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으로 환경영향평가를 평가하다-제주 몽돌·먹돌 해안 취재기
<KCTV제주방송 김용민>
“먹돌은 다 사라지고 온통 뻘밭이야.”
어느 날 해녀 삼춘들에게 걸려온 전화 한 통. 과거 먹돌 해안으로 불리던 탑동 바다에 먹돌이 사라져버렸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취재팀에게 보여줄 게 있다며 테왁과 망사리 대신 삽을 든 충격적인 모습으로 바다로 나선 삼춘들. 함께 들어간 바다에 그 많던 돌은 사라지고 퇴적물만 잔뜩 쌓여 있었습니다. 삽으로 힘겹게 검은 퇴적물을 파내자 암흑 속에 묻혀있던 먹돌을 볼 수 있었습니다.
내도동 주민들은 몽돌해안으로 유명한 알작지의 몽돌이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과거와 달리 눈에 띄게 사라지고 있다며 아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제주 바다의 '몽돌' , ‘먹돌’은 공유수면관리법에서 보호받고, 특히 제주특별법에서도 '화산송이' 나 '검은 모래' 등과 함께 주요 보존자원으로 지정돼 있습니다. 한라산에서부터 오랜 시간 굴러 내려와 제주만의 독특한 해안 경관을 만들던 몽돌과 먹돌. 왜 사라지고 있는 걸까? 누군가에게는 사소하게 보이는 돌이지만 돌이 사라지면 제주의 오랜 역사와 가치도 사라진다는 생각에 6편의 기획취재와 뉴스멘터리를 제작했습니다.
1) 무분별한 개발에 사라지는 몽돌
내도동 알작지의 몽돌이 사라지고 있는 현장에 집중했습니다. 오랫동안 내도동에서 살아온 지역주민들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고, 현재 발생하고 있는 현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에 주력했습니다. 특히 특정 지점에서 몽돌이 얼마 동안 얼마나 사라졌는지를 규명하는 영상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영상은 진실을 전달하는 최고의 장치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KCTV제주방송 데이터베이스에 있는 2021년 알작지 해변 촬영 지점을 2023년에 같은 위치, 같은 각도에서 재촬영해 실제 몽돌 유실 여부를 비교했습니다. 촬영 결과 불과 2년 만에 몽돌이 모두 사라진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특히 해안 시설물이 들어서며 바뀐 물길과 파도로 인해 해안가 더 많은 몽돌이 먼 바다로 사라지는 '백 웨이브' 현상을 영상에 담아 시청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보도했습니다.
2) 비공개 용역보고서 입수…결론 없는 엉터리 보고서 ‘논란’
몽돌 유실 현상에 대한 행정의 원인 규명과 사후 관리, 보존 대책을 점검했습니다.
2015년, 제주도가 위탁한 몽돌 유실 원인 규명 용역보고서를 정보 공개 청구했습니다. 하지만, 별다른 이유 없이 비공개 처리됐고, 용역 회사마저 사라져 보고서 확보까지 수개월이 걸려야 했습니다.
비공개 처리한 보고서. 입수한 뒤 확인해 보니 해당 용역의 주요 과업이었던 유실 원인 규명은 전무했던 사실이 보도를 통해 처음으로 드러났습니다.
주변 해안도로 공사 환경영향평가서도 입수해 살펴본 결과 몽돌 유실에 대한 심의위원회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제주도의 사후 관리나 보존 대책은 몽돌과는 무관한 엉터리 대안뿐이었고, 몽돌 유실은 해안 시설물의 구조적 문제뿐 아니라 행정의 방치와 무관심이 더해진 예견된 인재였습니다.
3) 암흑 속에 갇혀버린 먹돌…생계까지 위협
과거 해녀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먹돌 해안. 해녀들과 함께 직접 바닷속으로 들어갔습니다. 해녀들은 삽으로 모래와 진흙을 파내고 그 아래 파묻혀 있던 먹돌을 취재진에게 보여줬습니다.
퇴적물로 인해 먹돌이 사라지자 해조류와 생물이 자취를 감추고, 해양 먹이 사슬이 무너지면서 결국에는 해녀들의 생계까지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실태를 수중촬영을 통해 생생하게 담고자 했습니다.
