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1008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수정 삭제


혼돈의 시간과 정지된 시각

-해군 제 2함대 취재기-

  부산 여중생 살인 사건이 마무리된 지 일주일 남짓. 채 여독이 풀리기도 전에 이번에는 평택이었다. 언론사에 입사해 뉴스를 만든 지 이제 5개월 남짓밖에 안된 수습기자에게, 이는 너무나 가혹한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천안함 침몰 사건은 내게 시작부터 혹독한 시련을 줬다.
  평택 해군 제2함대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햇볕 따뜻한 3월의 마지막 토요일이라 고속도로는 더욱더 막혔고, 1분이라도 빨리 현장에 도착해야 하는 내 마음은 그만큼 더 까맣게 타들어갔다. 내 능력으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수긍하고 넘어가기에는 얼마나 많은 자괴감이 따르는가. 평택으로 내려가는 차 안에서 이 자괴감을 다스리느라 꾀나 애를 먹은 것 같다. 하지만, 그때는 미처 몰랐다. 현장에는 이보다 더 큰 자괴감이 기다리고 있을 줄은.

“조금만 더 통화했더라면…….”

  길고 지루한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평택 해군 제2함대 정문이 드디어 눈앞에 나타났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많은 사람이 보였고, 그들은 크게 두 갈래로 나눌 수 있었다. 한쪽은 자식과 남편의 생사가 궁금해 안절부절 못하는 실종자 가족들. 다른 한쪽은, 이들을 누구보다 먼저 취재해 속보경쟁에서 이기려하는 취재진들, 나 역시 차에서 내리자마자 후자집단에 속하게 됐다.
  함대 민원·행정 안내실 안에 있는 가족들은 누가 봐도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얼굴, 특히 눈가 주위가 심하게 부은 몇몇 분들을 보며, 밤새 얼마나 오열했는지가 감히 눈앞에 그려졌다. 그뿐만 아니라 혼자서는 도저히 앉아있을 수 없었는지 주변 누군가를 의지한 채 겨우 텔레비전만을 응시하는 실종자의 아내, 그리고 그분을 다독이는 작은 손, 고개를 숙인 채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하고 계신 실종자의 아버지, 애꿎은 담배만 계속 태우는 실종자의 숙부, 보는 내가 이렇게 가슴 아픈데, 당사자들을 얼마나 찢어지겠는가.
  한참을 가슴 아파하며, 그들의 슬픔을 느껴보려는 와중에 누군가 내 손을 붙잡았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한 어머니께서 내 손을 잡고 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자신의 아들은 아픈 동기를 대신해 천안함에 탔다가 변을 당했다며 어떻게 좀 해달라고 애원하시는데, 그 순간 모든 것이 멈춘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던 나는, 잠시 카메라를 내려놓고 잘 될 거라며 어머니를 위로했지만, 그분은 한참을 땅에 앉아 통곡하시다 가족들의 부축을 받고 안으로 들어가셨다.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 카메라를 들고, 기자라는 호칭으로 불리며 현장에서 돌아다니지만, 막상 그들에게 내가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족들에게는 자신들의 남편, 아들의 생사가 달린 문제가 결국 나에게는 밥벌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식한 순간, 무력감은 부끄러움으로 승화되어 나를 창피하게 만들었다. 그들의 가슴은 찢어져도 내 가슴은 찢어지지 않기 때문에.

“내가 잘 찍는 수밖에…….”

