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아쉬움만 남았던 15일
첫 단추부터 어긋났다. 대회 시작 전 출입용 AD카드를 본인이 직접 방문하여 ‘활성화’해야 한다기에 지정된 장소중 하나인 주경기장을 찾았다. 어차피 출입 시마다 사진과 대조할 텐데, 뭔 ‘활성화’인가?! 테러위협으로 보안을 강화하고자 직접 신원을 한 번 더 확인해야 된단다.
‘그래, 귀찮지만 G20회의 때도 그랬고... 뭐, 협조해야지’ 하지만 광활한 주경기장 내, 외부를 도보와 차량을 번갈아가며 두어 바퀴 돌다시피 뒤져보아도 활성화를 해준다는 등록센터를 안내하는 표지판은 없었으며, 만나는 안내요원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이 “저도 잘 모르겠는데요?”였다.
30여분을 헤맨 끝에 찾은 등록센터는 경기장 외곽에 컨테이너박스만한 크기로 나를 비웃듯 숨어있었다. 사무실 하나 찾는 일 조차 숨은 보물찾기의 전통놀이문화와 결합시켜 하나의 스포츠로 승화시킨 조직위의 능력에 감탄하며 들어선 등록센터. 담당요원에게 정말 찾기 힘들었노라고, ‘제발 곳곳에 안내문구 몇 개 붙여달라’고 하니, 돌아오는 대답에 할 말을 잃었다. “저희도 한참을 헤매다가 겨우겨우 찾아왔어요”. “아...네...”
기자에게도 스포츠정신을 함양하는 조직위의 운영은 거기가 끝이 아니었다. 양궁 컴파운드 결승이 있었던 계양경기장. 믹스드존에서 자리를 잡고 선수들을 기다리는 내게 운영요원이 와서 말한다. “선수들 인터뷰는 여기서 안하고 2층 프레스룸에 마련된 기자회견장에서 합니다.” 뭔가 이상했지만 그리한다고 하니 자리를 옮겼다. 한참이 지났을까. 분명 시간이 되었는데 아무도 없다. 뭔가 잘못된게 아닐까? 이런 쌩한 느낌은 예전에 ‘물먹던’ 바로 그 기분. 아니나 다를까, 아까 그 운영요원이 다급하게 와서 말한다. “죄송하지만 믹스드존 인터뷰가 맞다”고, “다시 내려가셔야 합니다”. ‘지금 누굴 X개 훈련시키냐’고 항의할 시간조차 없었다.
말을 듣자마자 우사인 볼트로 빙의하여 다시 뛰어 내려간 믹스드존에는 다행히 인터뷰가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인터뷰가 끝나고 송출을 위해 또 프레스룸으로 뛰어올라갔다. 투혼을 불사르며 겨우 송출을 마치자마자 전날 과음의 여파가 신호를 보낸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취재하다가 결국 구토까지 하는 나를 보고 외신 사진기자들이 감탄했으리라. ‘한국의 카메라기자는 취재도 마라톤같이 죽을힘을 다하는구나! 오죽했으면 송출을 마치자마자 저렇게...’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본의 아니게 한국 기자정신을 외신들 앞에 선보이게 해주신 조직위에 다시 한 번 감사했다.
취재현장에서도 모두가 하나가 되었다. 관중석 사이에 위치한 ENG-ZONE은 원칙상으로는 일반 관중의 출입이 통제되거나 허용되더라도 잠깐의 이동 정도만이 허용되어야 했다. 하지만 중간에 출입을 관리하는 자원봉사자들은 AD카드가 없는 일반 관중들을 제지하는 경우가 전무하다시피 했고, 중간에 몰려든 관중들과 함께 어우러져 경기를 관람하기에 바빴다. 결국 ENG존 포인트간 통로는 자원봉사자와 관중, 취재진이 뒤섞이는 바람에 너무 비좁아진 나머지 장비를 가지고 이동하는데도 한참이 걸렸다.
조직위의 운영미숙은 경기 취재의 마지막인 믹스드존에서도 드러났다. 그중 경험했던 최악의 경우는 축구 4강전, 對 태국전이었다. 밀려드는 몇몇 태국 기자들은 자리를 잡지 못한 나머지, 한국 선수들을 기다리고 있던 우리 취재진의 카메라 앞으로 머리를 들이밀며 자국 선수들을 취재하기 시작했다. “우리 선수들이 곧 나온다, 취재해야 하니 ENG존을 침범하지 말고 다른 곳에서 하라”고 아무리 설명해도 막무가내였다. 도저히 안 될 것 같아 운영요원들에게 제지를 부탁하였으나 그 어떤 조치도 하지 못하고 쩔쩔매기만 했다.
취재구역의 관리가 이 정도였으니 기자회견장에 ENG를 위한 단상을 설치해준 것조차 고마워해야 했을까. 그 수많은 취재진이 몰려드는 기자회견장에서, ENG단상 뒤에 유선 오디오 Out 박스를 설치해주기를 바랬던 것은 지나친 바램이었을까. 결국 묘안을 짜낸 나는 기자회견장 스피커의 뒷부분에 있는 Out단자 하나를 발견하고 오디오 라인을 연결하였으나, 이후에는 이것을 목격한 한국, 일본 취재진들이 앞 다투어 이 Out단자 하나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을 벌이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하였다.
‘45억 아시아인의 축제’. 이번 아시안게임 관련 기사마다 붙는 수식어였다. 아시안게임 취재 후기를 요청받고 생각해보았다. 과연 축제였는가. 좋았던 점과 아쉬웠던 점을 써달라는 말에 나는 도무지 좋았던 점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생각에 없는 좋은 말만 늘어놓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혹여 관계자들이 이 글을 보게 된다면 무척이나 섭섭하겠지만 할 수 없다. 진작에 잘하시던가. 조직위 기자회견장에서 ‘아시아 운동회’라는 비아냥거림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매 경기마다, 경기 취재 순간순간마다 아쉬움을 넘어 분노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 이미 끝난 대회, 인천 조직위에 더 이상 할 말은 없다. 다만, 평창 동계올림픽 관계자들에게 한번쯤은 이 글이 눈에 띄기를 바라본다. 외신들이 3년여 뒤에 한국을 다시 찾았을 때, 이 나라 국제대회 운영이 조금은 나아져 있어야하지 않겠는가!
이성재 / MBC 보도국 사회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