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가는 초상권
초상권이라 함은 사람이 자신의 초상에 대하여 갖는 인격적, 재산적 이익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 함부로 촬영 또는 작성되지 아니하고, 촬영된 사진 또는 작성된 초상이 함부로 공표·복제되지 아니하며, 초상이 함부로 영리 목적에 이용되지 아니할 권리를 포함하는 것으로서 피촬영자 본인의 동의가 있으면 초상권 침해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할 것이나, 본인이 동의하고 또 예상한 것과 다른 방법으로 공표·복제·판매되는 등 동의의 범위를 초과하는 경우에는 초상권 침해가 있다고 할 것”이며, 초상권침해기준으로서 영미법계의 판례는 이른바 ‘건전한 상식의 기준(mores test)'을 따르고 있다면, 대륙법계인 독일의 판례와 학설은 ‘정상적으로 사고하는 품위 있는 일반인의 인식’을 그 기준으로 하고 있다.
건전한 상식을 갖춘 일반인의 수준으로 생각해서 ‘시민으로 돌아온 한 여성의 안마당이나 유리창을 통해 거실을 들여다보는 것’이 과연 정당한 것일까? 언론의 카메라렌즈는 곧 국민의 눈동자이다. 기자라면 국민의 눈동자가 과연 그곳을 보고 싶어 하는 것인지, 과연 바라보고자 하는 것이 사건의 본질적 내용과 부합하는 것인지를 늘 생각하면서 취재하는 것이 올바른 자세일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가저를 취재하기 위해 모여있는 기자들
최근 언론의 박근혜 전 대통령 삼성동 사저 부근의 취재열기가 뜨거웠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물론, 국민들의 최대 관심사로서 국가적인 뉴스라서 그 열기가 뜨거운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다만 언론이 지켜야 할 기본윤리는 지키면서 취재하고 보도해도 국민들의 알권리를 충분히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미 탄핵되어 사저로 돌아 온 상황에서는 더 이상 대통령이 아닌 법적으로 현실적으로 한 시민의 신분이고 여성일 따름이다. 그런데 사저 맞은 편 5-6층 건물의 옥상에 지미짚으로 ENG카메라를 설치하여 사저의 내부를 감시하듯 촬영하여 뉴스로 보도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 것인가? 대문 앞에서 출입하는 관련자들을 취재해도 충분히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시위현장을 취재하는 기자가 긴 망원렌즈를 장착하여 군중 속에 특정인의 얼굴을 클로스업하는 행위는 일반적 상식으로나 법리적으로도 초상권의 취지를 거꾸로 가는 행위임에 틀림없다. 망원렌즈는 사건의 내용으로서 국민의 알권리에 해당되는 피사체 예를 들어, 기자가 시위대를 촬영하다가 시위대 중에 한명이 아스팔트에 넘어져 피를 흘리고 있을 때 그를 조준하여 촬영하는 것처럼 특별한 경우에서만 그 이용이 정당화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카메라의 촬영도 영어로 ‘총을 사격하다’와 동일한 ‘shoot’이다. 그런데 예를 들어 (탈영병이) 도망가면서 그를 추적하는 장병의 위치를 짐작으로 조준 없이 그냥 사격하는 것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엄호사격이라면 망원렌즈로 군중 속의 어떤 사람의 얼굴을 클로스업하는 행동은 그것이 초상권침해로 되는 순간 지휘관이나 특정인을 향해 조준사격을 한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꽃이 만발한 봄 날, 어느 회사 유부남과장과 여직원이 여의도에서 점심시간에 벚꽃을 즐기는 군중 속에서 산책하는데 다정한 두 사람의 모습을 클로스업해서 ‘벚꽃 따라 사랑도 만발’이라는 캡션을 달아 보도한 사례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언론에 부여된 취재와 보도의 자유는 그것이 국민으로서 상대의 개인적 인격권이나 인권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이지, 무제한의 범위로 권리가 허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우리법원도 “모든 국민은 인격권으로서의 초상권을 침해받지 아니할 권리가 있고, 언론매체에 대하여 자신의 초상에 관한 방송을 동의한 경우에도 당시 예정한 방법과 달리 방송된 경우에는 초상권의 침해가 있다 할 것이고 이는 불법행위를 구성하므로 원고들의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서울중앙지법 2006.11.29.선고 2006가합36290판결)고 판결한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류종현 / 부산대 초빙교수 전MBC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