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처음으로 취재 보도한 영상기자 찾았다
유영길 전 美CBS 서울지국 영상기자, 힌츠페터국제보도상‘오월광주상’부문 첫 수상자 선정
80년 5월19일, 광주 금남로 투입된 계엄군·저항하는 시민들 처음으로 취재해 미 CBS뉴스에 보도
▲1970년대말 남북군사 회담을 취재중인 유영길 기자
‘한국 뉴웨이브 시네마의 아버지’로 불린 유영길 촬영감독이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최초로 보도한 영상기자임이 밝혀졌다.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심사위원회는 지난 8월 27일 회의를 열고 영상 보도에 특별한 공로가 있는 인물을 선정해 시상하는 비경쟁부문 상인 ‘오월광주상’의 첫 수상자로 유영길 전 美CBS 서울지국 영상기자를 선정했다.
심사위원회는 5.18 진상조사 전문가들과의 함께 유 기자의 가족, 외신기자 시절 동료들을 인터뷰하고 당시 방송자료를 포함한 국내외 자료를 조사하는 등 검증작업을 벌여 왔다. 위원회는 당시 CBS서울지국의 영상기자이던 유영길 기자가, 1980년 5월 19일 오전, 광주에 장갑차와 군트럭이 투입된 현장과 계엄군이 대검 등을 장착한 소총으로 시민들을 위협하는 장면, 시민들의 저항 장면, 전투기를 동원한 작전이 진행되는 상황 등을 처음으로 영상에 담아 미국CBS뉴스를 통해 세계 첫 보도를 했다는 공적내용을 확인했다.
심사위원회가 확인한 광주 동구청의 80년 5월 19일 ‘상황일지’에는 ‘오전 10시25분 미국 CBS 기자 3명이 촬영기와 마이크를 휴대하고 상공회의소 옥상으로 올라갔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또한, 유 기자가 촬영한 5월19일 영상은 군부대의 광주 진입과 폭력 행위를 시간 순서대로 기록한 당시 ‘광주동구청 상황일지’의 내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가 취재한 영상은 인편을 통해 도쿄의 CBS지국으로 보내져 미국 본사로 송출된 뒤, 현지시각 5월 19일 오후 8시 ‘CBS EVENING NEWS’에 서울에 머물던 도쿄특파원 브루스 더닝의 전화리포트와 함께 전파를 탔다.
80년대‘광주비디오’, 방송보도와 다큐, 5.18 진상규명 작업의 중요한 자료로 사용
유 기자의 영상은 1980년대 전 세계에서 제작된 ‘광주 비디오’의 중요 영상으로 사용되었고, 1987년 이후 5.18을 다룬 각종 보도와 다큐멘터리의 영상자료로도 사용되었지만, 영상을 촬영한 기자가 유영길이라는 사실은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었다.
심사에 참여한 이재의 5.18기념재단 연구위원은 “유영길 기자의 취재영상은 5.18 당시 광주에서 일어난 군의 폭력진압과 그동안 군이 부정해왔던 ‘계엄군의 대검착검’ 등의 무장 상황을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를 담고 있다”며 “시민들이 국가폭력에 저항해 정국의 관찰자에서 항쟁의 주인공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라고 밝혔다. 심사위는 “유영길의 영상이 없었다면, 우리는 그 날의 일들에 대한 진위를 아직도 제대로 가려내지 못하고 소모적인 논쟁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었을지 모른다”고 평가했다.
영상기자 경험, 영화‘꽃잎’에서 ‘5.18’ 상황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리얼리즘으로 승화
유 기자는 5월21일 전남도청 앞에서 공수부대가 시민을 향해 집단 발포한 결정적인 역사의 순간을 기록하지 못한 것을 평생 안타까워했다. 무거운 배터리를 대신 들어주겠다고 나선 시민과 함께 취재하던 중 그를 잃어버렸고, 배터리를 구하기 위해 당시 5.18을 취재하던 기자들의 유일한 연락 창구였던 장성우체국에 들른 사이에 군의 집단 발포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유 기자는 영화 ‘꽃잎’의 제작 당시, 언론 인터뷰를 통해 “허구로 그날을 다시 찍는다.”며 강한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장선우 감독, 김영래 촬영조감독 등 영화 ‘꽃잎’의 제작진들은 공수부대의 발포 장면, 금남로의 장면 등을 재현하고 촬영하는데 유감독이 5.18광주민주화운동의 현장에서 실제 겪은 취재경험들이 큰 역할을 했고, 영화 ‘꽃잎’의 5.18 장면들은 유 감독이 추구한 리얼리즘 미학의 절정을 보여주고 있다고 회상했다.
심사위는 “1980년 5월 19일 광주의 상황을 담은 영상은 유영길 기자가 영상기자로서 당시 사태의 심각성과 문제점들을 제대로 파악하고 이를 있는 그대로 기록하고 전달하기 위해 얼마나 큰 노력을 기울였는가를 잘 보여준다.”며 “유 기자와 그의 5.18 영상이 다시 재조명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경숙 기자 cat100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