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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지진, 쓰나미 취재기

 

 

noname01.jpg

▶ 인도네시아 지진과 쓰나미(지진해일)로 마을이 완전히 파괴되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서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두려움보다는 막막함이 앞섰다.
 

 입사 후 떠나 는 첫 해외 출장이었다. 취재를 위해 서울을 출발할 때만 해도, TV화면으로만 보던 폐허 속에서 제가 과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고, 할 수 있을지에 대해 감이 오지 않아 답답했다. 축적된 경험이 없었기에‘ 현장 상황이 매우 열악하다’는 표현이 어느 정도 상황인지 가늠할 수조차 없었다.


 들어가는 일 자체가 고난의 연속이었다. 아수라장이 된 팔루 공항 사정으로 인해, 이미 체크인까지 끝낸 비행기가 지연-취소되는 일이 반복되었다. 결국 육로를 통해 910km, 장장 21시간의 여정을 거쳐 출발 3일 만에 팔루에 진입하였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가는 동안에도 틈틈이 취재를 하며 ‘마카사르에서 팔루까지 들어가는 여정’ 자체를 하나의 르포로 만들었다.

 

취재 전에 느꼈던 막막함은 현장에 도착하는 순간 사라졌다. 아니,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동갈라를 지나 팔루로 들어가며 눈으로 목격한 재난 현장은 할 말을 잃게 만들었다‘. 처참하다’라는 말로는 설명되지 않았다. 팔루에 며칠을 머무르는 동안‘ 아비규환’‘, 생지옥’이라는 단어의 진짜 의미를 눈으로 확인하는 기분이었다. 갈가리 찢어발겨진 도시, 무참히짓밟힌 주민들의 일상. 한 걸음씩 시선을 내딛을 때마다, 허무하게 스러져 간 생명에 대한 안타까움이 마음속에 저벅저벅 걸어 들어왔다. 

 

하지만, 그곳에는 분명 ‘사람’들이 있었다. 꿈에서 조차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있는 주민들은 주검이나 짐승이 되지 않으려 고군분투하면서도 ‘존엄’을 잃지 않고,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몇 시간씩 줄을 서 기름을 구매했고, 여성과 아이들을 먼저 챙겼으며, 낯선 취재진에게 미소와 함께 부족한 식량과 물을 기꺼이 내주었다. 저는 그들을 보며 사람이 극단적인 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선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뼈저리게 고민해볼 수 있었다. 살아남은 그들에게 감사했고, 그들이 끝끝내 인간이기를 기도했다.

 

그림 이전에 사람

 

 이번 출장 중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한국인 실종자 이 씨가 시신으로 발견되었던 상황을 취재 할 때였다. 당시 저는 로아로아 호텔에 머무르며 이 씨 어머님의 현장 수색 참관을 커버하는 중이었다. 이틀 간 다수의 시신이 실려 나오고 매번 지퍼를 열어 시신의 신원을 육안으로 확인하는 작업을 촬영하는 동안 시취(屍臭)가 옷에 밸 정도였다. 하루 종일 굶은 채 땡볕에 서 있는 것에 지쳐 갈 때쯤, 현장 잔해를 치우던 포클레인에 사람의 다리 하나가 걸리는 것을 포착하고는 이상한 느낌에 그 시신을 수습하는 과정을 전부 카메라에 담았다. 구조대원들이 시신을 들고 내려오며“ 꼬레아, 꼬레아!”를 외치는 순간, 그 시신이 한국인 실종자 이 씨임을 직감했다. 온몸에 긴장이 엄습했다. 현장에 한국 언론은 나 혼자이기에 더더욱 그 현장을 제대로 담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오전까지만 해도 평정심을 유지하던 이 씨 어머니는, 이미 심하게 부패하여 구더기가 우글거리는 아들의 주검 앞에서 혼절 직전까지 오열하였다. 통화조차 어려운 열악한 통신 환경 속에서 겨우겨우 취재 영상을 송출한 뒤에야 숨을 고르며 그림을 다시 확인했다.

 

 그리고 그 순간, 오열하는 어머니의 영상 속에서 ‘그림’이 아닌 ‘사람’으로서의 어머니와 아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40년 가까운 삶을 살을 부비고 애정을 나누며 함께 했을 저 두 분은 지금껏 서로 어떤 추억을 가슴 속에 담아왔을까, 오늘 저 만남이 마지막 기억인가, 라는 생각에 이르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다른 시신들을 보며 느꼈던‘, 죽음’이란 선택지를 받아든 이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애도의 감정과는 차원이 다른 종류의 슬픔이었다. 그들은 그림 이전에 사람이었다. 그 본질을 잊지 말아야 함을 새삼스레 상기했다. 다리에 힘이 빠져 바닥에 주저앉은 채, 끊임없이 나오는 시신 가방과 붕괴 현장 위로 야속할 만큼 평화롭게 지는 석양을 바라보았다. ‘영상기자로 사는 것’이 무엇을 해야 하는 직업인지, 사람과 세상을 어떻게 카메라로 담아야 하는지에 대한 마음가짐을 그 석양 속에 아로새겼다.

 

 팔루를 떠나 서울의 바쁜 일상으로 돌아온 지금도 매일 문득문득, 또는 석양을 볼 때면 그 어머니가, 아들이, 팔루의 주민들이 떠오른다. 첫 출장의 강렬한 기억을, 사람임을, 그 날의 배움을, 오래오래 잊지 않을 것이다.

 

 

 

김동세 / MBC    MBC 김동세 증명사진.jpe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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