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399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인쇄 첨부

기억의 외주화와 영상의 공공성





 미국 911 이후 쌍둥이 빌딩의 폐허 자리에 지하 공간을 유지해 참사를 기억하자고 했던 건축가 다니엘 리베스킨드(Daniel Libeskind)의 제안보다 그 인근에 고만고만한 건물들을 건설하자는 계획은 시민들의 더 큰 반발을 샀다. 테러리스트들이 미국 자본주의의 상징을 파괴하려는 목적을 지닌 것만큼 대중들은 미국의 상징성을 복원시킬 시각적인 스펙터클 (Spectacle)의 복원을 원했다.


  시각적 표현과 상징은 현대 커뮤니케이션 문화의 핵심이고, 사람들의 기억과 상상력에 영향을 미친다. 분명 우리는 영상 매체 중심의 미디어 시대를 살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하루에 50억 개 이상의 영상이 시청되고 분당 500시간의 영상이 유튜브에 업로드되고 있다. 특히, 학교 안에서 보자면 현재 젊은 세대는 확실히 일기장을 쓰는 것보다 브이로그(vlog)가 편해 보인다. 영상은 뉴미디어의 핵심이고, 하루하루의 일상과 의미를 연결해주는 매개체이다. 시각문화 연구자 미첼 교수(W.J.T. MITCHELL)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미지에 불과한 것들이 세상을 지배 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영상 중심의 새로운 미디어 생태계에서 사실과 정보를 기록하고 가공하는 영상저널리즘은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아마추어와 프로들이 한 공간에서 만나고, 시민의 카메라가 사회 감시 기능을 하고, 또 언론과 유사 언론이 무한 경쟁을 펼치는 미디어 생태계 안에서는 감당하기에 벅찬 수준의 정보와 사건들이 시 각화되고 공유된다. 디지털 아카이브와 기억의 관계를 연구하는 럼지(Rumsey) 교수의 표현대로 우리는 점점 더 기억을 미디어에 외주화하고 있고, 이런 새로운 방식은 우리의 정체성과 사회 문화를 바꾸고 있다. 가짜 뉴스를 진짜 뉴스와 섞어 놓은 이미지를 보여주고 시간이 지난 뒤 사람들의 기억을 확인했더니 가짜 뉴스도 사실로 인식했다는 미국 슬레이트지(Slate)의 연구는 생물학적인 기억의 한계는 명확하고, 그만큼 미디어가 생산 하는 이미지가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문제는 영상저널리즘의 자리가 점점 더 위축되어 간다는 점이다. 기자 사회 밖에서 보면 미디어 학부 안에서조차 영상저널리 즘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동시에 취재 시스템 안에서는 기관의 통제가 더욱 심해지고, 영상 제작이 대중화되고, 아카이브 영상들이 범람하면서 사실을 담보할 수 있는 기록으로서의 영상의 가치는 점점 빛을 잃어가고 있다. 탈맥락화된 아카이브 영상에 의도와 자막을 입혀 메시지가 가공되는 일은 흔한 일이 되었고, 더 심한 경우 영상은 맥락을 잃고 악의적인 가짜 뉴스의 포장지처럼 쓰이고 있다. 이런 흐름은 건강한 민주주의의 공론장을 훼손시키며 분열과 혐오 같은 사회적 비용도 발생시킨다. 미디어를 공유하며 사람들이 소속감과 정체성을 갖게 된다는 앤더슨(Anderson)의 설명보다 더 직접 적으로 우리는 응당히 보여야 할 영상이 없거나 왜곡되었던 참담한 시대를 경험해 왔다.