  생각이 마저 정리되기 전에 주변이 갑자기 시끄러워졌다. 군의 성의 없는 대처에 화가 난 실종자가족들이 부대 안으로 밀고 들어가려 했기 때문이었다. 순식간에 2함대 정문 게이트가 무너지고 가족들은 여세를 몰아 부대 안 강당 쪽으로 뛰어갔다. 놀란 기자들은 서둘러 그들의 뒤를 따랐고, 더 놀란 군인들은 황급히 추가 병력을 불러와 가족들과 취재진에게 총부리를 겨누었다.
  하지만, 아무리 무단으로 들어왔어도 자신들이 궁극적으로 지켜야 할 대상에게, 국방의 임무를 완수하다 생사도 모르게 돼 버린 실종자의 가족들에게, 총을 조준하는 군대가 어디 있단 말인가. 울분이 터졌고, 나도 모르게 총을 겨누는 헌병에게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던 중 누군가 내 뒤에서 팔과 몸을 잡았고, 자연스레 총 앞에 무방비로 서게 되었다. 비참했다. 두렵고 무섭다기보다는, 기자라는 신분을 떠나서 대한민국 국민을 나라의 주적처럼 대하는 현실에 화가 났다. 다행히 실종자 가족들과 취재진들이 공보장교를 몰아세워 인명피해 없이 상황은 정리됐지만 이런 참기 어려운 상황은 천안함 함장을 만나며 극에 달했다.
  실종자 가족들 앞에서 전혀 미안한 기색이 없는 함장의 철면피를 보며, 무언가 잘못되어 간다는 것을 직감했다. 공보장교가 옆에서 시키는 대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상황에 함장은 최선을 다했다.”라는 공허한 대답을 되풀이하는 함장을 보며, 자기 할 말만 해버린 채 줄행랑치는 함장을 보며, 이건 그냥 덮고 넘어갈 수 없다고 여겼다. 그리고 이 생각이 내 자괴감을 깨는 결정적 이유가 됐다.
  사실을 알기 전까지, 절규하는 가족들의 모습들 하나하나를 내 뷰파인더에 담는 게 너무나 힘들었다. 몸이 힘든 것도 있었지만, 마음이 상당히 불편했다. 어찌 보면 카메라기자로서 자격 미달일 수도 있지만, 거침없이 REC 버튼을 누르는 타사 선배들과 달리 REC 버튼에 엄지손가락만 갖다 댄 채 망설인 순간도 있었다. 그들이 왜 애절하게 아파했는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야 내가 이들을 왜 잘 찍어야 되는지 깨달았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의 목숨을, 국가에 믿고 맡겼다가 뒤통수 맞은 가족들을 가슴으로 공감했고, 이런 그들의 슬픈 사정은 반드시 카메라를 통해야만 세상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김영호 / mbn 영상취재부

※ <미디어아이> 제73호에서 이 기사를 확인하세요
미디어아이 PDF보기 바로가기 링크 http://tvnews.or.kr/bbs/zboard.php?id=media_eye&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941

  1. 작전중인 군과 취재진은 협력관계 유지해야

    지난 23일 북한이 연평도에 무차별적으로 포격을 감행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북의 도발소식이 전파를 타고 전국에 퍼진 이후 온나라는 엄청난 혼란에 휩싸였고, 이를 취재하고 방송하는 기자들은 그들만의 또 다른 전쟁을 치러야했다. 어렵사리 연평도에 올라...
    Date2010.12.16 Views12155
    Read More
  2. 하버드대의 운동벌레들

    제목 없음 하버드대의 운동벌레들 작년과 마찬가지로 올해에도 KBS 스포츠국에서는 학교 체육에 관한 특집물을 제작하였다. 그 동안 우리나라의 학교 체육은엘리트 운동부를 중심으로 한 체육교육이었다. 이러한 형태의 체육 교육은 운동부 학생들의 수업 참...
    Date2010.11.16 Views12682
    Read More
  3. 저곳이다! 황장엽안가를찾다

    제목 없음 저곳이다! 황장엽안가를찾다 사건 캡으로부터 받은 전화 한 통!“ 황장엽씨가 사망했고 안가를 찾아 취재를 해야 한다. 주소는 논현1동!”번지수 없는 논현1동 하나로 보안 속에 둘러싸인 황장엽씨 안가를 무작정 찾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
    Date2010.11.16 Views10886
    Read More
  4. 한번의만남, 두번의헤어짐

    제목 없음 한 번의만남, 두 번의헤어짐 추석계기 남북이산가족 1차 상봉 행사를 마치며... 1차 상봉행사가 지난 10월 30일부터 11월 1일까지 금강산에서 이루어졌다. 분단으로 인해 자신이 원하지 않은 삶을 살아야만 했던 가족들의 이야기. 한국 근∙현...
    Date2010.11.15 Views12023
    Read More
  5. 강제병합 100년 사할린 취재

    출장 다이어리 ♬~~ 잊으라 했는데~ 잊어 달라 했는데~ 그런데도 아직 난~ 너를 잊지 못하네~ 어떻게 잊을까~ 어찌하면 좋을까~ 세월가도 아직 난~ 너를 잊지 못하네~~♬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로 불과 3시간 거리의 땅 사할린, 그곳에서 어느 할아버지가 우리에...
    Date2010.11.04 Views10104
    Read More
  6. 태극 여전사, 월드컵 신화를 이루다!

