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과 닮아 있는 정치

by KVJA posted May 07,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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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과 닮아 있는 정치




 사전투표장에 갔다. 한 시간 일찍 도착해 선거관리위원회 직원, 정의당 대변인과 취재 동선 등에 대해서 논의했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가 투표하러 투표장에 오려면 아직 30여 분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26살인 오디오맨에게 시간 괜찮으니 미리 투표하라고 하자 별로 하고 싶지 않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냥 다들 비슷한 얘기만 하는 것 같아요. 누가 되어도 다 똑같아서 별로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네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내가 “너, 몇 개월 후면 2년 계약 만기잖아. 이런 부분을 대변해 줄 수 있는 정당이 있는지 찾아봐. 네가 직업을 잡으면 2년마다 옮겨 다니지 않아도 안정적으로 월급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하는…”라고 말하자. 그는 “그런 정당이 의석을 잡을 수 있을까요?”라고 다시 물었다.


 한 청년의 낮아진 정치 효능감. 이 오디오맨은 1년 이상 국회 출입하면서 정치인의 말을 자주 경험했다. 작년에 패스트트랙 법안 상정으로 여야 간 몸싸움을 하며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조국 사태, 윤석열 청문회, 예산안 등에서 치열했던 현장도 경험했다. 그런데도 뽑을 사람과 정당이 없다? 이 청년을 위해 목소리를 낸 정당 혹은 의원이 없었던 걸까? 


우리 정치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려면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지난 총선 투표에서 20대 인구 비율은 약 13%였다. 하지만 당선 결과 20대 국회의원은 1명에 불과했다. 국회의원 평균 연령은 55세, 국민 평균 연령은 40.8세. 국회의원 평균 재산은 41억.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의원 중 다주택자 비율은 40%를 넘는다.


여성 의원 비율은 17%에 불과하다. 2019년 1월 기준으로 국제의원연맹(IPU)의 통계에 따르면 세계 평균 여성의원 비율은 24.3%에 달한다. 우리의 여성 의원 수는 이를 크게 밑돈다. 우리나라 여성 의원 비율은 세계 121위이다. 20대 국회에서 법조인의 비율은 15%였다. 사무직을 제외하면 대한민국은 여성들은‘ 매장 판매 종사자’로, 남성의 경우‘ 운전기사’로 일하는 비율이 가장 높다.


그러나 이 직종에서 국회에 진출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다문화가정은 전체 가정의 2%를 차지하고 있다. 20대 국회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의원은 없었다. 그렇다면 주부를 대표하는 의원이 있었던가?


 21대 국회의원 후보들을 살펴보면 20대 상황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거대 양당의 여성 후보 비율은 10%뿐이다. 후보 평균 나이는 54.2세. 50대 후보는 638명, 60대 후보는 346명이다. 20대 후보는 27명, 30대 후보는 88명에 불과했다.


 2019년 12월 27일.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했다. 완전하진 않지만, 민의를 더 온전하게 반영하기 위한 시도로 평가할 수 있을 듯하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진통 끝에 통과했지만 시행 첫 선거부터 취지가 무색해졌다. 거대 정당들이 비례 위성정당을 창당하면서 군소정당의 국회 진출이라는 애초 취지가 퇴색된 것이다.


덕분에 국회 풀단도 일이 늘었다. 1~2개 이상의 위성정당을 더 커버해야 하는 정신없는 총선 기간을 보낸 것이다. 만약 총선 후 거대 양당에 위성정당들이 통합된다면 결과 적으로는 공직선거법 개정안 이전의 양당 구조로 되돌아가는 것이 된다.


우리 국회는 대부분 지역을 대표하는 의원들로 채워지고 있다. 유권자들은 이런 선거법 틀 안에서 사실상 ‘최고의 지역 영업사원 대표’를 뽑고 있다. 의회 구성 방법으로 이것이 선인지 의문이다.


 입법권자는 미래를 제시하는 이들이다. 사회 현상에 대한 민의를 그때그때 민감하게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각 위원회를 통해서 법령을 제정, 비준, 개정 또는 폐지하는 역할도 한다. 제정된 법에 따라서는 이익의 지도가 민감하게 뒤바뀔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논의 대상에서조차 소외된 유권자가 있을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선거 슬로건은 코로나19사태 극복 의지를 부각시키는 ‘국민을 지킵니다’였다. 미래통합당의 슬로건은‘ 힘내라 대한민국 바꿔야 산다!’였다. 코로나 사태를 감안하더라도 모두 과거와 현재에 매몰되어 있다. 정당들이 미래와 가치에 대한 슬로건을 언제 한번 제대로 제시했는지 의문이다. 향후 4년의 전 망이 명쾌하지 않은 이유다. 당신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다.


 이번 선거에서 48cm의 투표지에 35개의 정당이 등재되었다. 투표용지를 보며 누군가는 놀랐을 것이다. 또 누군가는 ‘쓸데없는 정당’이 많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정말 그들은 쓸 데가 없다, 아니 쓸 수가 없다. 원외정당이니 말이다. 사표를 고민하지 않고 정당에 투표할 수 있어야 한다.


21대 국회에서 어떤 식으로든 다시 선거제도 논의가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동시에 선택의 범위가 넓어져야 한다. 다양한 세대, 계층, 세력들이 원내로 진입할 수 있어야 한다. 환경에 관심이 많아질 때는 녹색당이 원내에서 역할을 하고, 세대 불평등이 이슈화된다면 미래당이 원내에서 일정 역할을 하는 국회를 꼭 보고 싶다.  




하륭 / SBS 하륭 증명사진.gi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