 그래서 전문인으로서의 영상기자는 그 어느 때보다도 필수적인 직종이다. 문제는 현재의 영상저널리즘이 ‘영상은 사실이다’ 란 전통적인 낡은 가치에 사로잡혀서 변화된 시각 문화에 안착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포토샵 아티스트인 에릭 요한슨 (Eric Johansson)의 성공이 보여주듯 현대의 영상은 점점 회화를 닮아가고 있고, 사람들의 관심은‘ 그림이 무엇을 말하는가’란 질문에서 ‘그림으로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로 이동하고 있다. 이런 변화된 환경에서 기존의 제작 방식은 부침이 있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흔히 인력 부족과 운영의 문제 등으로 인해 현장에 오래 머물지 못했고, 텍스트(sync) 중심의 하향식(top-down) 취재 관행 속에서 현장의 목소리를 충실하게 기록하는 역할, 사회적 함의를 창조하는 커뮤니케이터로의 역할 등을 종종 놓쳐 왔다.


  이런 환경을 극복하는 게 지속 가능한 저널리즘 모델이라면 영상저널리즘은 특정한 단어와 싱크를 따는 역할이 아닌 맥락을 기록하는 독립적인 모델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사실의 기록’ 이라는 전통적인 믿음과 가치와는 별개로 적극적인 기획과 표현력이 요구된다. 우리는 이미 여러 선례를 보아 왔고, 우수한 콘텐츠는 언제든 폭발적으로 공유될 수 있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오늘날 시청자들은 수동적 역할이 아니라 뉴스를 자신의 소셜 관계망을 통해 공유하고, 적극적으로 댓글을 다는 행위를 통해 ‘제2의 게이트 키퍼 역할’을 하고 있다.


 관심이 공유되고 또한 수익으로 연결되는 시대에 영상저널리 즘은 현장의 맥락을 보여주고, 또 팩트를 사회적 의미로 만드는 새로운 방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기술적인 표현력이 뛰어난 영상기자들에게 아이디어와 기술이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모델이 필요하다. 하루 일상에서 여러 미디어를 넘나드는 트랜스 미디어 환경에서 영상저널리즘은 하나의 쇼트(shot)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 아니라 맥락(context)을 포함해야 한다. 그리고 나아가 새로운 의미를 재창조하는 기획과 프로그램을 통해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중요한 질문은 다시 미첼(W.J.T Mitchell)의 말속에 있다. “우리는 매체의 이미지 에, 매체의 이미지는 우리에게 말을 건다. 우리는 어떤 말을 건넬 것인가?



김우철 / 경희대 언론정보학부 강사 (사진) 김우철 증명사진.jpg




  1. 심상찮은 전광훈 목사 현상

    심상찮은 전광훈 목사 현상 ‘하나님 나한테 까불면 죽어’ 이 발언으로 논란이 됐던 전광훈 목사가 최근 코로나19 상황에서 광화문 집회를 독려해 감염병 재확산의 주범으로 지목되면서 전 국민이 그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사실 그의 이름은 2005...
    Date2020.11.17 Views310
    Read More
  2. 병아리 깃털과 초콜릿 상자

    병아리 깃털과 초콜릿 상자 ▲ 일광욕을 즐기는 얄리와 쎵 떠오른다. 10대 때 아주 힘들게 읽어나갔던, 책(데미안)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으나, 그 구절이 어렴풋이 떠올라 스마트폰으로 검색해 본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새의 세계이다. 태어...
    Date2020.11.17 Views473
    Read More
  3. KBS 김정은 기자와 함께 삽니다

    KBS 김정은 기자와 함께 삽니다 ▲ 작년 가을, 미국 뉴욕 브루클린 브리지 위에서 가족과 함께 내가 남편을 처음 만난 건 2007년 초겨울이었다. 그는 KBS에 막 입사했었고, 연애를 시작하기엔 너무 바빴다. 야근이 일상이었고, 그런 그를 만나기 위해선 내가 여...
    Date2020.11.16 Views539
    Read More
  4. [줌인] 사망 보도의 진화

    [줌인] 사망 보도의 진화 7월 10일 새벽, 박원순 시장의 사망 최종 확인 시점 몇 시간 이전부터 사망 보도가 흘러나오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여전히 생사가 불분명한 상황 중에 나온 명백한 오보였다. 정치 거물의 갑작스러운 실종 소식은 언론사들의 속보 경...
    Date2020.09.16 Views332
    Read More
  5. 영상기자와 유튜브

