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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안정환 선배를 추모하며

 
 
 동료들이 검은 옷을 입고 모인 빈소. 차고 건조한 느낌의 형광등 불빛 아래 놓인 영정사진. 그 안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사람. 왜 그랬는지, 무슨 상황에서였는지 선배는 엄지를 치켜세우고, 비현실적인 미소를 짓고 있다. 지난 2017년 파업 때, 매일 보았던 그 얼굴이다. 그해 겨울은 몹시 춥고 바람도 매섭고 지루하리만치 길었다.
 
 선배는 그 겨울 동안 늘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생각해 보면 그게 선배와 함께 동고동락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술잔을 기울일 수 있었던 마지막 시간이었다.
 
 ‘나도 같이 하고 싶어. 내가 도울게. 전력을 다해 바꿔 보자.’
 그런 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여차저차 선배가 파업 대열에 합류해 주었고, 실제로 큰 힘이 됐다. 그 시간이 없었다면, 나는 선배에 대해 지금처럼 많은 것을 알지 못했으리라. 선배의 마음속에도 그 기억이 나와 같이 남아 있을까?
 
 파업이 끝나고 나서 선배는 처음으로 팀장이 됐다. 그 기간은 참 짧게 끝나고 말았다. 팀장 자리에 앉아 암 선고를 받고 나서도 우리는 모두 담담했던 것 같다. 질병의 명칭이 주는 위압감과 공포를 선배도 나도 애써 외면한 것이리라. 나는 왠지 선배가 마지막까지 버티고, 당장에라도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믿은 것 같다. 무슨 근거로, 그런 배짱을 부렸을까?
 
 선배도 딸 둘, 나도 딸 둘이다. 선배와 나 사이에 존재하는 공통 지점이다. 워낙 말수가 적어 선배로부터 딸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지는 못했다. 오히려 내 딸 이야기를 선배에게 많이 했다. 그때마다 선배는 지긋이 웃으면서 마지막에 그저 짤막한 코멘트를 남길 뿐이었다. 선배가 얼마나 두 딸을 사랑하고 있는지, 또 형수를 아끼는지 느낄 수 있는 코멘트를.
 
 이따금 선배와 술잔을 기울였다. 선배는 원래 말이 없는 사람, 후배들에게는 왠지 엄격해 보이는 사람, 다가가기 쉽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런 선배와 참으로 편안하고 진솔한 자리를 가질 수 있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언론사에 들어와 온갖 불의와 싸우면서 믿을 수 있는 동료, 선배와 솔직하고 격의 없이 술잔을 기울일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가? 지금 이 순간에도 선배와 마주 앉았던 그 자리가 몹시 그립다.
 
 선배를 보내고 나니 남는 후회란 더 자주 밥을 먹지 못한 것, 더 자주 술잔에 술을 부어주지 못한 것, 더 깊은 이야기를 더 많이 나누지 못한 것, 그런 소소한 것들뿐이다. 해도 해도 끝이 없을테지만 그래도 다시 한번 선배의 눈을 보고 싶은 마음은 무엇인가?
 
 10월 7일 아침에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7시 반. 이른 시간에도 2백여 명의 사람들이 회사 신관 로비에 모였다. 선배를 기억하고, 추모하고, 다시 보고 싶어 하는 동료들이 아침 일찍 추모식에 참석한 것이다. 짧은 추도 예식이 끝나고, 신관 3층 보도영상 팻말이 붙은 문을 지나 좁다란 복도를 걸어간 끝에 나온 아카이브실. 선배가 마지막 며칠을 머문 장소다. 영정사진을 안은 유가족은 아카이브실을 거쳐 4층 특집팀 사무실로 향했다. 선배가 암 선고를 받고 나서 몇 개월간 앉아 있었던 팀장 책상. 형수가 그 자리에 서서 한없이 흐느껴 운다. 마치 그 자리에 선배가 앉아 있었을 때 겪었던 일을 자신은 훤히 알고 있다는 듯 펑펑 눈물을 쏟는다. 오열하는 형수를 바라보며 나 역시 거기 앉아 있던 선배의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우리는 모두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존재들이다. 선배가 조금 먼저 정상에 올랐을 뿐이다. 나도 역시 삶의 길을 묵묵히 걷다가 언젠가 선배처럼 정상에 이르리라.
 
 선배가 떠난 후, 내 기억 속에 남은 선배는 싸우고 있고, 승리에 감격하고 있고, 마지막엔 그 승리의 여운을 조금이나마 공유하는 그런 모습이다. 그래서 참 다행이다. 선배의 삶에, (그땐 몰랐지만)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 저벅저벅 선배를 향해 다가오고 있던 그 시점에 그런 승리, 작지만 감격스러운 사건이라도 없었다면 어땠을까 싶어 아찔하다.
 
 영정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으며 엄지를 높이 치켜세우는 선배 모습은 그래서 역설적으로 아름답다. 그날 속엔 나도 있었고, 환히 웃고 있던 선배도 있었던 것이다. 반년 가까이 급여를 받지 못하며 국정농단, 사법농단, 언론농단 세력과 맞서 싸우고, 개혁을 부르짖었던 시간은 순수하고 또 정의로웠다. 힘겹고 고독한 길을 걸어간 이상 우린 싸움 이전에 이미 승리자들이었다. 그 기억 속에 선배가 영원히 남으리라.
 
 남은 가족들께 깊은 슬픔과 함께 심심한 위로를 전해 드린다. 
 
 

김정은 / 편집장    f17df408ecf854986c366387ef590189.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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