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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전쟁 20년, 다시 탈레반의 시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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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년 9.11테러의 배후로 지목되었던 오사마 빈 라덴 체포협조를 탈레반정권(오마르)이 거부하면서 시작된 아프간 전쟁. AP통신 서울지국 TV기자로 근무하던 필자는 각 대륙에서 1명씩 총3명이 한조가 되어 한달씩 로테이션으로 아프간 근무를 하는 팀에 포함되어 12월15일 바그람 공군기지에 도착했다.


 당시 아프간은 민간항공기 운항이 금지되어있는 상황이라 이슬라마바드에서 카불까지 회사가 UN을 통해 마련한 전세기를 이용했다. 토요일 새벽 이슬라마바드에서 1시간 조금 넘게 비행하여 도착한 바그람 공군기지는 언 듯 보아도 마치 유니버셜 스튜디오의 전쟁영화 세트장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바그람 공군기지는 지금 뉴스에 나오는 카불공항(하미드 카르자이)과는 달리 카불외곽(약 45km 떨어진)에 위치한 군사공항인데, 당시 시내에 있는 카불공항은 재건 전이라 항공기 이착륙이 불가능 하였고 바그람 공군기지마저도 전자 이착륙장치가 없어 조종사가 눈으로 확인하고 착륙여부를 판단하였다.  


 미처 뜨지도 못하고 활주로 옆에 두 동강난 탈레반 전투기들, 기지 활주로 두 개 중 하나는 폭격으로 생긴 구멍이 여러 곳 있었고 공항 전역에 무장한 미군들과 아프간 군인들, 그리고 기관포 등을 보며 공항에 접근할 때  ‘아... 그냥 이 조그만 비행기가 다시 하늘로 솟구쳐 날아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다가왔다. 


 짐을 내리고 미군 트럭을 얻어 탄 후 기지 밖으로 나가 마중 나온 현지 운전사를 만났다.  닷지 픽업트럭에 몸을 싣고 비포장도로를 달려 카불 시내로 가는 길도 예사로운 모습은 아니었다. 흙먼지를 내며 달리는 우리 차는 혹시 모를 저격에 대비해 일정속도 이상을 유지하며 달려야 했다. 


 도로 주변엔 민간인 복장이지만 소총을 매고 탄띠를 두른 외국인이 미군과 함께 작전을 하고 있었으며 (용병으로 추정) 부서진 탱크위에서 놀던 어린이들은 아직 전쟁이 어떤 것인지 모르겠다는 천진난만한 얼굴과 맑은 눈을 깜빡이며 우리를 바라보고 용기를 내어 흔드는 손짓에 환한 웃음도 보여주었다. 다 부서져 있는 검문소를 통과할 때는 아프간 군인들을 향해 우리가 연신 미소를 짓고 있었다.        


 카불은 고대시대 실크로드의 동서양을 잇는 길이라 상대적으로 강대국들의 침략이 잦았고 그로 인해 문화와 치열한 전쟁의 역사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도시이다. 오늘날에도 카불은 세계적 호텔체인인 인터콘티넨탈이 1969년 영업을 시작할 정도로 교통의 요지이다. 그 인터콘티넨탈 호텔이 우리 숙소 겸 업무공간이었는데 전쟁의 후유증으로 전기 공급이 끊기기 일쑤였고 겨울임에도 온수는 아애 나오지 않았다. 객실 유리창은 총격으로 깨져있어 12월 카불의 찬바람이 방안을 휘감고 있었다. 객실 천정과 벽에는 호텔외부에서 객실을 향해 난사한 총탄자국이 선명했다. 


