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제 2차 북미 정상회담(공식명칭 ‘하노이 서밋’)을 취재하면서 김정은 위원장의 특별열차가 베트남 랑선성 동당역에 들어오는 모습을 담아라. 김 위원장의 특별열차가 중국 국경을 넘어 회담이 열리는 베트남으로 들어오는 ‘첫 모습’을 포착하라. 내가 맡은 롤이었다. 하노이 서밋 취재를 위해 파견된 국, 내외 언론사들이 아마도 포착하고자 하는 순간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성공을 장담할 수는 없었다. 만약 성공한다면 본격적인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에서 뉴스 영상의 백미가 될 것은 확실했다.
김 위원장이 오기 하루 전인 2월 25일 오전, 나는 동당역에 도착했다. 먼저 주변을 둘러보고 취재 포인트를 찾았다. 김 위원장의 특별 열차가 동당역사로 들어가는 걸 조망할 수 있는 부감 포인트가 필요했다. 하지만 동당역은 국경 인근의 작은 역이었기 때문에 마땅한 부감 포인트가 없었다. 더구나 조금이라도 높은 건물들은 중국, 일본 등의 외신들이 선점한 상황이었다.
북쪽(중국쪽)에서 들어오는 철길이 동당역까지 어떻게 이어져 있는지 알기 위해, 동당역 뒤편에서부터 철길을 따라 걸으면서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면서 철길을 보수하고 동당역사 주변을 꾸미고, 주변 검색을 강화하는 모습 등을 담았다. 나는 우연히 철길이 ‘ㄱ’자로 꺾이는 곳에 있는 높은 건물 하나를 발견했다. 가이드는 ‘홍푹’이라는 숙박업소라고 말했다.
‘홍푹’에 가보니 그 곳 역시 이미 NHK, Fuji TV, N TV 등 다 수의 일본 외신들이 자리를 차지한 상태였다. 홍푹 관계자는 우리에게 내줄 자리는 없다고 했다. 그러나 홍푹을 나와 그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그곳만 한 포인트는 없었다. 나는 할 수 없이 다시 홍푹을 찾아갔다. 나는 절망적인 심정으로 홍푹의 사장인 할머니를 설득했다. 그러다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지성이면 감천이란 말은 만국 공통의 진리인지 계속해서 안 된다고만 하던 할머니가 내게 옥상 자리를 내준 것이다. (여담이지만, 옆에 있던 손녀에게 내 주머니 속 사탕과 과자를 쥐어준 것도 한 몫 했을지 모르겠다.)
옥상에 자리를 잡고, ‘ㄱ’자로 꺾이는 열차의 경로를 전부 다 커버하기 위해 서로 다른 지점에 두 대의 카메라를 설치했다. 열차가 들어오는 모습이 보이는 방향엔 6mm 카메라를, 동당역사로 열차가 진입하는 모습이 보이는 방향으론 망원 렌즈를 끼운 ENG 카메라를 세웠다. 열차에서 내리는 김 위원장의 모습을 망원으로 당기면 될 것이다. 그리고 두 대의 카메라 그림을 ‘스위처’라는 장비를 이용해 현장에서 직접 커팅하기로 했다. 라이브를 위한 LTE 장비는 1대만 필요했다.
25일 오후, 장비 세팅이 끝난 후 해가 지기 전까지 여러 차례 리허설을 했다. 돌발 상황을 대비해 불침번 순서를 정했다. 나와 오디오맨, 가이드까지 돌아가면서 자리를 밤새 지킬 수 있도록.
2월 26일 아침, 현지 시간으로 9시 20분쯤, 김정은 위원장의 특별 열차가 들어왔다. 여러 번 연습했기 때문에 단 한 번의 열차 진입에 정확히 레코딩 버튼을 눌렀다. (내 입으로 말하기 좀 그렇지만) 타사 그림들을 압도하는 첫 단독 영상은 이렇게 완성되었다.
김정은 위원장의 특별열차가 베트남에 도착하는 모습을 포착해내는 것만큼 중요한 또 다른 한 가지. 트럼프 대통령의 전용기인 에어포스원이 하노이 노이바이 국제공항에 도착하는 모습의 포착은 두 번째 과제였다. 아마도 이 장면은 타사들이 시도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성공하기만 하면, 특보 경쟁에서 또 한 번 앞서 나갈 수 있을 게 틀림없었다.
26일 오전에 동당역 취재를 마친 뒤 곧바로 트럼프 대통령의 전용기 에어포스원을 잡기 위해 하노이 노이바이 국제공항으로 이동했다. 차로 4시간을 달려 공항 인근에 도착했다. 건물 5층은 미리 예약해 둔 상태. 나는 도착하자마자 건물에 올라 장비를 세팅했다. 이번엔 망원 렌즈를 단 ENG 1대에 라이브를 위해 LTE 장비를 연결했다. 취재 장소가 공항 활주로가 내려다보이는 위치였기 때문에, 여러 대의 비행기가 수시로 뜨고 내려 리허설엔 최적의 환경이었다.
리허설을 통해 정확히 장비를 세팅하고 베트남 현지 시간으로 저녁 8시 45분부터 스탠바이 했다. 현지 시간 9시 15분쯤 도착한다고 알려졌으나 에어포스 원은 우리의 정보보다 훨씬 일찍 나타났다. 8시 45분에 스탠바이 한 후 가장 먼저 에어포스원이 랜딩한 것이다. 현지 시간으로 대략 9시쯤, 예정보다 20분 정도 일찍 도착한 것이다. 이것 역시, 도착 직후 리허설을 거치고 충분히 예상값을 예측했기에 딱 한 번 우리 앞에 나타난 에어포스원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이번에 출품한 단독 영상 두 개는 ‘하노이 서밋’의 시작을 연 보도였다. 이 영상들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적어도 이 업계 업자들에게는) 정말 크다. 힘들었으나 내 안에 느끼는 보람이 크다.
이 영상들이 특보로 전해지기 전까지, 김정은 위원장의 특별 열차 24량을 1분 20여초가 넘는 오랜 시간동안 이렇게 선명하게 오래 보여준 예는 국내에서 없었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전용기 에어포스원이 활주로에 내려앉는 모습 또한 국내 방송사로서는 전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40여초가 넘게 길게 보도되었다.
여담이긴 한데 이번 롤을 성공시키기 위해 개인적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한 순간 한 순간이 기억에 남을 것이다. 현장은 반복되지 않기에, 단 한 번의 찰라를 놓치지 않기 위해 여러 가지 가능성을 설정하고 실험을 거쳤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장 좋은 설정값으로 부족하나마 내가 원하는 그림을 포착했다.
모든 것 이전에, 나를 믿고 현장에 투입해 준 현장 데스크 선배에게 가장 먼저 감사를 전하고 싶다. 어떤 단독도 현장에 내가 가지 못했다면 아무것도 도전할 수 없으리라. 오랫동안 힘든 시간을 보내온 MBC 영상 기자 조직 역시 하루 빨리 과거의 명성을 되찾았으면 하고 바란다. 그것을 위해 나의 작은 노력들을 보태고 싶은 마음뿐이다.
박주영 / M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