    영상기자와 유튜브 올드미디어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2019년 기준 지상파 방송사의 광고시장 점유율은 36.7%로 2015년 55.0%보다 20% 가까이 급감했다. 방통위가 시행한 ‘2019 방송매체 이용행태’ 조사에서는 스마트폰을 필수 매체로 선택한 응답...
    Date2020.09.16 Views413
    Read More
  6. 제2의 장미란이 아닌 제1의 박혜정을 꿈꾸며

    제2의 장미란이 아닌 제1의 박혜정을 꿈꾸며 ▲ 지난 7월 21일, 충남 서천에서 열린 전국 춘계역도대회’에서 용상 154kg을 ▲ 박혜정 선수가 코치로부터 발로 밟히는 특이한 스트레칭을 받고 있다. 번쩍 들어 올려 한국 주니 어 신기록을 세운 박혜정 선수...
    Date2020.09.16 Views418
    Read More
  7. 험지 취재에 유용한 경량 백패킹

    험지 취재에 유용한 경량 백패킹 ▲ 지난해 10월 제주도 성산 일출봉 인근에서 제주 올레길 1코스를 따라 걷다 잠 시 쉬며 백패킹을 하는 필자. ‘짐을 줄이고 더 빨리, 더 멀리 가자.’ 경량 백패킹의 모토인데 어딘가 친숙한 느낌입니다. 재난 발생...
    Date2020.09.16 Views462
    Read More
  8. K리그가 EPL보다 재미있는 3가지 이유

    K리그가 EPL보다 재미있는 3가지 이유 ▲ 지난해 11월,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 원정석에서 아들과 함께 축구 좋아하시나요? 해외축구는 EPL, 국내축구는 국가대표팀 보신다고요? 맞습니다. 역시 축구는 EPL이죠. 그곳에서는 월드 클래스 선수들의 최고의 기...
    Date2020.09.15 Views481
    Read More
  9. 부동산 정책? 건강한 인식(認識)이 먼저

    부동산 정책? 건강한 인식(認識)이 먼저 ▲ 새 집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필자의 가족 <사진/김원> 결혼을 하고 5년째 되든 해, 어린 시절부터 살던 동네에 작은 집을 하나 마련하게 됐다. 1기 신도시라 연식도 오래됐고, 많은 사람이 선호하는 인 서울...
    Date2020.09.15 Views290
    Read More
  10. 전에 없던 새로움을 탐하다 ②

    전에 없던 새로움을 탐하다 ② 6개월간의 대장정 선거 방송을 준비하며 UHD 실사 촬영 이번에는 포맷용 실사 촬영을 UHD급 이상, 10bit 이상 영상으로 하기로 했다. 최종단에서 전체 영상 톤을 맞추기도 용이하고 HD 화면의 4배 사이즈이기 때문에 CG용 재가공 ...
    Date2020.09.15 Views295
    Read More
  11. 우리만 모르는, 우리 안의 갑질은 없을까?

    우리만 모르는, 우리 안의 갑질은 없을까? ▲ 지난 6월 30일 울산 스타벅스, 매장 직원에게 폭언하는 갑질 손님 ▲ 지난 5월 19일 울산 울주군, 경비업무 중인 아파트 경비원 <사진/CCTV> # 장면 1 손님 : 내가 분명히 아이스 라떼 하나, 따뜻한 라떼 하나! 내가...
    Date2020.09.15 Views299
    Read More
  12. 저작자의 성명표시권, 실효적으로 관리ㆍ개선되어야 마땅

    저작자의 성명표시권, 실효적으로 관리ㆍ개선되어야 마땅 ▲ 이호흥 호원대 초빙교수 / (사)한국저작권법학회 명예회장 우리나라 저작권법 제12조 제1항은“ 저작자는 저작물의 원본이나 그 복제물에 또는 저작물의 공표 매체에 그의 실명 또는 이명(異名)을 표...
    Date2020.07.17 Views593
    Read More
  13. [줌인]이유 있는 뉴스 신뢰도 꼴찌, 한국 언론