    태극 여전사, 월드컵 신화를 이루다! 지난 7월 28일, 20세 이하 여자월드컵에서 파란을 일으키며 예상외의 성적을 거두고 있는 한국 대표팀의 취재를 위해 급히 독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10시간여의 비행 끝에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했고, 다시 자동...
    Date2010.09.28 Views9603
    Read More
  7. No Image

    프랑스 기자교육양성센터(CFPJ) 방문기

    프랑스 기자교육양성센터(CFPJ) 방문기 난 2일, 프랑스 파리 2구에 위치한 기자교육연수센터(Centre de Formation et de Perfectionnement des Journalistes, 이하 CFPJ)에 다녀왔다. 이는 릴(Lille) 저널리즘고등교육원(Ecole Supérieure de Journalis...
    Date2010.09.28 Views5750
    Read More
  8. 태극 여전사, 월드컵 신화를 이루다!

    태극 여전사, 월드컵 신화를 이루다! 지난 7월 28일, 20세 이하 여자월드컵에서 파란을 일으키며 예상외의 성적을 거두고 있는 한국 대표팀의 취재를 위해 급히 독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10시간여의 비행 끝에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했고, 다시 자동...
    Date2010.09.08 Views9968
    Read More
  9. 2010 남아공 월드컵, 한국 축구 가능성 보여줘

    2010 남아공 월드컵 인천에서 두바이를 경유해 24시간 만에 도착한 요하네스버그는 서울보다는 조금 서늘한 날씨였다. 낮엔 반팔 차림도 가능하지만 저녁이면 쌀쌀해졌다. 그래도 겨울이라기보다는 늦가을정도로 구름 한 점 없는 파란하늘에 태양이 눈부셔 선...
    Date2010.07.20 Views10555
    Read More
  10. No Image

    남아공 월드컵 거리응원 취재기

    남아공 월드컵 거리응원 취재기 2002년에 고3이었던 나에게 거리응원은 부러움의 대상일 뿐이었다.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이유로 함께 어우러져 웃고 울었던 그날의 기분을 나는 그저 말로만 전해 들었을 뿐. 2004년 아테네 올림...
    Date2010.07.20 Views5433
    Read More
  11. 6.25전쟁 프랑스 종군기자 앙리 드 튀렌 인터뷰

    6.25전쟁 프랑스 종군기자 앙리 드 튀렌 인터뷰 戰後 5년… 또 3차 대전이 터진 줄 알았다… 1950년 긴장과 공포 속에 한국행 비행기에 몸 실어 지난 6월 7일, 6.25 전쟁 발발 60주년을 앞두고 당시 미군에 종군했던 앙리 드 튀렌 (Henri de Turenne, 이하 튀렌...
    Date2010.07.15 Views10611
    Read More
  12. 김길태 사건 취재기

    “길태다.” 2010년 3월 10일 15:00경 부산 사상구 덕포시장 인근에서 김길태가 붙잡힌다. 경찰이 이양실종사건의 용의자로 김길태를 지목하고 공개수사로 전환한지 8일, 이양의 시신이 발견된지 4일만이다. 김씨의 흔적을 찾아 사상구를 헤매던 기자들이 급히 ...
    Date2010.05.14 Views10353
    Read More
  13. 백령도 그 침묵의 바다 앞에서

    그 침묵의 바다 앞에서 천안함이 바다에 침몰했다는 소식을 듣고 뉴스를 모니터 하다가 귀에서 맴도는 소리가 있었다. 바로 '백령도 수심 20m 부근에 침몰하였다"라는 기자의 목소리... 이 소리가 나를 움직이게했다. 수심20m면 스쿠버다이빙으로 얼마든지 내...
    Date2010.05.14 Views10093
    Read More
  14. "사랑한다 아들아!"

