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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 - 세계의 축제>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

 사람에게는 누구나 자신이 속한 범주가 있고 해야 할 일이 있으며 자신에게 맞는 위치가 있다. 그러나 자신의 위치에서 조금 벗어나 패기와 도전 의식을 가지고 무엇인가 시도한다는 것, 그것은 짜릿함 그 자체일 것이다. 필자의 머릿속에는 언제나 직종의 한계를 넘어 창의적으로 특집 제작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있었고, 2005년 11월 드디어 그 기회가 찾아 왔다.

 필자는 정기 인사와 때를 같이해 영상기획팀장으로 보직을 받았다. 그리고 주변 선 후배들과 논의하고 고심한 끝에 8부작, 세계의 축제라는 아이템으로 특집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세계 각 국에는 그 나라를 대표하는 수많은 지역 축제와 문화적 특성을 살린 페스티벌이 있다. 그러한 축제들은 또한 고급화 되고, 상업화 되어 엄청난 수익 창출까지 이루어 내고 있는 실정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거창한 이름 속에 실속 없는 내용들만 담아낸 축제들이 많아 실패를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본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는 세계 각국의 축제현장에 깊숙이 파고들어, 우리나라의 축제와 비교 분석하여 우리 것을 고급화시키고, 국제화시켜 수익창출에까지 이바지할 수 있는 비전과 방향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다.

 운이 좋았던지 제작지원금도 필자 스스로 해결할 수 있었다. 그동안 기자생활을 하면서 알게 된 인맥들의 도움으로 어렵지 않게 몇 곳에서 협찬을 받은 것이다.

 보직부장이 수시로 자리를 비우고 해외 및 국내 출장을 팀원인 카메라기자와 함께 다닌다는 것에 주위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고, 그 부담 또한 만만치 않았다. 해외출장 111일, 국내출장 25일이라는 긴 여정은 봄과 여름을 지나 가을 그리고 겨울로 이어졌다.

 먼저 긴 취재기간 동안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아찔했던 순간의 기억들을 소개한다.

 중국 하얼빈에서의 취재는 공안과 규제와의 싸움이 아니라 혹한과의 전쟁이었다. 영하 38도 이상 되는 기온에서의 야외촬영은 몸과 마음을 순식간에 얼려버릴 정도로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카메라 핸드그립을 잡고 10초만 움직이지 않고 있으면 바로 손가락 끝이 마비되고, 눈썹에 눈꽃이 피고 몸 전체는 얼음조각상으로 변하는 듯 마비증세가 왔다. 정말 다시는 경험하기도 싫은 기억이었고 그 현장에서 무려 4시간 동안 필자와 함께 고생한 오유철 기자는 평생 잊지 못할 동지가 됐다.

 프랑스 니스 카니발과 망통 레몬 축제를 취재하고 브라질 리오카니발을 연이어 취재하려던 계획은 느긋한, 그리고 안전 제일주의를 원칙으로 하는 프랑스인들 때문에 완전히 무산될 뻔 했다. 2월 19일 니스에서 출발해 20일 서울에서 1박하고 여름옷을 다시 챙겨 21일 브라질로 출발하면 몸은 좀 피곤하지만 가능한 일정인 듯 했다.

 예정대로 모든 수속을 마치고 게이트 앞에서 기다리는데 창밖으로 보이는 활주로에는 보슬비가 약간씩 내리는 가운데 작은 파도도 보이고 있었다. 그런데 파리로 우리 일행을 데려다 줄 에어 프랑스 비행기가 보이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우천으로 모든 비행 스케줄이 취소됐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항공사 직원들은 다음날 가든지, 아님 가지 말든지 알아서 하라는 투였다. 우리는 3시간 후에 인천행 대한항공을 갈아타야 하는 일정인데 너무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다. 그러나 우선 마음을 진정시키고 차선책을 찾아야 했다.