    [줌인] 이유 있는 뉴스 신뢰도 꼴찌, 한국 언론 “유시민은 솔직히 개인적으로 한 번 쳤으면 좋겠어요. ... 사실 유를 치나 안 치나 뭐 대표님한테 나쁜 건 없잖아요. ... (협조) 안 하면 그냥 죽어요. 지금보다 더 죽어요. ... 이렇게 하면 실형은 막을 수 있...
    Date2020.07.17 Views386
    Read More
  14. 관행적인 위반,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요?

    관행적인 위반,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요? ▲ 이승선 교수/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습관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 오래된 것 일수록 그렇다. 바꾸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 수용하지 못하는 것들도 있다. 바뀌지 않으면 죽을 수 있다는 경고도 불문한다. 흡연 같은 경...
    Date2020.07.17 Views457
    Read More
  15. 피의사실 공표 논란, '쉼표'가 될 기회

    피의사실 공표 논란, '쉼표'가 될 기회 ▲ 법원의 영장실징심사에 출석하기 위해 경찰서를 나서는 피의자 인사를 나누는 시간이 반갑다. 그간 소원해진 것 같다며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하루에도 몇 번씩 현장에서 얼굴을 마주하던 시절은 지났다. 대전·충남 ...
    Date2020.07.17 Views345
    Read More
  16.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세계질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세계질서 올해 초부터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강타하여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안보 등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다. 1918년에 발생하여 약 5천만 명의 인명을 앗아간 ‘스페인 독감’과 비교해 보면 코로...
    Date2020.07.17 Views309
    Read More
  17. 기억의 외주화와 영상의 공공성

    기억의 외주화와 영상의 공공성 미국 911 이후 쌍둥이 빌딩의 폐허 자리에 지하 공간을 유지해 참사를 기억하자고 했던 건축가 다니엘 리베스킨드(Daniel Libeskind)의 제안보다 그 인근에 고만고만한 건물들을 건설하자는 계획은 시민들의 더 큰 반발을 샀다....
    Date2020.07.17 Views399
    Read More
  18. 지역 MBC의 유투브 플랫폼 활용

    지역 MBC의 유투브 플랫폼 활용 ▲ MBC충북 '한국 남매' 제작 현장 방송ㆍ통신 기술 발전에 따른 새로운 미디어 플랫폼의 탄생으로 전통미디어인 지상파 플랫폼의 존재 가치가 희미해지고, 스마트미디어가 새로운 플랫폼으로 강조되고 있는 현시점에서 지역 지...
    Date2020.07.17 Views328
    Read More
  19. 코로나19, 대구에서

    코로나19, 대구에서 ▲ 청도노인요양병원에서 코로나19를 취재하고 있는 필자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로 인해 약 917만 명(2020년 6월 24 일 기준)이 넘는 사람들이 감염되거나 목숨을 잃었습니다. 국내에서도 연일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감염 확진자가...
    Date2020.07.16 Views310
    Read More
  20. 지금은 할 수 없는, 여행을 위하여

    지금은 할 수 없는, 여행을 위하여 ▲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필자 9시 15분 피렌체행 기차는 2시간이나 연착됐다. 역무원에게 물어보니 “토스카니에서 지진이 나서 어쩔 수 없다.”고 한다. ‘넘어 진 김에 쉬어간다.’ 생각하고 아침을 먹고 있는데 연착 시간이 9...
    Date2020.07.16 Views297
    Read More
  21. 해외 출장 후 자가격리기(記)

    해외 출장 후 자가격리기(記) 코로나를 뚫고 해외 출장을 다녀올 일이 있었다. 목적지는 미국. 코로나 공포가 한창이던 5월 초였다. 항상 붐비던 인천공항은 고요했다.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코로나 19와 무관하다는 검역당국의 확인증 발급. 적막한 분위기 ...
    Date2020.07.16 Views419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Next
/ 11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