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3일, 입사하지 얼마 되지 않아 매일 양복을 입고 다니는 제게 선배가 퇴근하기 전에 와서 말했습니다.
“내일은 무조건 편한 옷으로 입고 와라. 많이 뛰어야 할 테니까”
2008년 광우병 집회 이후 최대 규모의 집회가 될 것이라는 11월 14일 민중총궐기 집회를 두고 많은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대학생이었을 때는 집회 장소에 가더라도 그저 마음이 가는대로 움직이면 그만이었지만,
기자가 된 지금은 내가 보고 있는 현장이 시청자가 보는 현장이라는 책임감과 부담감이 동시에 밀려왔기 때문입니다.
11월 14일, 민중총궐기 대회가 시작됐고 서울 각 지역에서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사전 집회를 취재하기 위해
저는 대학로로 향했습니다. 집회 장소에 도착해서 일단은 사전 집회임에도 불구하고 모여 있는 엄청난 사람들 수에
놀랐고, 그들이 주장하는 내용의 다양성에 놀랐습니다. 하나의 장소에서 집회 참가자들은 국정교과서, 쌀 개방,
고용 문제, 세월호 인양 등 각기 다른 문제 아울러서 주장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왜 이들이 이 문제를 두고 거리에 나왔는지에 대한 고민도 하게 됐습니다.
사실 이 문제들은 언론에서 심심치 않게 다뤄온 문제들입니다. 물론 언론이 정책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관은 아닙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사회적 약자라고 할 수 있는 저들의 입장을 대변해주는 것이 언론의 역할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언론이 본래의 역할을 다 했는데 저들이 만족하지 못하고 거리로 나온 것인지,
우리가 언론인으로서 저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해 거리로 나온 것인지 현장에서 즉시 판단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지금 여기 있는 현장에서 만큼은 후자의 경우가 되지 않도록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됐습니다.
사전 집회가 끝난 후 행진을 따라 도착한 광화문 광장은 혼잡 그 자체였습니다. 대규모의 집회 참여자와
그에 맞먹는 수의 경찰이 대치하며 날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이 많은 사람들을 카메라에 어떻게 담아야 할지도
고민이 됐고,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는 집회 참가자들의 어떤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이번 집회의 본질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일지 모를 정도로 눈앞에서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둔기를 들고 경찰 차량을 파손하는 등 과격한
양상을 보이는 일부 참여자들, 그리고 과격한 행위를 하지 않는 일반 참여자들에게도 구분 없이
물대포를 직사하는 경찰들로 인해 집회는 점점 과열되고 있었습니다.
흥분하지 않을 수 없는 현장 속에서 모두가 흥분하며 감정을 앞세우고 있을 때 최대한 냉정함을 유지하며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집회 참가자와 경찰의 대치가 극에 달해 있을 때는
이마저도 쉽지 않았습니다. KBS의 촬영기자처럼 물대포를 정통으로 맞은 것은 아니지만, 계속해서 카메라 쪽으로
날아오는 최루액과 물대포는 몸을 움츠러들게 만들었고, 기성 언론에 대한 불신이 쌓인 일부 과격한 집회 참가자들의
취재 방해는 현장에 있는 것조차 힘들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정말 어느 쪽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잠깐
힘이 들기도 했지만, 애초에 누군가에게 환영받기 위해 간 자리가 아니었고, 누군가의 편이 된다는
순간 공정한 취재에 방해가 될 것이란 생각에 오히려 다행이라고 느껴졌습니다.
집회 전 날 선배가 했던 말처럼 이 날 만큼 카메라를 들고 많이 뛰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회사로 돌아와 현장에서 찍었던 영상을 확인해보니 많이 뛰어다닌 만큼 찍은 양도 많았습니다.
첫 대규모 집회 취재에서 예상보다 많은 인파 앞에 당황해 갈팡질팡 하기도 했고,
순간의 상황 판단 실수로 필요한 영상을 담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앞으로 취재 능력은 이 날보다 더 향상시켜나가겠지만, 이 날 느꼈던 언론인으로서 역할과 책임감,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공정한 취재를 위해 냉정을 유지하겠다는 마음가짐은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
김세호 / YT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