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365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인도네시아 지진, 쓰나미 취재기

 

 

noname01.jpg

▶ 인도네시아 지진과 쓰나미(지진해일)로 마을이 완전히 파괴되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서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두려움보다는 막막함이 앞섰다.
 

 입사 후 떠나 는 첫 해외 출장이었다. 취재를 위해 서울을 출발할 때만 해도, TV화면으로만 보던 폐허 속에서 제가 과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고, 할 수 있을지에 대해 감이 오지 않아 답답했다. 축적된 경험이 없었기에‘ 현장 상황이 매우 열악하다’는 표현이 어느 정도 상황인지 가늠할 수조차 없었다.


 들어가는 일 자체가 고난의 연속이었다. 아수라장이 된 팔루 공항 사정으로 인해, 이미 체크인까지 끝낸 비행기가 지연-취소되는 일이 반복되었다. 결국 육로를 통해 910km, 장장 21시간의 여정을 거쳐 출발 3일 만에 팔루에 진입하였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가는 동안에도 틈틈이 취재를 하며 ‘마카사르에서 팔루까지 들어가는 여정’ 자체를 하나의 르포로 만들었다.

 

취재 전에 느꼈던 막막함은 현장에 도착하는 순간 사라졌다. 아니,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동갈라를 지나 팔루로 들어가며 눈으로 목격한 재난 현장은 할 말을 잃게 만들었다‘. 처참하다’라는 말로는 설명되지 않았다. 팔루에 며칠을 머무르는 동안‘ 아비규환’‘, 생지옥’이라는 단어의 진짜 의미를 눈으로 확인하는 기분이었다. 갈가리 찢어발겨진 도시, 무참히짓밟힌 주민들의 일상. 한 걸음씩 시선을 내딛을 때마다, 허무하게 스러져 간 생명에 대한 안타까움이 마음속에 저벅저벅 걸어 들어왔다. 

 

하지만, 그곳에는 분명 ‘사람’들이 있었다. 꿈에서 조차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있는 주민들은 주검이나 짐승이 되지 않으려 고군분투하면서도 ‘존엄’을 잃지 않고,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몇 시간씩 줄을 서 기름을 구매했고, 여성과 아이들을 먼저 챙겼으며, 낯선 취재진에게 미소와 함께 부족한 식량과 물을 기꺼이 내주었다. 저는 그들을 보며 사람이 극단적인 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선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뼈저리게 고민해볼 수 있었다. 살아남은 그들에게 감사했고, 그들이 끝끝내 인간이기를 기도했다.

 

그림 이전에 사람

 

 이번 출장 중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한국인 실종자 이 씨가 시신으로 발견되었던 상황을 취재 할 때였다. 당시 저는 로아로아 호텔에 머무르며 이 씨 어머님의 현장 수색 참관을 커버하는 중이었다. 이틀 간 다수의 시신이 실려 나오고 매번 지퍼를 열어 시신의 신원을 육안으로 확인하는 작업을 촬영하는 동안 시취(屍臭)가 옷에 밸 정도였다. 하루 종일 굶은 채 땡볕에 서 있는 것에 지쳐 갈 때쯤, 현장 잔해를 치우던 포클레인에 사람의 다리 하나가 걸리는 것을 포착하고는 이상한 느낌에 그 시신을 수습하는 과정을 전부 카메라에 담았다. 구조대원들이 시신을 들고 내려오며“ 꼬레아, 꼬레아!”를 외치는 순간, 그 시신이 한국인 실종자 이 씨임을 직감했다. 온몸에 긴장이 엄습했다. 현장에 한국 언론은 나 혼자이기에 더더욱 그 현장을 제대로 담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오전까지만 해도 평정심을 유지하던 이 씨 어머니는, 이미 심하게 부패하여 구더기가 우글거리는 아들의 주검 앞에서 혼절 직전까지 오열하였다. 통화조차 어려운 열악한 통신 환경 속에서 겨우겨우 취재 영상을 송출한 뒤에야 숨을 고르며 그림을 다시 확인했다.

 

 그리고 그 순간, 오열하는 어머니의 영상 속에서 ‘그림’이 아닌 ‘사람’으로서의 어머니와 아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40년 가까운 삶을 살을 부비고 애정을 나누며 함께 했을 저 두 분은 지금껏 서로 어떤 추억을 가슴 속에 담아왔을까, 오늘 저 만남이 마지막 기억인가, 라는 생각에 이르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다른 시신들을 보며 느꼈던‘, 죽음’이란 선택지를 받아든 이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애도의 감정과는 차원이 다른 종류의 슬픔이었다. 그들은 그림 이전에 사람이었다. 그 본질을 잊지 말아야 함을 새삼스레 상기했다. 다리에 힘이 빠져 바닥에 주저앉은 채, 끊임없이 나오는 시신 가방과 붕괴 현장 위로 야속할 만큼 평화롭게 지는 석양을 바라보았다. ‘영상기자로 사는 것’이 무엇을 해야 하는 직업인지, 사람과 세상을 어떻게 카메라로 담아야 하는지에 대한 마음가짐을 그 석양 속에 아로새겼다.

