려한다는 것을 출판사가 정해지고 한참 뒤에야 알게 되었다. 두 세 명만 되도 각자 다른 의견을 통일하기 힘든데 50명이 넘는 글쓰기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구상한 콘셉트 그 자체를 받아들여 돈 들이지 않고 출판할 수 있는 길이 막힌 것이다. 난감했다. 언론재단의 문을 두드려보기로 했다. 몇 군데에서 퇴짜를 맞고 시름에 잠겨있을 무렵 ‘삼성언론재단’으로부터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회사에서도 도움을 주었다. 밑천은 마련된 셈이다.

 이젠 글쓰기만 남았다. 한 분 한 분 쓰기 시작한 글감이 모여 55개가 되었다. 변영우 본부장을 비롯해 이형기 팀장, 김영창 팀장, 선후배 동료 대부분이 자신들의 소중한 이야기보따리를 아낌없이 풀어 주었다. 그렇게 해서 “그때 카메라가 내 눈물을 닦아 주었습니다”라는 책으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나의 눈물을, 너의 눈물을, 그리고 우리의 눈물을 담은 차가운 카메라 속의 뜨거운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말이다.

 카메라기자 55명의 마일리지를 얼핏 계산해보았다. 천만마일은 족히 되지 않을까 싶다. 그 거리만큼이나 거기에 깃든 각자의 사연들은 얼마나 다양할까? 남극을 비롯해 오지, 지진과 쓰나미로 상처입고 고통 받은 사람들을 취재하면서 느낀 가슴시린 이야기들, 공안에 쫒기고 전쟁 중인 땅에 억류되어 죽을 고비를 넘겨야 했던 사선에서의 기억 등 카메라기자만이 겪을 수 있었던 이야기들이 실려 있다. 경험 있는 카메라기자라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자기고백도 진솔하게 담겨있다.

 IMF 구제금융 때보다 힘든 시기라는 탄식이 곳곳에서 쏟아져 나온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의 카메라는 차갑기보다 나와 너, 우리 모두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온기로 가득해야 한다. 우리의 책이 지향하고자 했던 대목이다. 비록 카메라는 차갑지만, 그 속을 가득 채운 카메라기자들의 시선은 너무도 따뜻하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다. 투박한 글이지만 카메라기자들의 마음만은 생명력을 잃지 않고 생생하게 전해지리라 믿는다.

 또 하나의 바람은 우리의 책을 통해 일반 독자들이 카메라기자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들인지 좀 더 알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줄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보통사람들은 카메라를 들고 일하는 사람들을 흔히 감독(카메라감독)으로 알고 감독님이라 부른다. 호칭의 호불호를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업무의 영역이 확연히 구분되어 있음에도 일반인들은 잘 알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개인적으로도 감독님이란 호칭이 어색하고 난감할 때가 있지만, 그때마다 일일이 차이점을 설명해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가 기자라는 본연의 책임과 역할을 다한다면 그 걸로 족하다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이름 붙여진 카메라기자라는 호칭도 소중한 것이기에 그렇게 불려 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

조정영 / SBS 영상취재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