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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후기>

남극 세종 과학기자에서 느낀 것 … "공부가 필요해!"

광활한 자연과 작은 인간들이 펼치는 무대 남극 과학기지

 최근에 사람들 사이에서 탐험과 야생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고 있다. 그런 관심 속에 가장 대표적인 와일드 라이프가 바로 남극 대륙과 그에 연관된 세종 과학기지다. 이곳의 삶은 물론 다양한 언론매체와 많은 다큐멘터리에서 다루어서 웬만한 한국인들은 다 알고 있다. 아마도 내가 한국에 돌아가서 남극의 생활에 대해 이야기하면 안 가본 사람들이 나보고 틀렸다며 더 자세한 이야기를 해줄 지도 모른다. 카메라기자가 이런 독특한 자연환경에 오면 제일먼저 생각하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대자연을 얼마나 내 영상에 잘 담아낼 수 있을까하는 부분일 것이다. 물론 나도 그 생각에 동의한다. 하지만 이미 대부분의 생활상은 VJ 특공대라는 프로그램이 얼마 전 다녀가 방영했고, 지금은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한 팀이 들어와서 거의 모든 것을 속속들이 촬영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이미 다른 프로그램에서, 그리고 작년에 내가 보여줄 만한 것은 다 보여 준 것이다.

 나는 ‘도대체 이 머나먼 남극에서 내가 영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그것은 좀 더 공부한 후, 영상에 담을 무엇인가를 찾자는 것이었다.

 이러한 고민의 해결책으로 내가 여러분에게 권해주고 싶은 것은 ‘아이템에 대한 이해와 정보 수집’이다. 한마디로 취재를 들어가기 전에 아이템에 대한 공부를 하라는 얘기다. 작년에 내가 이곳을 처음 봤을 때는 모든 것이 신기해 무조건 촬영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촬영한 후 한국에 가 보니 거의 대부분 영상이 기존 방송에 나온 내용과 거의 차이가 없이 그저 재탕했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 실망은 무척 컸다. 이런 경험은 카메라 기자라면 한번쯤은 겪었던 일이라 생각한다. 그러므로 무조건 촬영할 것이 아니라, 각 분야의 전문가로부터 정보를 얻는 등의 사전 노력이 있어야 좋은 영상, 독특한 영상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이다.

 남극 세종 과학기지는 아시다시피 전두환 대통령이 국가의 위신을 세운다는 목표 하에 우리나라 살림살이에 비해 무리를 해가며 만든 과학기지다. 남극과 가까운 나라들 즉 남미의 국가나 호주, 뉴질랜드 등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이 G8 국가의 기지만 있는 처지에 우리가 기지를 만들었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과학자들은 그 당시는 무리였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잘한 일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이 기지는 1년 간 이 곳 시설 유지와 한 겨울의 연구를 도울 월동 연구대 17명과 이동이 자유로운 한여름의 하계연구대가 수시로 드나들어 생각보다 무척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곳이다. 물론 한국 음식에다 여가시설까지 없는 게 없다. 거기다 위성을 통해 인터넷도 되고 한국 방송도 나온다. 이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 미리 정보를 얻으면 그 만큼 새로운 것들이 많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재탕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와일드 라이프에서 뉴스를 만든다?

 말이 쉽지 쉽게 다가오는 말은 아니다. 인간의 흔적이 가장 적고 자연적인 곳에서 최첨단 시대의 뉴스를 만든다는 게 쉽지는 않았다. 그러니 보여주는 건 빙하, 팽귄, 해표, 고래, 극제비 등등 자연 다큐멘터리의 일부가 된다. 그러나 어제 촬영하러 갔던 곳에 오늘 가보면 달라져 있는 곳이 남극이고 그만큼 새로운 것들이 많기도 한 곳이다. 이게 바로 뉴스다.

 남극을 연구하는 과제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환경연구이다. 특히 지구 온난화는 모든 뉴스의 중심에 있다. 이곳의 월동대장 홍성민 박사는 빙하를 통한 지구환경변화를 연구하시는 분으로 94년 미국 과학 잡지 싸이언스지에 그린란드 빙하연구를 통해 로마시대에 납사용이 많아 오염된 흔적을 발견한 내용을 실어 큰 호응을 받은 바 있다. 홍 박사는 “지구 온난화는 불과 10년 전 만해도 별로 중요한 이슈가 아니었지만 지금은 중요한 뉴스가 되어있다. 누가 그것을 예상 했겠냐”며 지금은 빙하기의 중간인 간빙기로 만약 이런 지구 온난화가 가속화되면 해수의 순환에 큰 영향을 미치고 결국은 지구의 온도 순환이 잘 안 이루어져 다시 빙하기가 올 수 있다고 한다. 영화 투모로우가 가능한 가설이라는 말이다.

