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종혁의 씨네노트> 스크린에서 실패한 TV드라마 - 역린

by TVNEWS posted May 21,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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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린-스크린에서 실패한 TV드라마

 사이비(似而非): 비슷해 보이지만 같지 않음.
 사극(史劇): 역사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만든 연극이나 영화

방종혁의 씨네노트.jpg


 이재규 감독의 영화 ‘역린’(逆鱗)을 보는 내내 이 두 단어가, 더 정확히 말해서는 이 두 단어의 그림자가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이재규 감독은 MBC에서 재직할 당시 ‘다모’라는 픽션 사극을 통해 이름을 날렸다. 허구를 바탕으로 액션에 로맨스를 겹친 이야기는 이후 방송가에 판타지 혹은 픽션 사극의 첫걸음이 되었다. ‘선덕여왕’, ‘광개토태왕’, ‘태왕사신기’, ‘주몽’, 최근에는 ‘기황후’에 이르기까지 시대적 배경이 조금 가미되었을 뿐 TV드라마에서 인물들간의 개연성을 현대화시킬 뿐만 아니라 인물의 등장 배경까지 재편하는 것은 극의 ‘재미’를 위한 장치로 인식되었다. 영화를 보면 이준익의 ‘평양성’, ‘황산벌’, ‘왕의 남자’,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추창민의 ‘광해, 왕이된 남자’, 한재림의 ‘관상’에서도 이런 탈역사의 모습이 보여진다.


 사극에 대한 방송사나 영화 관계자들의 이런 태도는 현대극이라고 다르지 않다. 강제규의 ‘태극기 휘날리며’나 ‘마이웨이’, 장훈의 ‘고지전’을 보면 현대사에서 특정한 에피소드나 플롯을 확장 시키면서 액션의 폭이 커진 모양이 조선시대와 그 이전을 다룬 사극들의 플롯들과 유사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한국영화에서 사극이 메인 장르로 올라선 이유는 무엇일까? 의외로 간단하다. 흥행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왜 흥행이 되는지를 살펴보면 좀 복잡해진다. 대규모 자본이 들어가고, 흥행 배우를 사용하는 것은 보편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이준익의 경우 자본과 배우 모두 모험적인 요소가 강하기 때문에 이를 보편성으로 묶어두기엔 무리가 따른다. 이후 상정해 볼 수 있는 것은 배우와 시나리오라는 조합이다. ‘광해, 왕이된 남자’와 ‘관상’의 경우 시나리오 보다는 배우가 시종일관 영화 전체 분위기를 압도해가기 때문에 시나리오 상의 약점이 상쇄되는 측면이 있다. 마지막으로 극장을 찾아가는 관객의 정서를 생각해볼 수 있다. 역사적인 소재가 흥행이 되는 것은 현실에 대한 대안을 과거에서 찾아보려는 관객의 집단적인 관념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는 ‘광해...’의 경우와 이준익의 작품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흥행 요소라고 볼 수 있지만 ‘26년’을 제외하고는 현대 사극과 공통점을 발견하기 어렵다.

 


 이런 모든 분석이 무의미해진다면 결국 기댈 수 있는 것은, ‘우연’이라고 보아야 할까? ‘왕의 남자’의 흥행 요소에서 가장 큰 부분은 ‘이준기’라는 배우였다. 여기에 사당패라는 천민의 시각에서 바라본 절대권력의 허상이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주었다. 이 작품에서 우연적인 요소는 공길이라는 배역에 절묘하게 맞아들어간 배우라고 볼 수 있다. ‘광해...’에서는 가짜왕과 도승지와의 개그코드와 거기에서 비롯된 전복된 관계(왕-신하에서 신하-가짜왕, 다시 가짜왕-신하)가 보여주는 쾌감이 흥행요소였다. ‘관상’에서는 송강호, 김혜수, 백윤식을 압도한 이정재(수양대군)의 매력이 갑작스럽게 부상한 흥행코드였다.
 그렇지만 우연성이 영화 흥행의 가장 큰 요소가 되어버리면 애초부터 영화를 정교하게 만들 이유가 없어지고 만다. 이를 위해 영화제작자들은 영화 흥행의 확실한 요소를 상정하고 작업을 추진해나간다. 이 지점에서 다시 위에서 언급된 자본과 배우, 시나리오, 관객의 정서라는 흥행 요소가 등장한다. 결국 영화 제작이라는 환경은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우연을 견제하기 위해 제작자, 감독, 배우, 스태프들이 공고히 준비한 방어진지가 되어버린다.
 이제 다시 ‘역린’으로 돌아가 보자. 이 영화는 대체적으로 과유불급이다. 주인공이 될 만한 등장인물들만 하더라도 정조, 정순대비, 상책, 광복, 살수 등이다. 이들의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앞부분 반 이상을 잡아먹어버려서 뒷부분 존현각에서의 대결은 급히 마무리된 느낌이다. 감독의 이런 조급증 때문에 영화 초반 왕과 ‘정순대비(노론)’의 대립이 주던 긴장감은 극이 흘러감에 따라 왕과 ‘아동 인신매매꾼(광백)’의 대립으로 어이없게 바뀌면서 자취를 감춰버리고 만다. 극적 긴장감이 사라진 부분은 존현각의 대결이 지닌 에너지로 상쇄시켜야 하는데 감독은 이마저도 영화 도입부에 암살자들이 모두 죽어 널브러진 시퀀스로 날려버리고 마는 편집상의 오류를 범해버린다. 여기에 허술한 고증도 한 몫을 한다. 여성인 대비가 사방이 트인 곳에서 한가롭게 목욕하고, 국상기간 왕이 상복을 입고 있는데 궁궐의 모든 인물들은 화려한 색상의 옷을 입고 스크린에 등장한다. 아울러 이 영화는 앞선 영화들의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차용하는데 그것이 새로운 느낌을 주기 보다는 어디서 본 듯한 기시감만을 관객에게 제공한다. 정조와 내시 상책과의 관계는 ‘광해...’에서 광해군과 허균을, 정조의 특기인 편전(애깃살) 궁술은 ‘최종병기 활’의 남이(박해일)를 떠올리게 한다. 어설픈 액자 구성과 과도한 플래시백은 결국 이 영화는 ‘유주얼 서스펙트’의 반전이 주는 긴장감에 의지한다는 것을 드러내고 만다.

 


 다시 이 글 첫머리에 등장한 ‘사이비’와 ‘사극’으로 돌아가보자. 감독은 ‘역린’을 사극으로 만들고자 했으나 역사적 사실과 해석에서 오는 긴장감을 과도한 액션과 등장인물들 간의 관계가 만든 이야기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판타지 사극으로 흘러가 버리는 ‘사이비 사극’을 만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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