 

 팔루를 떠나 서울의 바쁜 일상으로 돌아온 지금도 매일 문득문득, 또는 석양을 볼 때면 그 어머니가, 아들이, 팔루의 주민들이 떠오른다. 첫 출장의 강렬한 기억을, 사람임을, 그 날의 배움을, 오래오래 잊지 않을 것이다.

 

 

 

김동세 / MBC    MBC 김동세 증명사진.jpeg


  1. ‘극한출장, 베트남 2차 북미정상회담’

    ‘극한출장, 베트남 2차 북미정상회담’ ▶ 할롱베이 크루즈 투어 나서기 직전 크르주 안에서 건배를 제의하는 북한 리수 용 노동당부위원장. ▶ 할롱베이 투어를 떠나는 북측고위급대표단. 북측대표단이 할롱베이를 찾았다는 것 은 북한이 관광산업단...
    Date2019.05.08 Views510
    Read More
  2. 39년 만에 광주를 찾은 전두환

    39년 만에 광주를 찾은 전두환 아침 일찍 눈이 저절로 떠졌다. 3월 11일. 전두환 씨가 광주 법정에 서는 날. 기자 생활 14년 동안 수없이 자료화면을 통해 보고 편집하며 만나온 그의 ‘실물’을 직접 취재한다는 사실이 묘한 긴장감과 설렘을 주었...
    Date2019.05.08 Views430
    Read More
  3. 차량 추적, 그 위험한 줄타기

    차량 추적, 그 위험한 줄타기 “검은색 승용차가 고속도로를 질주한다. 열 대가 넘는 차량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그 차를 따라붙는다. 시속 100km가 넘으면서도 수시로 급브레이크를 밟는다. 경쟁적으로 검은 차에 필사적으로 렌즈를 갖다 댄다.” 이...
    Date2019.05.08 Views459
    Read More
  4. 한국산‘ 불법 수출 쓰레기’ 필리핀 떠나던 날

    한국산‘ 불법 수출 쓰레기’ 필리핀 떠나던 날 지난 1월 11일, 영상취재팀 캡으로부터 해외출장 준비를 해야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해외 재난·재해도 없던 때라 출장에 대한 묘한 기대감이 생기기도 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알게 된 취재...
    Date2019.03.12 Views528
    Read More
  5. 세상 열심히 변기를 찍다.

    세상 열심히 변기를 찍다. 국립현대미술관, <마르셀 뒤샹>전 데스크가 내게 취재 일정을 부여하며 던진 한 마디, “내일 2분 분량 정도로 변기를 찍는대… OOO 취재기자 하고 상의해봐”, “네? 변기 촬영만으로’ 2분 리포트를요?&...
    Date2019.03.12 Views571
    Read More
  6. 우리가 아는 ‘팀킴’은 김경두의‘ 킴’이었다

    우리가 아는 ‘팀킴’은 김경두의 ‘킴’이었다 지난 11월 8일, 대구의 한 세미나실의 문을 열었다. 그곳엔 평창 동계 올림픽의 스타‘ 팀킴’이 있었다. 그들은 십 분도 지나지 않아 눈물을 흘렸다. 아마 평창에서 이들을 취재...
    Date2019.01.02 Views544
    Read More
  7. ‘만족합니다’

    ‘만족합니다’ ‘제가 누른 리코딩 버튼으로 역사를 기록하고 세상을 바꾸는 영상기자가 되겠습니다’. 내가 입사 면접에서 이야기한 자기소개의 한 문장이다. 지난여름 태광그룹의 이호진 전 회장의 이른바‘ 황제 보석’을 ...
    Date2019.01.02 Views719
    Read More
  8. 태풍 콩레이 영덕 강구면을 할퀴고 가다

    태풍 콩레이 영덕 강구면을 할퀴고 가다 지난 10월 6일 강력한 태풍 콩레이가 한반도에 도착한 후 경남 통영을 지나 경북 영덕에 상륙을 했다. 태풍의 이동 속도가 빨라 짧은 시간에 지나갈 것으로 예측되었지만 그 짧은 시간에 경북 영덕 강구면에는 큰 피해...
    Date2018.12.20 Views486
    Read More
  9. [2018 제3차 남북정상회담 평양 취재기] '2018 평양' 그 새로운 여정

    '2018 평양' 그 새로운 여정 지난 9월 15일은 30여 년 가까이 영상기자로 언론사에 몸담고 취재하는 동안 가장 기억에 남을 수 있는 날이었다. 평양에서 열리는 제3차 남북 정상회담 선발대로 자동차를 이용한 육로로 개성에서 평양까지 가볼 수 있는 ...
    Date2018.12.19 Views410
    Read More
  10. 2018 남북정상회담 평양 취재기

    2018 남북정상회담 평양 취재기 지난 4월 27일 판문점에서 세기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남북정상이 11만에 다시 한자리에 섰다. 그때의 두 정상은 아니었지만 그때만큼 뜻 깊지 않을 수 없는 날이었다. 하지만, 나는 또 한 번 그들의 특별한 만남을 가까이서 지...
    Date2018.12.19 Views486
    Read More
  11. 인도네시아 지진, 쓰나미 취재기

