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간의 수습생활, 평생 좋은 술안주감 될 듯
경기도 연쇄살인사건의 가해자인 강호순, 당시 피의자를 어려운 환경에서도 열심히 쫓아다니며 취재할 때도 사실 피의자의 초상권에 대해서는 크게 생각해 본적은 없었다. 그저 강호순은 나쁜X이고 전 국민이 강호순을 TV로 보면서나마 욕이라도 한마디 하게 해준다면 그게 공익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나에게 피의자는 리포트에 필요한 그림의 대상일 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풀 샷, 달리, 붐업…
그러나 이런 나의 피의자관을 돌이켜보게 한 사건이 있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어떻게든 찍어가야 하는 수습 카메라기자임에도 불구하고 그 피의자를 촬영할 때는 그냥 리포트가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사실 그 피의자는 촬영 전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채팅에서만난 여학생을 3일간 자취방에 감금하고 심하게 폭행까지 한 죄질이 나쁜 청소년이었다. 피의자 촬영을 하기 전에는 경찰서 형님과 피의자를 언급하며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한탄을 하기도 했다.
촬영을 위한 세팅은 여느 피의자 스케치와 다를 게 없었다. 담당 형사가 컴퓨터 앞에 앉아 피의자를 취조하는 장면. 화이트를 보고 풀샷을 찍기 위해 삼각대에 카메라를 '철컥' 하고 올려놓자 피의자가 겁먹은 표정으로 담당 형사를 쳐다본다. 그러자 담당 형사가 "뉴스에 죄를 지은 사람들 나오잖아, 너네도 잘못을 했으니까, 뉴스에 나가는 거야"라며 다독인다. 나는 피의자가 촬영을 거부할 권리가 있는 것을 알면서도 속으로 '맞는 말 하네'라는 생각을 했다. 한마디 덧붙이며 "저기요, 얼굴 나올 것 같으니까 모자 좀 더 눌러쓰시죠."
풀샷을 찍고, 다리에서 머리까지 붐업을 하기위해 피의자 옆에 다가가자 죄를 지은 여학생이 눈시울이 젖은 채 나를 쳐다보며 말한다. "아저씨, 저 뉴스에 나가는 거에요?" 피의자와 눈이 마주치자 가슴이 짠해졌다. 뭐랄까… 해서는 안 될 일을 하는 기분. 카메라를 든 기자라는 이유로 이 학생을 심판하려드는 것은 아닌지. 시커먼 카메라가 한 사람의 마음에 흉기가 되어 상처를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 해봤다. 법으로 정해진 벌을 받을 사람에게 내가 불필요한 상처를 더해주는 것은 아닐까.
물론 이 경험이 있은 후에도 나는 피의자를 카메라에 담아왔다. 하지만 경찰서 취재의 당연한 수순으로 피의자 촬영을 하는 것이 아니라 피의자를 촬영해야하는 목적과 의미에 대해서 스스로 정리를 하는 짧은 시간을 갖는다. 리포트로 나가는 그림이야 달라질게 없겠지만, 최소한 피의자를 꼭 찍어야하는 스스로의 자기합리화 같은 과정이다.
그렇게 하고 싶던 일을 하면서도 생각처럼 일을 잘 못할 때는 자괴감이 들기도 하지만, 하나하나 깨달아가고 배워가는 재미가 있어 여전히 매력적인 직업, 카메라기자. 그러고 보니 순식간에 수습기간 6개월이 지났다. 남자들에게 군대이야기처럼 6개월간의 수습이야기는 비워지지 않을 평생 술안주감으로 남을 것이다.
P.S. 글을 쓰고 나니 회사 선배들이 요즘 많이 해주는 말이 생각난다. - "기본이나 잘 찍고 말해라."
이우진 / mbn 보도국 영상취재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