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산(巨山)의 마지막을 함께하며..
오랜만에 근무가 없는 주말. TV 전원은 꺼두고 편히 쉬기로 마음먹은 지 이틀째 날.
조용하던 핸드폰에서 뉴스 속보가 연이어 울렸다. ‘[속보]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
얼마 전만 해도 SNS를 통해 병상에서 V자를 그리며 건강히 퇴원하는 모습을 보여준 당신이,
이리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고 하니 믿기지 않았다.
고인에 대한 애도의 마음과 함께 당분간은 조문 행렬 취재로 바쁜 한 주를 보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자가 된 이후로 김영삼 대통령까지 포함하면 세 분의 대통령을 떠나보내게 되었다.
노무현, 김대중 전 대통령 모두 빈소와 장례 과정을 현장에서 취재하긴 했지만, 카메라기자협회 풀로 국장의
마지막 과정인 ‘안장식’을 취재하는 것은 처음이었다.대한민국의 문민정부를 이룩한 국가 지도자의 마지막 모습이기에
더욱 어깨가 무거웠고, 오랜만에 검은 정장을 꺼내 입고 경건한 마음으로 국립현충원으로 향했다.
낮 동안은 세찬 눈이 쏟아졌다. 새벽에 약간 왔다 그친 며칠 전의 눈을 제외하면 낮에 제대로 본 눈으로는
첫눈인 셈이었다. 항상 서민과 함께하며 친근하고 인간적인 모습을 보였던 당신이었기에 국가장 행사에 눈까지 더해져
그의 마지막 길은 더욱 애틋하게 다가왔다. 국회에서 영결식을 마친 운구 행렬은 상도동 자택과 기념 도서관을
거쳐 해가 어스름해질 무렵 현충원에 도착했다.
김 전 대통령의 묘역은 현충원 내 북동쪽, 장군 3 묘역 능선에 자리를 잡았다. 평생의 적이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은
위쪽 300m 지점에, 정치적 라이벌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왼쪽 300m 지점에 있어 김영삼 전 대통령은
돌아가시고 나서도 삼각 편대로 긴장구도를 유지하는 듯했다. 입구에서 간단한 안장 의식을 치르고 나서 운구는
가파른 언덕을 올라 묘소로 진입했다. 그가 대한민국 역사에 남긴 흔적에 비하면 다소 작게 느껴지는 묘소였다.
정치적 아들이라 자칭하는 유명 정치인들을 포함해 250여 명의 유족과 지인들이 그리 넓지 않은 묘소를 가득 채워
추운 눈밭 위에는 온기가 가득했다. 부인 손명순 여사는 충격 속에 하관이 이뤄지는 동안 계속 넋이 나간 표정이었고,
장례 기간 내내 냉정을 잃지 않았던 차남 현철씨도 마지막 순간에는 굵은 눈물을 쏟아내고야 말았다.
그렇게 88년의 긴 세월 동안 수많은 카메라기자 선배들이 담아왔던 김 전 대통령의 모습을 내가 마지막으로
기록했다는 사실에 마음이 숙연해졌다.
돌아가시기 전에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화합과 통합’이었다. 생전에도 전국이 다 내 고향이라 말씀하셨던 터라
봉분의 흙도 고향의 것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평생의 라이벌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과도 서거 직전 극적으로
화해하시며 몸소 화합과 통합을 실천하셨다. 그의 언행이 갈등과 반목을 반복하고 있는 정치권과, 보수와 진보가
끝없이 대립하고 있는 현재 한국 사회에 큰 울림을 주는듯하다. 지도자이기에 앞서 인생 대선배의 마지막 유언을
우리는 다시 한 번 귀 기울이고 되새겨 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강광민 / O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