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종혁의 시네노트 - 흑백으로 되살린 전쟁범죄의 기억-『지슬』

by TVNEWS posted Jun 04,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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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으로 되살린 전쟁범죄의 기억-『지슬』

영화가 시작되면 마루에 나뒹구는 제기(祭器)들이 보인다. 그 뒤로 방문이 열리면서 군인이 등장하고 카메라가 좀 더 들어가면 이불장에 걸친 여자의 시신이 보인다. 군인은 그 앞에서 동료와 함께 칼로 과일을 나눠 먹는다. 한국군에 의한 최초의 민간인 학살 사건은 이렇게 관객들에게 모습을 드러낸다.
영화 ‘지슬’(오멸 감독 연출)의 첫 시퀀스에 제시된 제기와 칼은 이 영화를 규정짓는다. 제기는 망자(亡者)의 영역이고 칼은 육체를 가진 생명의 것이다. 이 두 물질은 또한 희생자와 가해자의 영역을 나타낸다. 그러면서 연기의 표면과 그 이면에 깔린 여러 의미들을 관객들이 해석하도록 초대하는 역할도 한다.
이 영화는 제주의 ‘4·3 항쟁’을 소재로 만들어졌다. 해방공간 당시 제주도에서 진행되던 이념대립이 1947년 경찰의 발포로 유혈사태로 악화되고 이 사태를 해결할 능력이 없었던 미군정은 경찰과 테러집단인 서북청년단으로 진압하려하지만 실패하고 만다. 1948년 4월 3일 남로당의 무장봉기로 전쟁상황으로 발전하자 미군정은 국군의 전신인 경비대에 진압을 명령하고, 그해 8월 15일 이후 이승만 정권은 한국군을 파견하고 11월 7일에 제주도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한국 정부는 이날 포고문을 통해 ‘해안에서 5km 밖에 있는 모든 사람을 폭도로 간주하고 사살’하라는 명령을 한국군에 내렸다. 영화 ‘지슬’은 그 때, 거기에 있었다는 불합리한 이유로 학살당한 농민, 어린이, 노인, 부녀자들의 피난 생활과 그들을 ‘토벌’하는 계엄군의 행위를 스크린에 재현한다.
이 영화는 신위(神位, 영혼을 모셔 앉히다), 신묘(神廟, 영혼이 머무는 곳), 음복(飮福, 영혼이 남긴 음식을 나눠 먹음), 소지(燒紙, 신위를 태움)라는 4개의 이야기로 구성된다. 각각의 시퀀스마다 한국군의 야만적인 행위와 대비되는 피난민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신위에서는 피난가는 주민들을 영화 속으로 불러 관객에게 소개시키고, 신묘에서는 주민들의 개인적인 사연들을 들려준다. 음복에서는 피난 주민들의 피난생활과 희생당한 어머니가 남긴 불에 탄 감자를 나눠주는 아들과 그것을 먹는 모습이 그려지고, 소지에서는 각각의 희생자들에게 모셔진 지방이 불타는 장면이 나온다.
오멸 감독은 한국군에 대한 묘사를 하면서 에둘러 가지 않는다. 마약성분의 진통제에 중독된 군인이 보이고, 살인에 대한 충동을 칼 가는 걸로 해소하는 살인귀(이 군인은 나중에 다리가 아파 피난가지 못하는 할머니를 ‘빨갱이’이며 도망친 빨갱이 어미라는 이유로 죽인다)가 등장하고, 추운 겨울 한라산 산간 마을에서 토벌 실적이 부진하다는 이유로 부하를 발가벗긴 채 학대하는 군인이 등장한다.
반면, 피난민에 대한 시선은 해학과 연민이 뒤섞여 있다. 좁은 산간 초소에 숨어든 피난민들이 엉덩이 둘 곳이 부족하다면서 서로를 타박하고, 집에 놔두고 온 돼지 걱정만 하는 할아버지, 피난보다 달리기 시합이 중요한 총각들, ‘이 산이 아닌가벼’를 계속 말하는 길잡이와 같은 평범하고 어리숙하다고 말할 수 있는 인물들이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이 영화의 비극은 이와 같은 광기와 어리숙함이 충돌할 때 발생한다.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피난민에 감정 이입한 관객과 군인들 간의 대립, 즉 관객과 영화상의 폭력적인 국가권력 간의 갈등으로 확산되면서 영화의 비극은 현실화 된다.
한편으로, 이 영화는 특이한 장치를 가지고 있다. 사건은 과거의 것이기 때문에 희생자의 유가족을 제외하고 영화적인 사건으로 바라볼 수 있지만, 적어도 한국 관객에게 영화가 현실의 문제로 제기하는 방식은 영화의 고유한 미학적인 방법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유려한 로케이션, 화려한 배우들의 연기, 현란한 편집으로 사건을 만들지 않고, 이 장치를 통해 관객들이 한국 영화를 외국영화로 이해하게 만든다. 바로 언어, 제주어를 통해 그렇게 만든다. 한국어 내 사투리라고 머릿속으로 이해했던 언어를 자막으로 통해 관객들은 생경하게 받아들인다. 그렇게 영화는 관객들이 당시 고립됐던 제주의 상황, 피난민들의 사연을 간접 경험하게 만든다.
영화의 마무리는 비장하다. ‘이어도사나’라는 주제가 때문이기도 하지만 죽어버린 어머니의 등에서 꼼지락 거리는 신생아에게 지방을 부여하고 태워버리는 감독의 미장센 때문이기도 하다. 이 지방은 영화 속에서 죽은 모든 인물들에게 헌정되었다. 그걸 보면서 관객은 감독이 마련한 제사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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