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 100年史 속 봉준호, 그리고 김기영

by KVJA posted May 07,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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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 100年史 속 봉준호, 그리고 김기영


-잊혀진 씨네아스트 김기영-



 사진(MBN 갈무리).png 김기영 기획전 포스터(사진).png


▲ 사진(MBN뉴스 갈무리)                                      ▲ 김기영 기획전 포스터(사진)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최고상인 작품상과 칸 황금종려상을 동시에 석권했다. 영화 역사상 이 둘을 동시 석권한 작품은 1945년 빌리 와일더의 잃어버린 주말, 1955년 델버트 만의 주말, 단 두 작품밖에 없다. 기생충은 무려 64년 만에 이 놀라운 기록을 새로 썼다. 한국 영화 역사 100년이 되는 해에 일어난 겹경사였다. 봉준호 감독은 얼떨떨한 얼굴로 연설을 시작했고 이내 특유의 재치로 스콜시즈 감독에 대한 찬양사를 읊었다. 아카데미와 유독 인연이 없었던 스콜세지는 그날 봉준호의 언급으로 박수 갈채를 받는 이색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승자와 패자의 경계가 사라지고 모두가 하나가 되는 순간이었다.


 봉 감독은 제72회 칸영화제 시상식 이후 기자회견에서도 고전 감독을 찬양한 바 있었다. “이번 수상을 통해 아시아에 일본의 구로사와 아키라, 중국의 장이머우 감독만 있는 것이 아니라 故 김기영 감독처럼 한국에도 외국 거장을 능가하는 마스터가 존재 한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길 바란다."


 김기영의 女들


 김기영만큼 자기 세계에 끊임없이 집착한 감독은 드물다. 하녀, 화녀, 화녀82, 충녀 그리고 육식동물 등으로 이어지는 동어반복. 그는 독보적인 스타일리스트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녔다. 김기영의 영화에서 남자들은 항상 불안해한다. 그들은 우유부단하고 무능력하다. 반면 그의 영화 속 여자들은 가부장의 위기, 우유부단한 남자들 속에서 점점 미쳐간다. 그의 영화 속에서 남성과 여성의 역할은 언제나 고정적이다. 등장인물들은 집단화 되어 있다. 모든 인물은 감독이 의도한 상징으로 읽힌다. 상징은 김기영의 작품에 굉장히 중요한 요소이다. 부르주아 가정의 계단. 계단을 통해 인물들은 상승과 하락을 반복한다. 이 반복은 점점 가정을 몰락시킨다. 계단은 수직의 불안한 이미지를 상징한다. 봉준호는 김기영의 이 상징에서 기생충의 전체 구조에 대한 영감을 받았노라고 여러 차례 말한 바 있다.


 시대 정서의 영화들


 김기영 영화는 그로테스크하다는 평을 들었지만 그렇다고 시대와 동떨어져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시대상이 적극 반영되었다.“ <하녀>도 그 시대의 상황이 반영된 영화다. 그 당시는 전라도, 경상도에서 처녀들이 무작정 서울로 올라올 때다... 그런 시대를 알지 못하면 이 영화의 현실감을 이해하지 못한다”라며 김기영 본인이 직접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다. 당시 관객들이 영화를 보다 일어나“ 저년 죽여라”를 외칠 정도였다.  <살인 나비를 쫓는 여자>에서는 청년들의 무기력함을 그려낸다.“ 라면은 먹어 도 먹어도 배가 고프니, 차라리 죽는 게 낫겠군” 주인공은 라면을 끊임없이 먹어댄다. 아무리 먹어도 공허함이 채워지지는 않는다.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나라야마 부시코> 보다 20년 먼저 만들어진 <고려장>. 김기영은 이 영화가 단순히 원시시대를 동화처럼 묘사한 듯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4·19 정신, 즉 시대적 억압에 대한 저항 정신을 다룬 측면도 있노라고 밝혔다.


 자신만의 독특한 영화를 만든 김기영은 한국영화 암흑기와 함께 홀연 사라진다. 그러다 1997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김기영 회고전’을 통해 부활한다. 1998년 2월 5일, 명륜동 본가가 불에 전소한다. 김기영은 이 화재로 너무나도 영화적인 죽음을 맞이한다. 차기 작으로 준비하고 있던 “악녀”의 원고를 손에서 놓지 않은 채였다. 2020년 한국영화 101주년과 봉준호 감독의 쾌거로 다시 한번 김기영은 주목받는다. 코로나 감염병 때문에 전 세계가 신음 중인 지금 만약 김기영이 살아 있다면 어떤 상징으로 이 시 대를 그렸을까? 아무리 먹어도 배부를 수 없는 라면. 그 라면을 먹으며 배고픔 중에도 삶의 의지를 꺾지 않고 당당히 거리를 걷는 주인공? 김기영이 그렸을 이 시대를 상상해 보는 것으로 김기영, 그리고 김기영의 영화를 추모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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