    인도네시아 지진, 쓰나미 취재기 ▶ 인도네시아 지진과 쓰나미(지진해일)로 마을이 완전히 파괴되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서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두려움보다는 막막함이 앞섰다. 입사 후 떠나 는 첫 해외 출장이었다. 취재를 위해 서울을 출발할 때만 해도...
    Date2018.12.19 Views365
    Read More
  12. 고양시 저유소 화재와 드론 영상

    고양시 저유소 화재와 드론 영상 2018년 10월 7일, 점심 식사를 하고 회사로 돌아 오는 길에 가을이 왔음을 확연하게 느낄 수 있는 청명하고 파란 하늘 사이로 시커먼 기둥의 연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검색을 해보 니 고양시에 있는 저유소...
    Date2018.12.19 Views451
    Read More
  13. 아시안게임 취재기 - 혼잡, 혼란, 그리고 혼합의 아시안게임

    <아시안게임 취재기> 혼잡, 혼란, 그리고 혼합의 아시안게임 ▶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 성화 봉송 혼잡 “어이쿠, 저렇게 껴들면 사고 안 나요?” 8월 13일 밤, 아시안게임 취재를 위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숙소로 향하...
    Date2018.10.19 Views457
    Read More
  14. 아시안게임 취재기 - 우당탕탕 Jakarta

    <아시안게임 취재기> 우당탕탕 Jakarta ▶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을 취재하는 필자 인도네시안 타임 도착하자마자 불길한 예감은 적중했다. 아시안게임 델리게이트 레인으로 입국심사는 비교적 빠른 시간에 끝났지만, 위탁 수하물을 찾을 때부터 ‘인...
    Date2018.10.19 Views518
    Read More
  15. 라오스 SK 건설 댐 붕괴 현장을 다녀와서

    라오스 SK 건설 댐 붕괴 현장을 다녀와서 웬만한 4륜 SUV 차량이 아니면 통과하지 못할 정도로 심하게 손상된 진흙 도로가 끝없이 보였다. 나름 아스팔트가 깔린 라오스 메인도로를 벗어나 2시간 이상 달렸다. 곳곳이 파이고 물이 차올라 시속 10킬로 내외로 ...
    Date2018.10.19 Views605
    Read More
  16. 도박에 빠진 청소년들

    도박에 빠진 청소년들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더운 여름날‘ 청소년 도박의 심각성’에 대해 취재하게 되었다. 폭염에 지쳐 있을 무렵이라 신선하고 흥미로웠다‘. 청소년들이 이렇게 도박에 빠져있습니다.’ 하고 겉핥기식으로 끝날 것이...
    Date2018.10.19 Views471
    Read More
  17. 평화, 새로운 시작 4.27 남북정상회담 취재기

    평화, 새로운 시작 4.27 남북정상회담 취재기 6.13 지방선거가 있었고 대한민국은 파란 나라가 된 듯하다. 평창올림픽부터 시작된 평화의 무드, 전번의 우라질 정권이 망쳐놓은 평화적 외교적 관계들이 점차 제자리를 찾는 느낌이다. 우리 청와대 출입 기자들...
    Date2018.07.05 Views1129
    Read More
  18. 싱가포르 북미회담 취재기

    싱가포르 북미회담 취재기 회담만큼 이슈가 된 날씨 지난 6월 12일, 정전협정 이후 65년 만에 북한과 미국의 두 정상이 만나는 역사적인 회담이 싱가포 르에서 개최됐다. 북미 정상의 만남을 담고자 한국 취재진은 물론 세계 유수의 언론사 취재진이 싱가 포르...
    Date2018.07.05 Views1903
    Read More
  19. 러시아 월드컵 현장

    러시아 월드컵 현장 월드컵을 향하여 어린 시절, 러시아는 공산주의 붉은 장막에 가려 있었다. 또 동시에 소비에트 깃발의 낫과 망치, 구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얼굴 등 섬뜩하고 무시무 시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비행기를 타고 러시 아 영토 안에 진입한...
    Date2018.07.05 Views1075
    Read More
  20. 압승 후에 찾아올 일

    압승 후에 찾아올 일 “오늘부로 민주노총은 모든 노사정 대화에서 불참하겠습니다.” 지난 5월 22일 새벽 2시가 넘은 국회환경노동위원회 회의실 앞 복도. 협상 결과 보다는 퇴근시각이 더 궁금한 지겨운 상황에서 민주노총 김경자 수석부위원장의 발언이 나왔...
    Date2018.07.04 Views932
    Read More
  21. 폐어선‘ 스쿠버다이빙 성지’ 변모 해중공원 수중촬영기

    폐어선 ‘스쿠버다이빙 성지’ 변모 해중공원 수중촬영기 똑같은 파도, 똑같은 백사장을 놓고 경쟁하던 때는 이미 지 났다. 여러 시·군 지역에서는 특색이 있는 해양 레포츠에 승부를 걸고 있다. 강원도에서는 이미 서핑, 프리다이빙, 스쿠버다이빙 등 다양 한 ...
    Date2018.07.04 Views1337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18 Next
/ 18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