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나미로 초토화된 일본 동북부 지역 취재를 마치고 영상송출을 위해 영사관이 있는
센다이 시내로 복귀하는 길.
로밍서비스를 통해 휴대폰에 다음과 같은 메시지가 뜬다.
“현지 중계차 철수로 송출 불가. 각자 현 위치에서 가능한 인터넷 송출 방법 강구 바람”
일본 전역에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유출의 위험 경고가 반복적으로
방송되던 날이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 라더니 이 무슨 어이없고 황당한 일이란 말인가?
자세한 상황을 알아본 결과 영상송출을 담당해 주기로 계약된 일본 현지 중계팀이
비내리는 날 방사능이 유출된 후쿠시마 지역에서 멀지 않은 센다이에 머물고 있는 상태가 너무 위험하다고 판단하여 철수해 버렸고 현재 돌아오라는 우리 취재팀의 회유에도 무시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상황 설명을 듣고 보니 결국 목숨이 귀해서 도망갔다는 것인데....
목숨이 귀해 도망갔다는 데에 딱히 뭐라고 비난할 논리도 없는 것 같고, 한편 현지인도
도망간 지역에서 지금 나와 동료들은 뭘하고 있는 건가 싶기도 하다가도, 그나저나 통신도
잘 안되는 지역에서 영상송출을 어째야 하는 건가 캄캄하기도 하고, 또 입사 십년차가 되니 중계차가 도망가는 별별 희한한 상황도 다 겪어 보는 구나 싶고.
어쨌든 취재팀들은 각자 임기응변을 발휘해서 어찌어찌 무사히 영상 송출을 마쳤다.
그날밤 동료들과 자판기에서 뽑은 맥주를 나눠 마시며 중계차 줄행랑 사건은 황당하고 재미있는 안주거리가 되어 술자리에서 회자 되었다.
그런데 최근에 후쿠시마 인근을 촬영했던 kbs 카메라 감독이 피폭되었다는 뉴스를 접하고 나니 당시 중계차 줄행랑 사건이 새롭게 다가온다.
위험 지역에 제대로 된 보호장비 없이 신체를 노출한 채 일과 시간에 쫒기며 냉정한 판단을 보류해야 하는 우리의 취재현실.
후쿠시마 지역 취재팀을 결정하는 선택의 순간 은근히 느껴지던 불안간과 긴장감.
정확한 현지 상황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도 일단 장비부터 들고 현장에 들어가야 하는 분위기.
정확한 내막은 알지 못하지만 만일 당시 일본 현지 중계팀이 주체적으로 판단을 내리고 과감한 철수결정을 하고 그것이 받아들여진 것이었다면?
술자리의 우스개 농담과는 별개로
어쩜 그들의 판단이 더 정확하고 용감한 선택이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설치환 SBS 영상취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