 나는 후배에게 짐을 다시 찾으라고 얘기한 후 다른 항공 일정을 알아보았다. 다음날 마르세이유발 파리행 오전 6시 비행기를 타면, 파리에서 에어 프랑스 편으로 21일 오전 10시 경에 인천에 도착할 수 있었고, 인천에서 당일 오후 3시 출발하는 브라질행 비행기를 탈 수 있을 듯 했다.

 모든 수속을 마치고 체크아웃을 한 호텔에 다시 투숙했다. 몸과 마음은 파김치 상태였고, 사랑하는 가족들 생각에 잠이 오지 않았다. 다음날 새벽 3시에 일어나 2시간을 차로 달렸다. 마르세이유 공항에 도착하니 파리행 에어프랑스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말 다시는 생각하기조차 싫은 힘든 상황이었다. 김윤석 기자와 필자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브라질 리우 행 비행기에 다시 몸을 실었다.

 수백 년의 역사를 자랑하며 스페인의 봄맞이 축제를 대표하는 발렌시아의 파야축제가 있다. 파야 축제는 사회적, 도덕적 금기가 허물어지는 일탈의 자유를 제공한다. 파야 축제의 주인공이자, 파야 축제를 대표하는 조형물 파야, 이들은 마지막 밤 축제를 완성시키기 위해  한 줌의 재로 변해야 할 운명을 지니고 있다. 이 화려하고 강렬한 축제 취재도 그리 호락호락 하지만은 않았다.

 프랑스에서 transit을 하면서 파리 드골공항이 수하물의 블랙홀 이라는 악명을 익히 들었던 터라, 필자는 담당직원에게 수하물이 스페인 발렌시아 공항까지 잘 도착하게 해달라는 당부를 몇 번이나 하고 에어 유로파(스페인 항공)에 몸을 실었다. 늦은 밤에 도착하여 아무리 기다려도 우리 가방 3개는 나오지 않았다. 분실물을 신고하는 대행사엔 많은 사람들이 와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번 니스에서의 일이 생각나면서, 느낌이 이상했다. 발렌시아 공항엔 파리로부터 하루 2번 비행기가 도착 하는데 다음날 찾은 개인화물 2개를 제외하고, 가장 중요한 장비가방은 이상하게(누군가가 의도적으로 골탕을 먹이는 듯) 3일간 행방불명이 됐다. 대한항공 파리 지사에선 문제의 그 가방이 비행기에 실리기 위해서 화물칸으로 이동하는 것을 매일같이 확인하고 우리에게 연락을 해주었다. 그러나 3일간 똑같은 확인이 반복 되었으나 우리는 가방을 받을 수가 없었다. 분실화물을 담당하는 사무소의 본사는 바르셀로나에 있고 공항에 있는 영업소 직원들은 너무도 무책임하고 당당하게(?) 공식적인 답변만을  반복했다. 너무 화가 났지만 가방을 찾아서 무사히 취재를 마치기 위해서는 참을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취재를 할 수가 있었다. 정희인 차장과 필자는 이 사건으로 파리의 드골공항을 이용해 transit 할 때에는 가능한 짐은 개인 휴대를 해야 한다는 소중한 경험을 했다.

 이번 특집(8부작, 세계의 축제) 제작은 카메라기자들이 직접 기획하고 연출 및 촬영을 담당하여, 멀티플레이어로서의 가능성을 다시 한 번확인 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돌이켜 보면 지난 1년간 힘들고 어려운  많은 취재 일정을 소화 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 탈 없이 팀원들 모두 건강하게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해내고자 했던 확고한 신념이 있었기에 때문일 것이다. 지금도 작품을 마무리하기 위해 밤낮으로 애쓰고 있는 정희인 차장, 오유철 기자, 김윤석 기자에게 이 자리를 빌어 감사함을 전한다.

 이 소중한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 더욱더 훌륭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다.

YTN 보도국 영상기획팀장 조항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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