 우리가 도착한 날은 마침 2001년 라마단의 마지막 날이었다. 저녁이 되자 미국의 도움을 받아 전쟁에서 승리한 북부동맹 리더들이 저녁식사를 위해 인터콘티넨탈 호텔로 몰려들었고 나의 아프간 첫 임무도 시작되었다. 전쟁에 승리한 북부동맹군들은 하늘을 향해 간간히 총을 쏘면서 언덕위에 있는 호텔 마당으로 차를 몰고 올라왔고 그들은 서로를 격려하며 즐거운 표정으로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근접하는 나를 총으로 막는 무리도 있었다. 그들 중에는 추후 아프간 초대 국방장관으로 추대된 북부동맹 리더도 있었는데 며칠 후 나와 동료들은 북부동맹의 숙소로 인터콘티넨탈이 정해져 무장군인들에 의해 호텔에서 나가야 했다.     


 해가 지자 카불시내는 하늘을 향해 쏘는 자동소총 소리와 차량 경적소리, 사람들의 고함소리로 혼란스러웠다. “탈레반의 반격이 시작되었나?” 불안해하는 나에게 현지코디들은 “라마단 마지막 날을 축하하는 것이니 걱정 말라.”고 웃음을 보냈다. 전쟁 속에서 살던 그들에게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였을 것이다. 이날부터 무거운 푸른색 방탄조끼와 방탄헬멧은 카메라보다 먼저 챙겨야 할 짐이자 생명보호 도구로 내 몸에 달라붙었다. 


 아프간에서의 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현지코디 D, F, K (신변보호를 위해 실명이 아닌 이니셜로 표기)는 우리와 함께 항상 취재를 다녔다. 초대 대통령 하미드 카르자이 단독 인터뷰, 연합군의 순찰, 바그람 기지에 도착한 미 상원의원들과 카르자이의 면담을 위한 기지내 숙영, 탈레반이 로켓으로 고대석상을 부순 바미안 지역 난민들 취재, 아프간 탱크부대 재정비 및 훈련, 백신접종과 빵집 재개관... 제목으로만 보면 별것 없는 취재 같지만 아직도 아프간 남부지역은 총격과 폭격이 계속되고 카불외곽은 치안이 불안한 상황이라 모든 삶이 전시상태였다. 그래서 탈레반이 물러간 카불이지만 탈레반 시대엔 남자 보호자 없이 다니면 종교경찰의 막대기를 피할 수 없었던 아프간 여인들은 아직 부르카를 벗지 못한 채 거리로 외출하고 있었다. 


 어느새 출장 한 달이 되어가던 2002년 1월, 카불은 점점 활기를 띄어가고 있었다. 거리시장의 상인들 모습도 한껏 밝아져 있었고 거리에서 아프간 명물인 카펫을 직접 제작, 판매하는 이들도 많았다. 시민들도 이제는 낯설지 않은 외국인들에 대해 미소를 보이는 등 많은 곳에서 변화가 느껴졌다. 식당은 문을 열고 손님을 받았으며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흥정소리도 곳곳에서 들렸다. 그러나 칸다하르 등에서 계속 전투가 진행 중이라 밤에는 통행금지가 유지되었고 전기는 툭하면 끊어져 열심히 발전기를 돌려야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어디선가 자동소총 소리가 들렸으며 밤에는 그 소리가 더 자주 들렸다. 


 길었던 한 달 간의 아프간 순환근무가 끝나고 이슬라마바드로 돌아가는 UN비행기 안에서 멀어져가는 카불은 오랜 전쟁으로 인해 고단한 삶이지만 그래도 미래를 위한 희망이 엿보이는 곳이었고 가진 것은 없지만 웃음을 잃지 않던 아이들의 크고 맑은 눈동자가 유난히 기억에 남는 도시였다. 더욱이 2001년12월24일 어두운 카불 밤거리에서 소총부리를 내 배에 대고 위협하던 아프간 군인 때문에 또 하나의 삶을 시작하게 된 나라이기도 하다. 

    

 그로부터 20년, 아프간이 다시 탈레반의 손에 넘어간 2021년 8월, 외국군과 정부에 협력했던 현지인들이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며 취재시 고락을 같이 했던 세 명의 아프간 동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D, F, K 모두 무사하길 기도해본다.


문승재 / 연합뉴스TV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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