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르 월드컵 2차 예선
한국 vs 투르크메니스탄 (1)
▲ 아슈바하트 올림피아드 경기장
마지막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8월 어느 날, 핸드폰 진동이 울린다. 데스크의 전화였다.
“여보세요?”
“다음 달에 월드컵 예선 출장 좀 갔다 와라! 투르크메니스탄...!!”
“넹? 어디요? 어디...?”
“투르크메니스탄!”
모처럼 휴일 낮잠을 자다 해외출장 지시를 받았다. ‘투르크 뭐 스탄~~!’ 다음 날, 출장지 정보를 얻고자 폭풍 검색에 들어갔다.
[국토 대부분이 사막 지형으로 이뤄진 나라로 석유와 천연가스 매장량이 풍부해 천연자원을 바탕으로 한 복지 혜택으로 국민 생활 수준은 높으나 지구상에서 유례 없는 독재국가인 나라....]라는 글귀에 머리가 새하얘졌다. 이런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송출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인터넷 상태는 어떨까?’
며칠 후, 세 개 방송사(MBS/KBS/SBS) 풀이 결정됐다. 취재기자는 셋, 영상기자는 나 혼자였다. 촬영은 물론 송출까지 오롯이 내가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라 분명 녹록지 않은 일정이 될 터였다. 거기에 상황과 환경이 좋은 않은 국가이면...
고민 끝에 지난 4월 중앙아시아에 3개국 대통령 국빈 방문을 갔다 온 청와대의 모 선배한테 전화를 걸었다. 투르크메니스탄 현지 취재 상황과 송출은 어떻게 했는지, 그리고 거기에 머무는 동안 생활은 어떻게 했는지 등 질문을 쏟아냈다. 선배는 “인터넷 상황이 아주 좋지 않아서 취재진 모두가 애를 먹어 고생 좀 했었지만 편집한 영상 정도는 업로드 했다.”라고 말했다. 이 이야기를 듣고 ‘힘들기는 하겠지만 인터넷 상황은 어느 정도 괜찮구나!’ 하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었다.
출장 출발일이 다가올수록 여기저기 정보를 구하면서 마음의 안도가 다시 불안으로 바뀌었다. 무엇보다 투르크메니스탄에 관한 정보 자체가 양적으로 빈약했다. 현지 통신 상황에 대한 내용은 찾기조차 힘들었다. 사전 준비를 하면서 우선 송출은 인터넷 파일 송출을 하기로 하고 만약을 대비해 글로벌 모뎀이 장착된 MNG를 챙겨가기로 했다. 그리고 주 투르크메니스탄 한국대사관을 통해 현지 유심 구매 요청을 하고 현지 가이드도 대사관을 통해 소개받기로 했다.
입국 초청장 신청은 축구협회에서 진행하기로 했지만, 투르크메니스탄은 세계 어느 나라와도 무비자 협약을 체결하지 않아 입국을 위해서는 반드시 입국 초청장을 사전에 받고 공항에 도착해 입국비자를 받아야 한다.
며칠 뒤 출장 일정이 확정됐다. 9월 6일 오전에 인천을 출발해 경유지인 터키에서 1박을 하고 다음 날 7일 밤늦게 투르크메니스탄 수도인 아슈하바트(Ashgabat)로 넘어가 다시 터키를 경유해서 12일 오전 인천으로 복귀하는 일정이었다.
지난 5일, 조지아와 터키에서 평가전을 치른 대표팀 선수들이 7일 오전 터키에서 마지막 적응훈련을 마치고 10일로 예정된 예선전이 치러질 투르크메니스탄으로 곧바로 이동 할 예정이어서 우리도 대표팀과 같이 움직여야 했다.
드디어 결전의 나라로 이동할 시간이 다가왔다. 공항 게이트 앞에서 축구협회 홍보팀으로부터 아슈하바트행 비행기에 비즈니스석이 부족해 주전 멤버 선수만 비즈니스석에 탑승하고 벤투 감독과 나머지 선수, 스텝은 이코노미석으로 이동 할 예정이라는 뜻밖의 소식을 전해 들었다. 좌석이 부족해 감독이 자진해서 선수들이 조금이나마 편하게 갈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었다.
그게 사실일까? 취재팀은 혹시 몰라 맨 나중에 탑승했다. 비행기에 오르자마자 사실 여부를 확인했다. 비즈니석을 지나자 일반석에 벤투 감독과 스텝들이 앉아 있었다. 핸드폰으로 짧게나마 그 영상을 담아 자리에 앉자마자 웹하드에 업로드했다. 투르크메니스탄의 통신 상태를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가능한 한 터키에서 마무리 짓고 떠나야 했기 때문이다. 업로드가 끝나갈 즈음 선수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무표정한 벤투 감독 얼굴과는 달리 선수들 얼굴에서는 여유로움과 즐거움, 약간의 흥분도 엿보였다.
얼마 되지 않아 기내에서 낯선 러시아어로 방송이 나와 잠이 깼다. 아슈하바트 국제공항에 도착했다는 것이었다. 그때 현지 시간으로 새벽 2시가 조금 넘었다. 버스를 타고 계류장을 벗어난 취재진은 선수단과 함께 CIP 부스로 이동했다. 비자발급 창구에 대사관 직원들이 선수단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 미리 부탁한 현지 유심을 전달받고 핸드폰과 MNG의 유심을 교체했다. MNG 상태는 다행히 양호했다.
입국비자 발급을 기다리는 동안 대사관 직원이 우리에게 일렀다. “여기 투르크메니스탄에서는 국내에서 사용하든 SNS는 물론 다른 앱도 사용할 수 없을 겁니다. 사용하려면 VPN 우회 앱을 이용해 사용할 수는 있으나 그것도 자주 연결이 끊길 수 있습니다.” 라고 했다. 청천벽력이었다. 카톡이며 회사 시스템이며 국내 모든 인터넷 사이트도 블록 당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웹하드와 구글드라이버 상태가 제일 큰 걱정이었다. MNG 사용도 가능성이 불투명해져서 눈 앞이 캄캄했다.
도착 후 2시간이 넘어 비자를 발급받고 간신히 출발 직전에 선수단 버스를 촬영했다. 그러고 나서야 호텔로 떠나는 미니밴에 몸을 실었다. 이른 새벽 시내로 들어서자 이제껏 본 적이 없는 광경이 창밖으로 펼쳐졌다. 일직선을 그으며 끝없이 줄지어 서있는 가로등, 온통 흰색의 대리석 건물들, SF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형이상학적 형태의 기이한 빌딩들이 도시 전체의 화려한 조명으로 밝게 빛나고 있었다.
<다음 호에 제2부가 연재됩니다.>
서현권 / M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