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칼럼>
64년만의 폭우, 그 피해 현장 스케치
“아니 이것이 뭔 난리여!! 내 나이 팔십 평생 요렇게 비가 많이 온 걸 본 적이 없는디... 이것이 뭔 일이다요 기자양반~”
350밀리미터의 집중 호우가 쏟아져 마을 전체가 물에 잠겨버린 부안군 줄포면. 비가 그친 3일 오전, 마을에서 만난 80대 노모는 연달아 한숨을 내쉬며 취재진을 붙들고 울먹였다.
그도 그럴 것이 온 마을이 물에 잠겨버린 줄포마을은 길이 보이지 않은 물바다 그 자체였던 것이다. 길가에 주차되어 있던 차량은 지붕만 덩그러니 내 놓은 채 물속에 잠겨있었고, 구명보트만이 차로를 대신해 수로로 변해버린 도로 위로 사람들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이 광경은 영화 속 한 장면을 보는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너무나 터무니없고 급작스런 상황이라 그저 멍하니 물속에 잠긴 집을 바라보며, 한숨만 내쉬는 마을 주민들의 모습이 한없이 측은해 보였다.
1942년, 집중호우로 인해 하루 강우량 336.1mm의 비가 내린 이래 두 번째로 많은 비가 내린 8월 3일 오전 10시경, 279.5mm의 많은 비가 쏟아진 전주 시내 저지대 및 일부 지역은 주택 수백 가구가 물에 침수되고, 시내 4차선 도로변 일대가 어른 가슴까지 닿을 정도로 물이 차올랐다. 그동안 타 지역에 비해 그다지 큰 재해가 없었던 전주지역도 2일과 3일, 이틀에 걸쳐 쏟아진 폭우로 인해 더 이상 ‘기상 안전지대’가 아님을 깨닫게 해주었다.
조용했던 산간 마을도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평소에는 졸졸 시냇물이 흐르던 마을에 400mm가 넘는 엄청난 폭우로 산이 무너져 떠내려 오고, 마을 입구 비닐하우스와 농산물 저장고가 통째로 떠내려갔다. 몇 년 전, 어릴 적 떠났던 농촌 마을로 귀농하며, 수 천 만원의 빛을 내어 보금자리를 만들었다는 50대 마을주민. 폭우 때, 재빠르게 몸을 피해 살아났지만, 삶의 터전을 통째로 잃은 슬픔에 그저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던 그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산사태로 집이 무너지고 물살에 휩쓸리는 바람에 10명이 소중한 목숨을 잃었고, 농경지 2만 7천 ha가 고스란히 물에 잠겼다. 그 결과 3천 여 억 원의 어마어마한 재산피해가 발생하였다. 이 같은 참담한 소식을 접하고, 곳곳에서 자원 봉사의 손길이 이어졌다. 공무원과 군인, 학생. 그리고 휴가를 대신해 수해 현장으로 달려온 직장인까지. 거기에 타 시도의 주민들도 두 팔을 걷어 부치고 복구 작업에 일손을 보탰다. 덕분에 폐허나 다름없었던 수해 현장은 빠른 속도로 제 모습을 찾아갔다. 하지만 정부의 미온적인 피해복구 계획은 농심(農心)을 들끓게 만들었다. 결국 성난 농민들은 복구 작업과 피해 보상이 원활히 이뤄질 수 있도록 수해 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해 줄 것과 적정한 보상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섰다. 급기야는 자식 키우는 심정으로 재배해온 벼가 물에 잠겼는데 정부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며, 거대한 트랙터로 수만 평의 논을 갈아엎기에 이르렀다.
64년만의 폭우로 수해가 발생한 지 벌써 한 달.
이번 전주 지역 수해는 남긴 상처만큼이나 큰 가르침을 주고 있다. 자연 재해로 인한 피해는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닌, 언젠가는 나에게도 똑같은 피해가 발생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재민을 보듬는 따뜻한 관심과 손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방송 또한 지역 방송 중심의 재해 방송이 아닌 중앙 방송이 나서, 전국적인 방송 매체로서의 소임을 다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 지역에 집중된 피해라고 생각하기에 앞서 자연재해란 사실에 초점이 맞춰져야 할 것이다. 그러기에 피해성금 모금 또한 지역방송 차원에서 이루어지기보다는 중앙방송매체를 통한 전국적인 모금방송이 이루어졌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제는 똑같은 재해를 앉아서 당할 수는 없다. 이번 피해에 대한 자각과 경험부족으로 더 큰 피해를 만들었던 임기응변식 대처에 대한 반성 속에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전주방송 보도국 이동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