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시간 근로제 취지는 좋은데…
“인력 충원 안돼 업무피로도 증가…시간외수당 등 임금도 걱정”
52시간 근로제에 대한 계도기간이 한 달밖에 남지 않은 가운데, 각 방송사가 영상기자들에 대해 유연근로제를 도입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KBS는 영상기자들을 대상으로 1개월 단위로 총 208시간 안에서 자율적으로 업무시간을 조정하는 선택근로제를 시범 실시하고 있다.
KBS의 한 영상기자는 “우리 회사의 경우 영상기자가 편집을 일부 하고 있고, 해외 출장이나 재해, 대형 사건ㆍ사고가 발생했을 때 소정근로시간만으로는 사실상 업무가 거의 불가능하다.”며 “회사도 그렇고 기자들도 현재로서는 선택근로제로 가는 걸 받아들이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MBC도 8월 12일부터 선택근로제를 시범 운영하고 있다.
MBC의 한 관계자는 “재량근로제를 원하는 사람도 일부 있었지만, 52시간 근로제의 취지에 맞지 않게 근로 시간이 늘어날 수 있다는 의견이 있어 보도본부 전체가 선택근로제를 시행하고 있다.”며 “영상기자들의 경우 국회 등 출입처가 있는 경우 ‘9시 출근 6시 퇴근’을 기본 체제로 하되, 스포츠 분야 등을 담당하는 기자들은 아침에 일이 많지 않은 점을 감안해 출근 시간을 30분 늦춰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SBS는 KBS, MBC와는 다른 형태의 유연근무제가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SBS 노조는 지난 27일 대의원대회를 열어 52시간 근무제와 관련한 협상 경과를 보고했다.
노조의 한 관계자는 “회사쪽과 협상이 진행중이라 구체적인 내용을 밝힐 수는 없지만, 10월 1일 도입을 목표로 3개월 동안 유연근무제를 시행해 보고 결과에 따라 제도를 보완하기로 했다.”며 “회사측은 무조건 시행하라는 입장이지만, 유연근무제를 시행했을 때 발생할 문제점이나 보호책, 적절한 보상 체계 등에 대해 계속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SBS의 한 관계자는 “영상기자의 경우 일부 출입처에 한해 선택근로제를 시행할 것으로 보인다.” 며 “청와대, 국회 출입기자와 대형 사건을 취재하는 중계팀이 대상일 것 같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영상기자들은 52시간 근무제가 ‘저녁이 있는 삶’을 보장하는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일자리 나누기’의 취지에는 맞지 않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근무시간을 줄이기에 앞서 새로운 인력을 충원해야 하는데, 방송사들이 경영 악화를 이유로 채용에 소극적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SBS는 ‘68시간 근무제’가 시행된 지난해 7월부터 올 6월까지 영상기자를 2명 채용했다. 반면, 정년퇴직 등으로 퇴사한 인원은 4~5명이나 된다. KBS는 최근 1년 동안 신입 5명, 경력 3명 등 8명을 채용했고, 8명이 퇴사했다. MBC는 파업 직후 지난해 3명의 인력을 채용했지만, 명예퇴직을 실시하면서 4명이 회사를 떠났다. 특히 MBC는 2011년부터 2017년까지 영상 취재 쪽에서만 18명의 인원이 퇴직 등의 이유로 회사를 떠났지만, 정규직 신규 채용은 전혀 없었다.
SBS의 한 기자는 “유연근로제가 불가피하다고 하는데, 기본적으로 인력 충원이라는 큰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우리에게 어떤 형태도 불리하다고 본다.”며 “회사에서는 이 제도의 취지를 무시한 채 경제적 비용을 줄이는 차원으로만 접근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MBC의 한 기자도 “10년 전만 해도 80명 가까웠던 영상기자가 지금은 50명도 안 된다.”며 “인력 충원에 대해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지만, 비상경영안을 통해 인력 감축안이 나오고 신규 채용도 최소화하겠다고 선언하는 등 상황이 좋지 않다 보니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근무시간 단축이 임금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도 기자들은 촉각을 세우고 있다.
MBC의 한 기자는 “근무시간 단축은 결국 임금의 하락을 동반할 수밖에 없는데, 시간외수당이 크게 줄어 실질소득에서 심각한 감소를 가져오지 않을지 우려하고 있다.”며 “저녁이 있는 삶을 갖는 건 좋지만, 경제적인 문제와 업무 피로도를 생각하면 달갑지만은 않은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KBS 기자도 “52시간 근무제가 덜 일하고 고용을 창출하자고 도입된 건데, 회사는 비용 절감 측면에서만 접근한다.”며 “월급은 줄고, 사람은 없고, 일은 타이트해지는 구조로 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안경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