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자야지? 이재야!

by KVJA posted Jan 07, 202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인쇄

이제 자야지? 이재야!

 
 
 

(사진)  이제 자야지 이재야.jpg

▲막 태어난 딸 '이재'를 처음 안아보는 필자

 

 

 

 2020년 11월 2일 아침 6시 아내에게 진통이 찾아왔다. 불안감과 설레는 마음을 뒤로 하고 야간 근무를 서기 위해 오후 4시 30분 회사로 출발했다. 다음날 오전 3시, 성남에 사는 처제가 와서 함께 걸어서 병원에 가고 있다는 아내의 카톡이 왔다. 초조했지만 좀 더 기다렸다. 아기는 금방 나오는 게 아니라는 경험자들의 말이 생각났다. 오전 4시 병원으로 와 달라는 전화를 받았고, 40분 만에 가족분만실에 도착했다. 약 5시간 후, 아내가 진통을 처음 느낀 지 28시간 만에 나의 딸 '이재'가 11월 3일 오전 9시 59분에 세상에 나왔다.

 

 내가 아는 어떤 이는 미리 취재 등록해야 하는 해외 출장을 가게 되어 출장중에 둘째 아기가 태어났다. 러시아 월드컵 때 출장을 가서 모두가 한국 축구 16강을 응원할 때, 간절히 탈락하기를 바라는 초조한 아빠와 불안한 만삭 아내의 이야기도 들었다. 또 다른 누군가는 병원에서 알려준 출산 예정일에 맞춰 출산휴가를 올린 예지력 있는 아빠도 있었다. 협회보 글을 적기 위해 출산 경험이 있는 친분있는 협회원들에게 그들의 이야기를 물어보았고, 출산을 보지 못한 경우나 사연 있는 경험담은 무척 많았다.

 

 우리 아가는 예정일보다 2일 빨리 나왔지만, 병원에서는 예정일보다 늦게 나올 것 같다는 진단을 받았다. 예정일과 의사 선생님을 믿고 야간근무에 나섰다. 티는 내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취재 일정이 생기면 어쩌지, 그때 아내에게 아기가 나온다고 연락이 온다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이 가득했다. 일을 하다 중간에 끊고 현장에서 마무리하지 못한 채, 다른 선후배에게 맡기고 나서야 한다면 영 마음에 걸리고 내키지 않을 것이다. 야근때마다 불이나곤 한다는 선배, 야간근무만 서면 발생이 생겨 출근하는 나보다 더 늦게 회사에 복귀한 동기얼굴 등이 아른거렸다. 35년 전 아내의 출산 때 장인어른은 없었다는 장모님 이야기도 생각났다. 나에게 전하는 무언의경고처럼.

 

 무사히 뉴스가 끝나고 예정된 아침 일정도 없던 새벽 4시, 걸려 온 아내의 전화에 병원으로 재빨리 갈 수 있었다. 평일 야간 근무 중이었으나 아무런 일정이 없어 카메라 렉버튼도 누르지 않았다. 서울과 수도권의 평온한 야간 상황, 현장 MNG 연결없는 아침 뉴스 데스크들의 편성, 조용했던 오전 취재 일정 덕분에 나는 아내와 출산의 감동을 함께 할 수 있었다. 예정일은 아니었지만 이런 좋은 날을 골라 태어난 우리 딸은 나에게 좋은 남편, 가정적인 사위로 만들어준 효녀가 되었다.

 

 나는 현재 사건팀 영상기자다. 사회부에 소속된 기자들은 일정이 미리 정해질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가 대부분이다. 출근해서도 일단은 대기 모드다. 내가 어떤 현장에 가게 될지는 하루하루 생기는 사건·사고와 보도정보에 알림 속보에 달려있다.

 

 현장에 나가보면 대략 퇴근시간이 예측된다. 오늘은 제 시간에 못 들어가겠구나, 혹은 오늘은 정시 퇴근이 가능하겠구나, 하는 식으로. 이렇게 하루하루를 보낸다.

 

 우리는 직업상 많은 사람이 쉬는 명절 연휴를 온전히 누려 보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 누군가는 항상 현장에 있어야 한다. 예정에없던 출장도 가게 되고, 취재중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을 마주한다. 현장이 커지는 경우, 하염없이 기다리는 등 즉각 즉각 대응하고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 하지만 가족들은 나의 퇴근을 대책없이 기다린다. 기자 본인의 의지와 다르게 부모에게는 불효자가 되고, 나쁜 배우자가 되며, 아이와 함께 하지 않는 부모가 된다. 나는 출산을 할 때 가족 곁에 있을 수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또한, 언젠가 중요한 순간에 없을 미래의 나 자신을 바라보며 이 말을 아내와 아기에게 전하고 싶다.

 

 앞으로도 꼭 항상 같이 있겠다는 확답은 줄 수 없지만,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하는 은아 남편이, 이재 아빠가 될게. 우리 잘 살아보자.

 

 그리고 세상에 나온 지 한 달이 좀 넘은 이재야. 이제 자야지? 아빠 출근해야해.

 

 

 

유용규/ KBS (사진) KBS 유용규 증명사진.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