4) 엉터리 설계로 시작된 비극
해녀들은 먹돌이 사라진 이유를 방파제로 지목했습니다. 탑동 방파제 축조 공사와 관련한 환경영향평가서와 사후환경영향평가서를 확보해 살펴봤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가장 주목했던 건 방파제 설계가 제대로 됐는가였습니다.
보고서와 설계도 분석을 통해 사업 초기 해안선에서 430m 이격해 설치하려던 방파제가 본안 단계에서 80m로 당겨진 점과 추가로 해수 유통구가 설치된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당초 계획보다 무려 350미터나 이격거리가 짧아진 점을 밝혀내 방파제 부실 설계 가능성을 제기했습니다.
설계도에 나와 있지 않은 추가 유통구의 순폭을 직접 바다로 들어가 측량해 보니 기존 계획된 유통구 폭의 6분의 1에 불과했습니다.
이러한 자료를 바탕으로 전문가 자문을 통해 설계 오류로 인해 퇴적물이 방파제 안으로 쌓이고 있다는 사실을 최초로 확인하고 촬영해 보도했습니다.
5) 유명무실한 환경영향평가 제도
탑동 방파제 축조 공사 이후 관리를 위해 진행하는 사후환경영향평가. 보고서상으로는 해양 환경에 큰 변화가 없다고 했지만, 직접 눈으로 본 현장은 달랐습니다. 지역 방송사 처음으로 보고서를 직접 비교 분석했습니다.
제출된 보고서와 각 조사 지점의 실제 해양 환경을 직접 촬영해 비교했고, 수질과 퇴적물 등 각종 분석표를 바탕으로 해양 변화를 파악하기 위해 수백 페이지의 보고서를 분석했습니다. 해양 수질, 식생, 해안 토목공학 등 각 분야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하는 과정에서 보고서에 기재된 여러 개의 오류 값도 발견했습니다.
방파제 공사가 환경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주요 지점과 항목별로 조사하도록 한 사후환경 영향평가가 실제로는 제대로 된 조사 없는 오류투성이였던 심각한 문제점이 드러났습니다.
정확한 경위를 듣기 위해 평가 업체들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현재는 아예 사라져 입장을 듣기 어려웠습니다. 어렵게 연락이 닿은 전 업체 관계자는 오래돼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모르쇠로 일관했습니다. 환경부 문의 결과 이런 경우 책임소재가 불분명해 처벌이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고 이에 따라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제시했습니다.
6) 제주의 환경영향평가가 나아가야 할 방향
제주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환경영향평가 협의 권한을 갖고 있습니다. 정부가 앞으로 지자체에 평가 권한을 이양할 움직임을 보이는 만큼 선도적 위치에 있는 제주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에 따라 학계와 환경단체, 법조계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자문을 바탕으로 제주의 환경영향평가 제도가 바뀌어야 할 구체적인 방향과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이번 기획을 시작하며 신경 썼던 부분은 과거 촬영된 자료와 같은 곳을 명확하게 비교해 변화한 자연환경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시청자들이 영상을 보고 진실을 가까이 바라볼 수 있도록 수중 드론과 특수촬영을 통해 보고서와 다른 해양 실태를 보여줬고, 24M 프로브렌즈를 활용해 어려운 보고서의 내용을 최대한 쉽고 자세하게 촬영해 보도했습니다. 시청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정규 뉴스 보도 이후 6편의 기획뉴스를 ‘뉴스멘터리’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통합 제작해 방송했습니다.
그동안 환경단체나 마을 주민, 해녀들이 의혹만으로 제기했던 해양 시설물과 몽돌, 먹돌 유실과의 인과관계를 수개월간의 현장 수중 촬영과 자료 분석, 심층 취재를 통해 지역 언론사 처음으로 규명했고 이 과정에서 드러난 환경영향평가 제도의 한계와 개선 방안을 찾도록 대안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도 의미와 보람도 큽니다.
마지막으로 좋은 심사를 해주신 심사위원님들과 취재를 같이한 KCTV제주방송 김경임 기자에게 정말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