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기자 75% ‘복합 PTSD’ 노출…‘직무이탈’ 손상 구조 확인
‘힌츠페터상’ 등 공적 인정과 조직 내 존중이 현장 복귀 이끄는 ‘동력’
지난 5월 16일 5·18기념재단에서 열린 <민주포럼 언론 세미나> 한국영상기자협회 세션 중 조재희 교수 발제 모습
조재희 서강대 지식융합대학 교수, 레메디아연구단장
위험한 분쟁 지역과 재난 현장, 격렬한 시위 최전선에서 역사를 기록하는 영상 저널리스트들이 직무 중 겪는 심각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신음하고 있다. 현장 기록자들의 상처를 방치할 경우, 저널리즘의 붕괴는 물론 언론의 자유라는 민주주의의 근간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관련기사 6면
한국영상기자협회(회장 최연송)와 5·18기념재단, 서강대 미디어정신건강치유연구단 ‘레메디아’는 지난 5월 16일 광주에서 ‘분쟁지역 영상저널리스트의 기록과 상처’를 주제로 언론 세션을 개최했다.
이날 현장에서는 국내 영상기자들의 트라우마 실태를 학술적으로 검증한 최초의 조사 결과와 함께 현장 기자의 증언, 공적 대안 등이 쏟아졌다.
발제자로 나선 서강대 조재희 교수는 협회 소속 영상기자 11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태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조사 결과 응답자의 75.6%가 참사 현장에서 직무 중 맞닥뜨리는 위험 사건 23개 유형 중 무려 7가지 이상을 직접 경험했다고 답했다. 조사 대상자들의 평균 위험 사건 경험 개수는 10.1개에 달했다.
조 교수는 “영상기자가 매일 접하는 현장이 개별적으로는 사소해 보일지라도 위험 경험이 누적되면서 고강도로 축적돼 복합적인 PTSD 증상으로 연결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연구팀은 경로분석을 통해 ‘외상 유발성 사건 경험 ➔ PTSD 증상 발생 ➔ 직무 이탈성 번아웃 발생’으로 이어지는 정신적 손상 구조를 확인했다. 고통스러운 현장을 지속적으로 목격한 기자가 결국 직무를 기피하고 조직을 이탈하게 된다는 메커니즘을 규명한 것이다.
토론자들은 영상기자의 트라우마가 단순히 개인의 질병이 아닌 ‘공공의 위기’라고 단언했다. KBS 신봉승 기자는 영상기자의 직업적 소명을 종합병원 응급실의 의료진에 비유하며 “수술실의 의사가 트라우마로 손을 떨면 환자의 생명이 위태로워지듯, 사실을 기록하는 영상기자가 트라우마로 직업적 소명을 다하지 못한다면 결국 언론의 자유와 민주주의 체제 자체가 유지될 수 없다”고 경고했다.
성균관대 임인재 선임연구원 역시 전직 사회부 기자로서 대형 참사를 취재한 뒤 홀로 속앓이를 했던 경험을 공유하며 소방관의 PTSD를 정량화해 측정하는 척도처럼 영상기자에 맞는‘PTSD 척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포럼에서는 사내 심리 상담 시스템의 혜택을 받기 어려운 프리랜서나 소형 언론사 기자들의 사각지대 문제도 지적됐다. 신 기자는 현장 기자들은 물론 현장에서 함께 상처받는 시민 봉사자들까지 아우르는 ‘공적 차원의 트라우마 통합 지원 체계’가 구축되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2022년 힌츠페터 국제보도상 수상자인 필립 콕스 기자는 영상을 통해 오늘날 미디어 환경이 가하는 또 다른 차원의 본질적 트라우마를 짚기도 했다. 그는 “우리가 목숨 걸고 기록한 역사적 진실 자체가 온라인상에서 조롱받고 비방 세력에 의해 ‘가짜 뉴스’로 둔갑하는 평판 테러 역시 심각한 디지털 트라우마”라고 고발하며 동료 간 상호 지원 네트워크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한편, AI와 드론 등 하루가 다르게 기술이 발전하고 있는 시대 속에서도 영상기자는 대체 불가능한 존재라는 점도 재확인됐다. 조재희 교수는 “영상기자야말로 현장의 참상을 온몸으로 감각해 진실을 담아내기에 가장 대체되기 어려운 직업”이라며 기자의 강력한 자긍심과 주변의 인정이 회복의 동력이 될 수 있음을 역설했다.
최연송 회장은 “극단으로 치닫는 사회적 갈등 속에서 영상기자들이 직면한 현장의 위험은 이제 개인의 사명감이나 조직의 노력만으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고 진단했다. 최 회장은 “영상기자가 민주사회의 공기(公器)로서 제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방송사의 인력 확충과 근무 환경 개선이 시급하다”면서 “언론진흥재단 등 언론인 지원 단체들이 현장에 실질적으로 와닿는 지원을 강화함으로써, 이들을 사회 시스템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안전망을 단단히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경숙 기자 cat100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