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김정은 기자와 함께 삽니다
▲ 작년 가을, 미국 뉴욕 브루클린 브리지 위에서 가족과 함께
내가 남편을 처음 만난 건 2007년 초겨울이었다. 그는 KBS에 막 입사했었고, 연애를 시작하기엔 너무 바빴다. 야근이 일상이었고, 그런 그를 만나기 위해선 내가 여의도나 그의 집 근처로 갔어야 했다. 서로의 배려 덕분에(?) 쉽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우린 만남을 이어갈 수 있었고, 결혼까지 골인할 수 있었다.
첫 만남 당시에 난 카메라기자(지금은 영상기자)란 직업에 대해 알지 못했다. 방송국엔 뉴스를 리포트하는 기자(취재기자)만 있는 줄 알았다. 뉴스영상에 대해선 궁금해한 적조차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누가 남편의 직업을 물어 답했을 때, 카메라맨이냐고 되묻거나 연예인 많이 보겠다며 아는 척을 해대면 심히 불쾌할 정도다. 같은 맥락에서, 그를 만나기 전 언론의 역할에 대해 깊이 고민해 본 적 없는 나는, 요샌 언론 같지 않은 언론에 분개하기도 하고, 어떤 기사엔 기자를 향한 (비판적) 댓글을 스스로 달기도 한다.
평소 남편과 나는 참으로 다양한 주제의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주로 그가 얘기하고 나는 듣는 편이지만, 난 그 시간이 참 좋다. 재미있고, 유익하고, 혼자 듣기 아깝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정치, 검찰, 언론, 교육, 부동산, 가십에 이르기까지, 아무도 들려준 적 없는 새로운 관점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새로울 뿐 아니라 훌륭한 논증 방식이다. 팔불출 같지만, 남편만큼 지적인 기자는 없다. 덕분에 나는 언론이 알려주지 않는, 현상의 이면에 대해 매일 수준 높은 해설을 듣는 행운을 누리고 있다.
그런데 가끔은 당연하지만 유별난 그의 언론인으로서의 사명감 때문에 피곤하기도 하다. (김정은 기자를 좋아하지 않는 당신만 피곤한 게 아니다.) 적당히 눈감고, 적당히 타협하고, 적당히 당신을 치켜세워 주면 좋으련만, 그래서 승진도 하고 특파원도가면 좋으련만 꼭 그렇게 고집스럽게 꼿꼿하다.
남편이 책을 통해 검찰이나 언론의 문제점을 다루고, 지난 KBS 파업 때처럼 앞장서 조직의 부조리나 영혼 없는 언론인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게 아내인 나는 가끔 걱정스럽기도 하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계란으로 바위 치기인 싸움에 제 발로 뛰어드는 게 대단하기도, 안쓰럽기도 한 것이다. 그렇게 치열하게 싸우지 않아도 월급은 나오는데, 다들 그리하듯 눈치껏 제 잇속을 차리는 게 남편에겐 왜 그리 어려운 일인지 이해가 안 갈 때도 있다. 나 역시 직장인이기 때문에, 어떤 조직원이 그 조직 내에서 잘 나가는지 혹은 꺾이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남편을 지지하고 응원하게 되는 건 그 어떤 미사여구보다 결국 인간적인 “양심” 때문인 것 같다. 무엇이 부조리하고 혹은 정의로운 건지, “양심”은 알기 때문이다. 그걸 무시하고, 혹은 없는 것처럼 사는 건 소위 “잘 산다” 해도 껍데기뿐인 삶이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 딸들이 - 이 녀석들은 남편이 지어 준, 활리와 제라라는 멋진 이름을 가지고 있다 - 아빠를 닮아 주체적인 삶을 살기를 바란다. 좋은 대학에 가서 좋은 직업을 가지는 것 따위를 목표로 하는 삶이 아니라 소외된 이웃과 함께 살아가기를 자처하는 품 넉넉한 삶을 살기를 바란다. 부자 되는 게 꿈이 아니길 바라고, 사회의 조화로움 속에서 개인의 행복감을 느끼길(쟁취하길) 바란다.
이미 시작은 성공적인 것 같다. 김정은 기자를 아빠로 두었으니 말이다.
추신. 이 글이 남편 예찬론으로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흉보는 얘기는 다음 기회로 미뤄뒀을 뿐... 다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최향주 / KBS 김정은 기자 아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