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 사고가 언론에 준 숙제..
“기자들이랑 얘기해봤자 말도 안 통해!”
실종자 가족들이 거세게 항의를 하고 갔다. 뉴스 보도 때문이다. 난 정신이 번쩍 들었고, 이곳이 어딘지 다시금 되새겼다. 실종자 가족의 애끓는 외침이 메아리치는 곳, 진도 팽목항이다.
6개월의 수습을 떼던 날 아침에 나는 진도 팽목항으로 향했다. 팽목항으로 들어서는 초입, 나무에 드문드문 걸린 노란 리본들에서 현장의 초조함과 스산한 긴장이 느껴진다. 세월호 침몰 이후 안산에서 느껴왔던 그것과는 다른, 비장함마저 서린 긴장이다. 첫 출장이라는 점은 차치하고 내가 그런 느낌을 받은 큰 이유는, 사고 이후 국민들의 극심한 불신과 마주한 우리 언론들 때문이었다. 언론이 도매금으로 이렇게 매를 맞았던 적이 또 있었을까. 언론의 존재 이유는 국민의 알권리 충족이건만, ‘알아야 할 권리’가 어느새 ‘알고 싶은 권리’로 둔갑했으니 이에서 비롯된 국민의 외면은 당연한 결과였다. 이런 분위기를 보여주듯 내가 실종자 가족들로부터 처음 들은 말은 “병신같은 기자들”이었고, 앞서 언급한 “기자들이랑 얘기해봤자 말도 안 통한다”는 지탄이었다. 언론과 실종자 가족들 사이의 벽은 생각보다 높았다.
실종자 가족들이 겪는 아픔을 그 누가 알까. 그럼에도 국민들이 보내는 응원의 손길은 분명 큰 힘이 되고 있었다. 분향소가 마련된 진도향토문화관에는 전국의 학교, 회사, 단체, 개인들이 보낸 구호품들이 쌓여갔다. 일사불란하게 구호품을 정리하던 군인들, 실종자 가족들과 잠수부들을 위해 보내진 휴대용 산소 공급통, 작은 도움이나마 되고자 혼자서 진도까지 찾아온 자원봉사자들이 떠오른다. 진도 체육관과 팽목항에서는 자원봉사 단체들이 식사와 간식, 생필품을 조달해주고 간이 약국, 진료소, 물리치료실 등을 운영하며 실종자 가족들을 보살펴줬다. 억장이 무너지는 듯한 아픔을 함께하고자 하는 국민들의 손길에서,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 딸에게 예쁜 얼굴로 만나자며 게시판에 노란 포스트잇을 붙이던 엄마도, 그 손길에서 조금이나마 힘을 얻었으리라.
언론에 대한 불신으로 움츠러들어있던 팽목항에서 6일째 되던 날, 배를 타고 사고해역으로 향했다. 한 시간여를 달리니 바지선과 리프트 백이 보인다. 어깨에 카메라를 얹었다. 배와 파도가 부딪혀 만드는 흔들림 때문에, 뷰파인더에 비친 사고해역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마냥 요동쳤다. 시신, 오열, 장례식이라는 단어들로 점철된 안산에서 뷰파인더를 통해 절망만을 보았다면, 이 사고해역에서는 정말이지 희망을 보고 싶었다. 단 한 명의 생존자라도 이 검은 바다를 뿌리치고 구조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다. 사고해역이 한 눈에 들어오는 동거차도의 정상에서 1분이 넘도록, 배 위에 착륙하는 헬기와 보트에서 내리는 잠수부들을 좇은 이유다. 단 한명이라도 무사히 구조되는 ‘희망’을 전해줄 수 있을지 몰라서..
수습 막바지에 겪은 대형 참사. 세월호 침몰 사고는, 갓 수습을 벗어난 내가 언론이 무엇을 지양하고 지향해야할지, 언론과 국민의 사이에 놓인 알권리란 무엇인지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줬다. 그리고 날이 선 국민과 고개 숙인 언론이 그 간극을 메워나가는 것은, 언론 스스로가 풀어나가야 할 숙제가 될 것이다. 날이 갈수록 실종자 가족은 줄고, 유가족은 늘고 있다. 마지막 한 명까지도 가족, 친구의 품에 반드시 돌아오길 빈다.
이현오 / YTN 영상취재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