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비상식적인 사고가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다. 그리고 많은 것을 잃었다. 300여명에 이르는 소중한 생명을 잃었다. 허술한 안전시스템에 국가는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지지부진한 세월호 법안처리에 국민은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우리는 ‘언론의 품격’을 잃었다.
특히, 내가 속해 있는 종편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선정적인 보도, 본질을 흐리는 보도에 네티즌은 기레기(기자 쓰레기)라는 별명을 붙여주며 놀리기 일쑤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을까. 가슴 아픈 현장을 냉철하고 객관적인 프레임에 담겠다던 ‘우리의 맹세’는 온데간데없다.
아카이브 속 대답 없는 디지털 영상정보처럼 곤히 잠들어 버린 건 아닌지 반성이 밀려온다.
남은 건, 국민의 호된 꾸지람이다.
참사 초기 보도부터 실수투성이였다. ‘전원 구조 오보’, ‘검증 안 된 민간 잠수사 인터뷰’, ‘앵커의 막말’ 등이 구설에 올랐다. 살벌한 취재경쟁은 현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최소한의 취재윤리마저 무용지물이 됐다. 우리가 자초해 국민의 꾸지람을 듣는 형국이었다.
실종자 구조 작업이 길어지면서 세월호 참사의 본질에 집중하는 언론은 점점 줄어만 갔다.
청해진 해운의 실질경영자인 유병언 검거관련 취재에 혈안이었다. 그의 행방에 사실 확인이 안 된 ‘썰’들이 기사에 묻어나왔다.
유병언의 시신이 발견 되고, 그의 아들 유대균이 검거됐을 때 막장의 정점을 찍었다. ‘유대균이 치킨을 배달해 먹었다’ ‘유대균과 박수경은 무슨 관계냐’ 는 등의 보도는 실소를 금치 못하게 만들었다. 언론이 진실을 규명하지 못할망정, 선정적 보도로 여론을 호도한 것이다. 사안의 본질을 덮는 데도 일조했다. 비판받아 마땅했다.
남은 건, 국민의 싸늘한 시선이다.
만신창이가 된 보도행태에 국민의 시선은 냉엄했다. 신뢰받기는커녕, 취재 중에 만난 국민들은 제대로 보도하라며 핀잔까지 줬다.
우리는 재난보도 매뉴얼에 충실하지 못했다. 오열하는 모습의 클로즈업, 반복되어 나오는 시신 운구 영상 등은 보도에 꼭 필요하지 않았다. 민감한 상황에서 근접 취재해 서로 옥신각신하는 모습은 제 살 깎아 먹는 행위였다. 이 모두를 근절하자는 목소리는 이번에도 나왔다. 하지만 반복되는 과열 취재 속에선 여지없이 지켜지지 않았다. 각 방송사의 대표자가 모여 강제적 합의를 통해서라도 근절해야 우리의 미래가 있다.
또한, 지금부터라도 세월호 참사의 원인에 대한 의문을 풀어나가는데 집중해야 한다.
청해진해운의 비리와 과실은 참사 원인의 일부에 불과하다. 유병언 일가는 위법행위에 책임지고 처벌받으면 끝이다. 하지만 그 일가의 일벌백계와 참사 원인의 본질은 궤를 같이 하지 못한다. 오직 ‘왜 침몰했는지’가 본질이고, ‘대형 참사를 막을 예방법은 무엇인지’가 풀어야 할 숙제다. 이를 파헤치고 풀어야 국민이 원하는 알권리에 부응하는 것이다. 그리고 유족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최소한의 도리다.
지난 6월, 나는 진도 팽목항으로 다시 향했다. 분위기가 사뭇 달라져 있었다. 항 주위를 가득 메웠던 천막들이 많이 사라졌다. 추모객들의 발길도 줄었다. 바다를 향해 곱게 차려진 음식상만이 외로이 희생자의 넋을 달래고 있었다. 활기차고 행복한 기운은 진도 앞바다의 썰물에 모두 쓸려 내려갔다. 비단 진도만은 아닐 것이다. 대한민국 전체가 진도의 차가운 바다처럼 냉랭하다.
차디 찬 국민의 마음을 따스하게 바꿀 수 있는 우리의 할 일을 찾아야 한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찾도록 사회에 힘을 불어넣는 일이 첫걸음이다. 끊임없이 관심을 갖고 보도하는 것도 필요하다. 잊혀진다는 것만큼 유족을 힘들게 하는 것은 없다.
행복을 빼앗긴 팽목항. 이곳을 시발점으로 치유의 밀물이 들어오도록 바람을 불어 넣자. 그 바람은 정론에 입각한 보도와 사람을 생각하는 취재윤리일 것이다. 이제 우리가 제 역할을 할 때다.
배완호 / MBN 영상취재1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