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있는 시간의 현장
▲지난 1월 20일, 서울의료원 음압병동 안으로 들어가기 전 방역복을 입고 있는 필자
우리 직업의 매력 중 하나는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껏 수많은 제한구역과 여러 나라를 경험했다. 주변 친구들은 그런 나를 부러워하기도 한다. 물론 나 스스로도 굉장히 즐거움을 느낀다.
일을 하다 보니 장소와 경험의 다양함 속에도 일정한 패턴과 규칙이 생겼다. 장소와 내용, 대상만 바뀔 뿐 내가 하는 일 - 정확히는 카메라로 현장을 담는 것 - 은 시간이 흐를수록 패턴화되었다. 그런 것에 빠지지 않으려 노력하는 편이지만 익숙함에 자연스럽게 물들어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던 중 코로나19라는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환경을 맞게 됐다.
지난 1년은 코로나19 이슈에 묻혀 살았다. 처음엔 확진자가 발생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바로 달려갔다. 시간이 흐른 뒤엔 코로나19로 인해 문을 닫거나 어려워진 자영업자, 소상공인 등을 만나러 다녔다. 새로운 이슈도 늘 반복되면 무뎌지기 마련이다. 그렇게 조금씩 일상에 익숙해질 때쯤 나를 긴장하게 하는 특별한 지시를 받았다.
“음압병동 안에 들어가야 한다.”
음압병동 제한구역 앞까지만 가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상은 음압병동에 근무하는 의료진과 함께 환자 병동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 사실을 알았을 때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들어가도 되나?’ 그리고 또 하나는 ‘꼭 들어가고 싶다.’였다.
코로나19 환자가 있는 음압병동 안에 처음 들어가는 거라 걱정이되면서도 한편으로 내 일에 대한 욕심도 있었다. 음압병동으로 들어가는 과정은 굉장히 까다로웠다. 개인방역, 장비, 취재범위, 취재 후 조치 등 생각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장비는 최소한으로 가져가기로 했다. 쵤영 장비는 취재 후 여러 번 소독 과정을 거친 후 밀봉하여 한 달간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감염관리실에서 방역복 교육을 받고 적응 훈련을 했다. 뉴스로만 접했던 방역복을 실제로 입어보니 생각 이상으로 답답했다. 숨을 제대로 쉬기 힘들고 한겨울인 날씨에도 금세 땀이 흘렀다. 문득 지난 여름 이 방역복을 입고 고군분투했을 의료진들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의료진 뒤를 따라 음압병동에 첫 발을 내디뎠다. 긴장감이 흐르는 것도 잠시. 의료진들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들의 숙달된 모습이 지난 1년을 압축적으로 말해줬다. 나는 무엇부터 담아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굉장히 흥분됐지만 욕심내지 말자, 하고 되뇌며 차분히 지켜봤다. 간호사들의 동선을 파악하고 조심히 뒤따라갔다. 처음 간 병실에서 코로나19 완치 판정을 받고 퇴원을 준비하는 분을 만날 수 있었다. 인터뷰하는 내내 그분은 가족이라도 이만큼 못 해 줄 거라며 의료진들에 대한 고마움을 전했다.
중증환자가 있는 병실은 전쟁터가 따로 없었다. 기저귀를 갈아주고 몸을 닦아주며 일일이 밥까지 떠먹여 주어야 한다. 그 안에서는 적극적으로 카메라를 들 수가 없었다. 환자들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기 위해 최소한의 동선으로 필요한 만큼만 촬영했다.
음압병동 안에는 최소한의 인력만 출입하기 때문에 환자를 돌보는 일 외에도 모든 일을 의료진이 한다. 환자가 퇴원하면 청소는 물론 구석구석 가구 꼭대기까지 소독하고 관련 의료폐기물을 처리한다. 잠시도 쉴 새가 없다. 정신없이 병동을 누비다 보면 3~4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코로나19, 그리고1년. 사회는 점점 적응하여 생활패턴이 전환적으로 바뀌고 그러면서 감염병에 대한 경계가 살짝 느슨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음압병동 안은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지난 1년동안 변함없이 코로나19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결혼 직후 음압병동에 오게 되어 1년째 신혼을 포기하고, 가족들에게 피해가 갈까 임시 숙소를 이용하고, 개인 생활은 모두 접어둔 채 환자 치료에만 집중하는 의료진의 정신, 모습은 정말 경이로웠다. 해외여행 못 간다고 아쉬워하고 카페에 앉을 수 없다고 툴툴거렸던 내가 새삼 부끄럽게 느껴졌다.
음압병동 1년의 시간을 다 담아낼 순 없지만 보는 이에게 일종의 경각심을 줄 수 있길 바랐다. 내가 느꼈던 것처럼.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19의 시간. 모든 것을 포기한 이들을 생각하면서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각자가 방역에 힘을 보탰으면 하는 바람이다.
류재현/ K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