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로 춤을 추게 만드는 밴드 이날치를 만나다

by KVJA posted Nov 17,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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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로 춤을 추게 만드는 밴드 이날치를 만나다

 

(사진) 이날치 만나다.jpg

▲ 지난 10월 초, 파주의 한 연습실에서 연습에 한창인 이날치 밴드

 

 

 따랑 땅 따랑~ 따랑 땅 따랑~’
 

 댄스곡이 시작될 것 같은 130bpm의 흥겨운 베이스 리듬 뒤에 한번 들으면 계속 흥얼거리게 된다는 킬링 파트가 시작된다.
 

 “범~ 내려온다~ 범이 내려온다~...”
 

 뭔가 힙합 같기도, 디스코 같기도 해서 힙(Hip)한 것을 좇는 MZ 세대의 취향을 저격했다. 조회수 2억뷰를 넘기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한국관광공사 홍보영상에서 흘러나오는 한 노래 이야기이다.
 

 사실 이 노래는 판소리였다. 북소리에 맞춰 “얼쑤~” 하며 갓 쓴 소리꾼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우리가 아는 그 전통의 장르가 맞다. 다만 그 판소리를 얼터너티브 팝 밴드 이날치라는 그룹이 완전히 재해석한 곡이다. 베이스 두 명과 드럼 한 명, 네 명의 판소리 보컬로 구성된 이 밴드는 ‘이날치’라는 19세기의 명창의 이름을 따서 결성되었다.
 

 화제가 되고 있는 ‘범 내려온다’는 거북이가 용왕님의 병을 고치기 위해 토끼의 간을 구하러 가는 이야기인 ‘수궁가’의 한 부분을 발췌했다. ‘범 내려온다’를 계속 듣다 보면 토끼전에서 갑자기 왜 범이 등장한 건지 궁금해지는데, 토끼를 찾으러 육지로 올라 온 거북이가 ‘토 선생’을 ‘호 선생’으로 잘못 부르는 바람에 호랑이가 자기를 부르는 줄 알고 내려온다는 에피소드였다.


 이날치는 이런 엉뚱한 전개를 놓치지 않았고, 사실 전체 줄거리와는 크게 상관없는 범의 등장을 과하다 싶을 만큼 반복했다. 그 결과 ‘판소리를 편곡했더니 수능 금지곡이 되네’, 라는 댓글 반응이 돌아왔다. 곡의 중독성이 워낙 강해서 다른 일에 집중을 못하게 한다는 찬사를 받은 것이다. 최근에는 1일 1범의 시대라는 댓글까지 등장했다. 분명 판소리 수궁가는 이날치를 통해 2020년 가장 힙한 음악으로 탈바꿈했다.
 

 파주의 한 작업실에서 만난 ‘이날치’의 첫인상은 생각보다 수줍음이 많다는 느낌이었다. 무대에서는 괴짜 같은 분위기에 폭발적인 에너지로 관객을 압도하지만, 실제로 만나보니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뭔가 조용하고 진중한 분위기가 낮게 깔려 취재진도 긴장하며 카메라 세팅을 진행했다.
 

 인터뷰 자리를 배치하는데, 드러머인 이철희 씨가 가장 먼저 구석자리를 차지했다. BTS와 콜라보를 하겠다던 당찬 포부와는 달리 촬영을 부끄러워하는 모습에 카리스마 뒤에 숨겨진 친근함을 느꼈다.
 

 인터뷰는 기존의 형식과는 달리 유튜브에 달린 댓글 중에 하나를 뽑아 읽고 답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자신의 바람과는 달리 첫 번째 순서로 당첨된 이철희 씨가 댓글을 뽑았는데, 현장이 웃음바다가 되었다. 이철희 씨가 취재진이 준비한 댓글의 글씨가 작아 읽지를 못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결국 돋보기까지 동원했는데 힙하게만 보이던 그의 나이를 가늠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뭔가 짠할 수도 있는 장면이었지만 50이 넘은 나이에도 10대가 공감하는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구나 하는 존경의 마음도 들었다.
 

 이날치를 만들었을 뿐 아니라 직접 베이스도 담당하고 있는 장영규 씨는 수식어가 많다. 최근에는 넷플릭스에서 히트를 치고 있는 ‘보건교사 안은영’의 음악감독으로도 주목을 받고 있고, 퓨전 국악그룹 ‘씽씽’을 결성해서 화제를 끈 적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장영규 씨에게 가장 궁금했던 것은 그 많은 음악 중에 판소리 수궁가를 선택한 이유였다. 그는 무심한 투로 이렇게 말했다
 

 ‘춤추는 음악을 하고 싶었어요.’
 

 그날 뷰파인더를 보며 들었던 말 중에 가장 놀라웠던 말이다. 참신한 접근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심청가로 춤을 출 순 없으니까’ 하고 단순하게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판소리를 춤을 추기 위해 선택했다니. 어떻게 그런 발상을 할 수 있었을까? 그러고 보니 ‘범 내려온다’, ‘ 좌우나졸’, ‘어류도감’ 등 이날치 모든 곡이 수궁가에서 춤을 추기에 가장 적합한 구절로만 구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 그는 이날치의 음악을 국악과 같이 장르로 규정하지 말아 달라고도 부탁했다. 구석에서 조용히 앉아 있던 이철희 씨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더했다.
 

 “독특한 국악 같은 걸로 기억되는 밴드가 아니라 그냥 음악이 좋아서 듣는 편안한 노동요 같은 음악을 하는 밴드로 다가갔으면 좋겠어요.”


 국악의 현대화를 꿈꾸는 밴드라고 생각하고 접근했던 취재진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보컬의 수장 격인 소리꾼 안이호 씨는 요즘 갓보다 스냅백이 더 잘 어울린다는 소리를 듣는다며 그렇게 봐주시는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로 입을 열었다. 국악 무대가 많이 사라진 가운데 이런 흐름들로 기분이 좋은 한편, 그저 이렇게 한번 화제가 되고 끝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이날치의 음악이 특이한 노래라서가 아니라 그냥 듣기 좋은 음악으로 사람들의 일상에 녹아들길 바란다는 포부를 밝혔다.
 

 촬영을 하는 도중에도 다음 스케줄 때문인지 작업실은 소란스러웠다. 예정에 있던 추가 스케치를 생략하고 자리를 비워 주었다. 촬영이 끝났다고 말하자마자 옆에서 기다리던 스탭들이 달려들어 이날치 멤버들에게 의상을 입혀보고 또 어디론가 떠날 준비를 했다. 그들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저 이렇게 한번 화제가 되고 끝나는 것이 아닌... .’
 

 안이호 씨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급변하는 음악 문화 속에서 이날치의 음악은 계속해서 롱런할 수 있을까? 끝이 아닌 시작을 말하는 이날치는 새로운 앨범을 준비하고 있다. 코로나가 끝난 후에 클럽에서 젊은이들과 떼창하고 있는 이날치와 다시 한번 마주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김승태 / SBS  (사진) 김승태 증명사진.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