 또 하나의 주제는 인간의 환경파괴이다. 남극조약에 의하면 누구도 남극을 평화적인 연구 이외의 목적으로는 이용할 수 없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어느 나라가 인류공영을 위해 수  조의 돈을 퍼부으며 남극에 기지를 만들었겠는가? 그리고 우리집도 아니고 티도 안 나는데 조금씩 흠을 내면 어떻겠냐는 의식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꾸준한 환경 모니터링을 하도록 되어 있는 곳이 남극이고 기지 주변의 생태계 변화를 예의 주시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이미 기지 주변의 일부 새와 바다 생물은 영향을 받아 사라지고 있고 우리에게 너무나 유명한 ‘펭귄마을’의 펭귄들도 서서히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게 이 곳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그 다음이 생태계의 사이클을 연구하는 분야다. 이곳은 춥고 겨울이 긴데다가 나무나 풀이 없어서 다양한 동식물이 자라지는 않고 아주 단순한 생태구조를 가지고 있다. 우선 바다의 동물플랑크톤인 크릴이 이곳에 많이 있다. 춥고 얼음이 떠다니는 곳이 이들이 좋아하는 서식지이기 때문이다. 이 크릴을 고래, 펭귄들이 먹는다. 펭귄은 크릴을 먹고 배설을 하여 땅에 있는 이끼에게 먹이를 제공하고, 이곳의 맹조류인 스쿠아 즉 도둑갈매기가 펭귄 알이나 새끼 등을 먹고산다. 땅에서 난 이끼들에 의해 영양분이 높아진 흙은 눈 녹은 물과 함께 바다로 흘러 들어가 바다의 양분을 높인다. 이런 순환에 의해 극지의 생태계는 유지된다. 하지만 최근에 온난화가 진행되고 외부로부터 인간이 들어오면서 이곳에는 남극잔디라는 추운 곳에 잘 서식하는 외래종 풀이 등장했고 외부의 식물들을 실내이긴 하지만 가져다 키우면서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다. 그래서 세종 과학기지는 외부의 동식물을 반입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인류보호냐 자원 확보냐

 한국의 극지연구소는 매년 러시아의 지질 연구선을 임차해서 약 두 달 정도 남극 주변을 항해하며 다양한 과학탐사를 하고 있다. 그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지질 탐사. 남극대륙에서 남미대륙과 가까운 곳에 남극반도가 있는데 이곳은 지각 변동도 심하고 화산활동도 많은 곳이다. 그런 곳이 바다밑 지표에서 아주 유용한 광물이 많이 생성되고 메탄수화물이라는 에너지도 많다. 그러니 각 국에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럼 왜 연구할까? 명목은 이렇다. 지각연구를 통해서 전 세계의 지각변동을 예측하고 대비하려는 인류보호의 차원에서 연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속이야 당연히 경제적으로 언젠가는 이용하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담겨있다. 우리도 뒤쳐질 수 없으니 뛰어들었고 또 이런 경제적 효과가 있어야 정부차원에서 예산이 책정될 수 있다.

 이제는 왜 수많은 나라가 비싼 돈 들여 이곳에 기지를 건설하고 있는지 알 것이다. 우리도 2011년에 대륙본토에 (지금은 남극 반도 북쪽에 있는 셰틀랜드 군도에 기지가 있다.) 기지를 건설할 계획으로 부지선정을 준비 중이다. 대륙 본토에 들어가야 과거의 역사를 알 수 있고 본격적인 혹한지역 연구가 가능하다. 그만큼 돈은 많이 들고 대신 나중에 얻어내야 하는 것도 많다. 그러나 이곳을 방문하는 많은 연구원들은 이런 경제성을 자꾸 생각하며 남극을 연구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평화적인 목적의 남극연구가 자꾸 경제적 목적으로 치우치면 결국 순수한 학문연구는 힘들어지고 돈 되는 연구만 집중될 것 아니냐는 말이다.

오지에서 보는 한국

 앞서도 언급했지만 이곳에서도 한국의 방송을 본다(아리랑 국제 방송과 YTN). 특히 여기 있는 동안 가장 핵심이 되었던 뉴스는 바로 황우석 박사에 관한 뉴스였다. 연구원들 대부분이 박사이고 학자여서 특히 이런 뉴스에 관심이 많다. 그러나 뉴스 이외의 부분에서는 전혀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 없다. 그러니 이곳에서 오래 생활한 월동 연구대는 한국이 무척 심각하게 돌아간다고만 본다. 뉴스만 보니 그럴 수밖에... 뉴스를 만드는 한 사람으로 정말 심각한 반성을 할 대목이다.

 우리는 뉴스라는 이유로 너무 무거운 뉴스 즉 경성 뉴스에만 몰두해 왔다. 취재하는 아이템도 꼭 경제적, 과학적, 실용적인 차원에서만 접근한다. 물론 나도 이곳에서 같이 온 취재기자와 거의 그런 아이템만 했다. 그러나 이제는 부드럽고 즐거운 뉴스 즉 연성 뉴스도 많은 관심을 갖고 더 많이 다루어야 한다. 고래가 뛰고, 펭귄이 귀엽게 걷고 또 해표가 눈을 껌뻑거리고 등등 사람들이 보고자 하는 것은 오히려 이런 것일 수 있다.

 앞의 글에서 남극에 관한 정보를 주며 딱딱한 내용만 적어놓고선 이제 와서 무슨 동물 영상이냐고 의아해 하는 사람도 있을지 몰라도, 많은 것을 알고 촬영하는 것과 전혀 모른 체 무조건 촬영하는 것은 다르다. 우리는 영상을 보는 사람들에게 보고 싶어 하는 것을 촬영해야 하지만 알고 촬영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카메라기자들이여 항상 노력하는 기자가 되자!

성인현 기자 shengd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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