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출장

by KVJA posted Jul 02,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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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출장

 

 

 “카메라 기자 인생 30년에 가장 굴욕적이었어.”

 “오죽했으면 내가 출장기간에 억울한 부분을 하루하루 메모를 해놨다니까.”

 “이런 출장 인지도 모르고 갔지.”

 “갔다 와서 엄청 싸우고 다신 안 간다고 했어.”

 “취재기자는 몰라도 우리한테는 사역이자 봉사 같은 출장이야.”

 

 영상기자들이 이렇게 말하는 출장이 있다. 스포츠팀에서 말하는 ‘협회 풀 출장’이다. 종편을 비롯해 다양한 미디어가 생기기 전, 그리고 김영란법 이전까지는 큰 문제가 없는 출장이었을지 모르나 여러 형태의 미디어가 생기고 권익위의 새로운 해석이 나오면서 부활된 이 출장은 적어도 영상기자의 입장에선‘ 이상한 출장’이다.

 

 이 출장은 기본적인 풀의 형태조차 갖추지 못했다. 순번은 물론이거니와 장비나 송출에 대한 요구 수준도 서로 맞지 않고 협회의 가이드라인에도 맞는 것이 없다. 각사 취재부 이해가 섞여 순번이 미뤄지고 당겨지기도 한다. 사내 규정으로 인해 후원 출장 자체를 가지 못하는 방송사도 있다. 제대로 된 순번이나 절차, 원칙없이 누군가에 의해 촬영된 ‘풀’ 영상은 종목별 협회 웹하드를 통해 회원사 모두에게 공유된다. 그러니 더욱 순번대로 안 돌아가는지도 모르겠다. 사례를 찾아 본 3년 동안 한 번도 안 간 회사도 있고 1년에 세 번을 간 회사도 있었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대회 중간 갑자기 남북단일팀이 되는 바람에 이슈가 된 종목의 풀 출장이 있었다. 안 그래도 정신없는 와중에 무임승차하는 회사들마저 요구사항을 쏟아내 현장에서 촬영, 송출을 혼자 해야 하는 영상기자는 몸도 마음도 상처를 받아야 했다. 같은 회사의 취재기자에게는 좋은 기회이니 그것을 외면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풀’ 상황에서 함께하는 영상기자의 소신과 기준은 외면받고 있는 상황이다.

 

 종편을 포함한 방송의 스포츠 취재기자들은 스포츠 기자 연맹 소속이고, 종목별로는 더 많은 미디어가 포함된 협회 출입기자단이 존재한다. 바로 이 기자단이 협회 후원 출장의 대상자가 된다. 종목별로 다르지만 40여 명 안팎이다. 스포티비 VJ를 포함한 11개 방송사가 (상황에 따라 거를 수 있는) 순번을 돌린다.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은 이 영상 풀에서 나온 결과물은 풀 순번으로 촬영도 하지 않는 인터넷 매체나 신문사도 사용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오히려 그들이 유튜브 채널이나 인터뷰 코너에서 협회사보다 더 많은 양을 소화하기도 한다. 모든 풀 출장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영상이 협회 웹하드를 통해 모든 협회 소속 기자에게 공유되는 것은 이미 기본적인 틀이 된 것으로 보인다.

 

 여러모로 특별한 형태의 출장이라고 하더라도 협회가 오디오맨(취재 스태프)을 제외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이것은 보통 사내에서 경비 절감을 위해 핸디캠을 사용하는 것과는 다르다. 많은 회사가 영상을 공유해야 하는 상황에서 해당 스포츠 협회에 고용된 카메라 크루처럼 내 능력이 사용되어야 할까? 어느 스포츠 협회의 비용 문제 때문에 최상의 결과가 아닌 영상을 나누고 싶진 않다. 아마도 이런 이유 때문에 많은 영상기자들이 체력적 부담과 어려움을 감수하고 ENG 촬영을 고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느 날 걸려온 취재기자의 전화로 알게 된 협회 풀 출장. 기자는 내게 말했다. 일 년에 한 번 올까말까 한 순번의 출장이라고. 그럼 다음 순번은 십년은 넘어서 오겠네?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물론 출장을 한 번도 가지 않고 영상을 문제없이 그림을 받아온 회사들이나 영상기자 문제로 출장 자체가 시끄러워지는 것을 원치 않는 취재기자에게는 이러한 문제 제기 자체가 불편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단순한 몽니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식의 풀 출장은 문제가 많음을 부정할 수 없다.

 

 회원사 협회원들, 협회보를 읽는 동료 영상기자 중에 이런 출장에 대해 정확한 유형조차 모르고 현장에 가서 당황하거나 기자와 갈등이 생기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방송시장의 변화라는 미명 아래 여러 환경, 노동의 조건들이 변해왔다. 영상기자들의 노동 터전은 점점 열악해지고 있다. 물론 개중엔 받아들여야 할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받아들일 수 없는 것, 받아들이기 힘든 것, 개선이 필요한 것에 대해서는 협회원 모두가 관심을 갖고 토론하여 적극적으로 문제를 풀어갔으면 한다. 다수의 관심이 모인다면 부당하거나 잘못된 것을 고쳐나갈 수 있는 큰 힘이 될 테니까.

 

 

최준식 / SBS    (증명사진) 최준식.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