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수는 왜 이렇게 인기가 많을까?

by KVJA posted Jan 08,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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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수는 왜 이렇게 인기가 많을까?

 
 

펭수는 왜 이렇게 인가가 (사진).jpg

▲ 자이언트 펭TV에 출연한 펭수

 
 지난 10월 말, 우연히 EBS 프로그램 ‘자이언트 펭TV’에 출연했다. SBS 정복기라는 에피소드로 펭수가 스브스뉴스팀을 방문했을 때 (5초 정도?) 잠깐 출연 당한 것. 그 출연 후 주변 반응은 자못 놀라웠다. 대학 졸업 후에 한 번도 연락이 없던 선배에게 잘 봤다는 연락이 오고 어떤 후배는 신기하다며 내가 등장한 화면을 캡처해 보냈다. 단톡방 반응도 뜨거웠다. ‘자이언트 펭TV’보다 훨씬 재미있는 스브스뉴스 ‘문명특급’에 출연했을 때 반응과 별 반 다르지 않다는 게 내겐 놀라웠다. (참고로 나는 SBS 뉴미디어 플랫폼 스브스뉴스에 일하고 있다. 그러니 객관 따위는 바라지 마시길.)
 
 30대 중반의 후배 취재기자는 펭수에게 받은 명함(물론 소품이다)을 선물로 주자, 가보(家寶)로 간직하겠다고 했다. 명함을 건네 받은 후배 눈에는 심지어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남극 출신, 나이는 10살, 뽀로로와 BTS를 보고 한국까지 헤엄쳐 와 스타를 꿈꾸는 EBS 연습생 펭수! 이 터무니없는 설정의 펭귄 인형을 어른들이 진심 좋아하고 있다. 특히 20~30대 여성들의 팬심은 놀라울 정도다. 어떻게 된 일일까?
 
 펭수는 거침이 없다. EBS 연습생에 불과하지만 어딜 가도 일단 대빵부터 찾는다. 대빵을 만나고 나면 하고 싶은 말을 다 한다. 돈이 필요하면 아무 때나 EBS 사장 ‘김명중’의 이름을 부른다.
 “맛있는 건 참치, 참치는 비싸, 비싸면 못 먹어, 못 먹을 땐 김명중.”
 “구독자 이벤트는 김명중의 돈으로 선물을 주겠다.”
 이런 식이다.
 
 사실 펭수 입장에서는 실제로도 EBS 사장 눈치 볼 필요가 없다. 이미 SBS, MBC 등 다른 방송국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몸값을 올릴 만큼 올렸으니. 어딜 가든 대빵을 만나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자신이 속한 회사 사장에게도 거침없이 하고 싶은 말을 한다. ‘억누름’과 ‘절제’가 일상이 된 직장인들에게 펭수의 솔직하고 당당한 모습은 묘한 카타르시스를 준다. 이 점을 첫 번째 인기 비결로 꼽아야 하리라.
 
 펭수는 스윗하고 젠틀하다. 커다란 몸뚱이에 짧은 팔(혹은 날개)과 다리. 팔다리의 움직임이 귀엽고 비음 섞인 목소리는 무심한 듯하면서도 다정하다. 요즘 말로 츤데레(쌀쌀맞고 인정이 없어 보이나, 실제로는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을 이르는 말)다. 2미터가 넘는 거구임에도 안고 싶고 또 안기고 싶다. 사장이든 담당 PD든 당당하게 할 말을 다 하지만,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는 늘 정중히 인사하고 여간해서는 반말을 안 한다. 유튜브뿐만 아니라 지상파인 EBS에서도 방송되기 때문에 언어 사용에 있어 예를 갖춘다. 초등학생 아이를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펭수는 편안하게 아이와 함께 볼 수 있는 콘텐츠다. 귀여움과 젠틀함이 펭수의 두 번째 인기 비결이다.
 
 펭수에게는 묘한 신비감이 있다. 일단 표정이 없다. 무표정한 사백안(눈을 크게 뜨면 흰자위 한가운데 검은 눈동자가 있는 것)의 눈은 도무지 생각을 읽을 수 없다. 오로지 몸짓과 목소리만으로 펭수의 상태를 짐작해야 한다 - 인형 안에 있는 사람은 (요즘 같은 겨울에는 좀 낫겠지만) 얼마나 고생일까? 너무 더워 땀범벅이 되는 상황에서 목소리만 아무렇지 않은 듯 연기하는 것일 수도 있으리라.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어느 순간에는 진심이 표정에 드러나기 마련이지만 펭수의 얼굴은 한결같다. 인형 속 실제 인물이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걸음걸이, 날개 움직임, 앉고 일어서는 동작 모두가 늘 귀엽고 앙증맞다. 그런 인간은 없다. 완벽한 포커페이스! 그것이 펭수의 세 번째 인기 비결.
 
 요즘 유튜브 스타는 셀 수도 없이 많다. 그런데 일상 브이로그, 먹방, 게임, 뷰티 관련 콘텐츠가 1인 크리에이터 중심인데 반해, 유튜브 오리지널 예능 분야는 거대 방송국의 뉴미디어 플랫폼에서 만드는 콘텐츠가 인기가 많다. SBS 스브스뉴스의 ‘문명특급’, 모비딕의 ‘숏터뷰’, JTBC 스튜디오 룰루랄라의 ‘워크맨’과 ‘와썹맨’, 그리고 EBS의 ‘펭수’ 등이 대표적이다. ‘펭수’, ‘문명특급’, ‘워크맨’과 같은 예능 컨셉의 콘텐츠는 기획, 촬영, 편집 등이 상대적으로 간소화되긴 했으나, 기존 방송국 시스템과 노하우를 십분 활용한다. 물론 완성도도 높다. 필자는 펭수 인기의 마지막 비결로, 개성 있는 펭수의 캐릭터를 온전히 살려주는 지상파 EBS의 안정적 제작 지원을 꼽겠다.
 
 요즘 핫한 ‘펭수’의 인기 비결을 철저한 뇌피셜(‘뇌’와 ‘오피셜’의 합성어로, 자기 머리에서 나온 생각이 사실이나 검증된 것 마냥 말하는 행위를 뜻한다.)로 분석해 보았다. 보스와 회사의 눈치를 보지 않는 당당함, 귀여운 몸짓과 절제된 언어, 표정이 드러나지 않는 신비감, 그리고 안정적인 제작 지원 시스템. 여기에 하나 더. 기존의 방송국 시스템과 달리 펭수는 EBS만 고집하지 않는다. EBS 캐릭터임에도 SBS ‘스브스뉴스 문명특급’, ‘정글의 법칙’,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 ‘여성시대 양희은, 서경석입니다’ 등 다른 방송국의 문턱을 쉽게 넘나드는 과감한 행보. 이렇게 ‘경계를 넘나드는 캐릭터’가 펭수의 진짜 매력 포인트가 아닐까? 직장인과 자유인의 경계, 예의와 당당함의 경계, 인간과 펭귄 인형의 경계, 레거시와 유튜브의 경계, EBS와 다른 방송국과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더니 말이다. 바야흐로 경계를 넘나들 수록  콘텐츠의 경쟁력이 살아나는 시대가 열린걸까? 아니면 경계 자체가 무의미한 시대가 열린 것인지도 모르고.
 
 
정상보 / SBS    SBS 정상보 증명사진.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