    ‘사랑한다. 아들아.’ 이 말을 듣고도 가슴이 먹먹해지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뉴스뿐만 아니라 여러 프로그램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였다. 그런 이 말을 나는 현장에서 직접 듣고 있었다. 미어지는 어머니의 목소리, 한마저 느껴지는 가족의 목소리...
    Date2010.05.14 Views9732
    Read More
  15. 혼돈의 시간과 정지된 시각

    혼돈의 시간과 정지된 시각 -해군 제 2함대 취재기- 부산 여중생 살인 사건이 마무리된 지 일주일 남짓. 채 여독이 풀리기도 전에 이번에는 평택이었다. 언론사에 입사해 뉴스를 만든 지 이제 5개월 남짓밖에 안된 수습기자에게, 이는 너무나 가혹한 소식이 ...
    Date2010.05.14 Views10082
    Read More
  16. No Image

    천안함 침몰, 백령도 취재기 -YTN 김현미

    백령도 천안함 취재기 YTN 영상취재1부 김현미 천안함 함미 인양을 앞두고 추가 인원이 백령도에 들어가게 되었다. 사건이 터진 후 줄곧 가고 싶었던 현장에 드디어 나도 들어가게 된 것이다. 선배들은 무조건 옷을 두껍게 입으라며 신신당부를 했다. 그래도 ...
    Date2010.05.10 Views6241
    Read More
  17. 쇄빙선 아라온호의 한계와 희망

    쇄빙선 아라온호의 한계와 희망 신동환/ SBS 영상취재팀 아직 활동하고 있다는 눈 덮인 활화산인 멜버른 산과 희고 긴 얼음 협곡, 대륙의 산맥들, 빙하가 지나간 거대한 자리, 조그맣게 자리하고 있는 타국의 기지들. 남극 대륙에서의 취재 마지막 날 헬기를 ...
    Date2010.04.16 Views10059
    Read More
  18. 고단했지만 활력이 된 설악산 빙벽 등반 교육

    고단했지만 활력이 된 설악산 빙벽 등반 교육 고영민 / KBS 보도영상팀 지난 1월 23일부터 7일 간 설악산 일대에서 고산지대 취재능력 향상을 위한 위탁연수를 받았다. 외부 위탁연수여서 KBS 선후배 동료들도 있었지만, 사회에서 각자 다른 일들을 하다가 모...
    Date2010.02.23 Views11375
    Read More
  19. 지옥보다 더 끔찍했던 아이티 참사

    지옥보다 더 끔찍했던 아이티 참사 신봉승 / KBS 보도영상팀 아이티는 가는 길도 멀었다. 서울에서 아이티의 수도 포르토프랭스까지 가기 위해서 비행기를 네 번 갈아탔고, 여섯 번의 기내식을 먹어야 했으며 도미니카공화국 공항에서 육로로 10시간을 달려서...
    Date2010.02.23 Views10234
    Read More
  20. 바다에 잠길 운명의 섬나라, 투발루

    바다에 잠길 운명의 섬나라, 투발루 필자: “Hi, nice to meet you. Thank you for letting me in this cockpit. 만나서 반가워 그리고 이 비행기 조종실에 날 들여보내줘서 고맙고. 조종사: So, I'm going to be on TV, right? 그럼, 이제 내 얼굴이 텔레비전...
    Date2010.01.13 Views13350
    Read More
  21. 3D 시대는 오는가? CES쇼를 통해본 3D시대

    3D 시대는 오는가? CES쇼를 통해본 3D시대 최근 아바타란 영화가 우리나라의 외화 흥행역사를 쓰고 있다고 해서 화제이다. 그 중 3D로 상영되는 영화관의 경우엔 일반 2D 영화보다 비싼데도(12000원) 불구하고 연일 매진을 기록 중이다. 아바타는 3D로 봐야 ...
    Date2010.01.13 Views11314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6 7 8 9 10 11 12 13 14 15 ... 18 Next
/ 18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