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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모델’을 제시한다



‘이명박근혜 정부’ 시절 권력의 하수인으로 전락했다는 KBS, MBC 공영방송의 몰락은 결국 구성원들을 2017년 9월 또다시 파업으로 몰아갔다. 


정치권은 서로 ‘네 탓’ 공방을 하며 ‘특별다수제’를 대안으로 제시했다가 이것 역시 새로운 문제를 내포하고 있어 방송통신위원회가 새로운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책을 모색하고 있는 중이다.


영국, 독일, 일본 등 공영방송제도를 실시하고 있는 나라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비교 분석한 결과 

다음과 같이 결론을 제시한다. 


어느 나라도 완벽한 제도를 갖추고 있지 않고 있으며 내부적으로 문제가 있지만 그 나라의 정치, 문화, 역사에 맞춘 제도를 개선해 나가고 있는 모습이다. 한국형 모델을 제시하기 전에 3가지 전제 조건을 가장 심도 있게 검토했다.


첫 번째는 공영방송 지배구조 문제의 근원이 정치세력의 방송장악 유혹에서 오기 때문에 어떻게 정치로부터 독립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가장 컸다.


두 번째는 공영방송 이사와 사장 선임 과정이 밀실에서 이루어지는 불투명성을 어떻게 제거하며 어떻게

자격조건을 강화하여 이를 누가 심의할 수 있는가 차원에서 해외사례를 검토했다.


마지막으로는 이런 충분한 논의와 검토 끝에 이사와 사장을 선임했지만 국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정도를 넘어 현저한 정치적 편향성을 드러낼 때 어떤 대안을 이중 안전장치로 내세울 수 있는가를 따져봤다.

그 결과 한국형 모델은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다.


첫째, 현재의 여야 정치권에서 6:3의 비율로 이사를 추천하는 방식은 법적 근거가 없는 관행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정치권은 완전히 손을 떼도록 한다.


법을 바꾸는 국회의원들은 밥그릇, 기득권을 뺏긴다는 차원에서 양보하기 어려운 대안이지만 과거나 현재의 한국의 공영방송 문제는 정치문제이기 때문에 정치권의 손을 떼도록 하거나 최소화시키지 않으면 어떤 논의도 무망 할 것이다. 

대통령이 공영방송구조에서 정치색을 배제하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가능한 문제다.


공영방송제도가 정착된 영국, 독일, 일본 사례를 보면 사장 선출 과정에서 정치권력의 직접 참여를 배제하고 다원주의적 참여 시스템이 제도화돼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공영방송을 대표하는 영국의 BBC, 일본의 NHK, 독일의 ZDF와 ARD 역시 공영방송 사장 선임과 관련해 객관성과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정치색을 배제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정치색을 차단하기 위해 영국의 공영방송 사장 선출 형태는 BBC의 공영방송 이사회(BBC Trust)에 전권을 위임했다. 

독일은 사회 조합주의 또는 이익집단 모델로서 각계각층을 대표하는 다수의 대표들이 참여해 선출하는 형태이며 일본은 이사회가 추천한 인사를 야권이 동의하는 형태로 나뉜다.


이런 나라들은 이 정도의 제도로도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어느 정도 유지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한국은 그렇지 못하다. 

한국의 현재 방식도 정치색을 구조적으로 차단한다고 해서 방송통신위원회를 중간에 두고 있지만 형식논리뿐이며 실제로는 청와대에 가서 ‘조인트’ 얻어맞는 식으로 내부 낙하산을 파견한다. 

정치문화와 역사가 다른 나라와 정치 후진국 행태를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나라를 동일선상에 두고 비슷한 제도를 도입해봐야 무용지물이다.


둘째, 공영방송 이사 인원을 현재의 9명 혹은 11명에서 최소한 33명으로 늘린다.


독일 공영방송 사장 선임권은 독립적 감독기관인 방송위원회(한국의 방송통신위원회)가 갖는다. 

방송위원회는 정당대표, 사회단체, 종교단체 등 다양한 이해집단의 대표 60명으로 재조정, 정치적 중립을 

강조하며 사장 선임을 독립적으로 하도록 지위를 부여했다.

33인은 상징적인 숫자지만 최소한의 수를 의미한다. 

인원수가 많아지면 그만큼 통제하기 어렵고 특정 정파에 편향된 인사를 선출하기가 곤란해진다. 

한국처럼 부정청탁과 선후배 연줄이 강력한 청탁 사회는 이사 인원수를 늘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 인원은 정당에서 여야 추천 2인 외에 나머지는 언론단체, 시민단체, 학계, 지역 대표 등으로 범위를 

넓히는 것이 좋다.


셋째, 이사 선임 과정의 투명성과 자격조건을 강화해야 한다.


현재 공영방송 이사 자격조건은 형식적이거나 사문화된 행태이며 누가 어떤 과정을 거쳐 선임되는지 

공적인 검증시스템이 전무하다. 

각 정당에서 마치 대변인을 내려보내듯이 밀실에서 뽑아 일방적으로 내려보내는 식이다. 

정치적 인물, 편파성이 강한 인사를 걸러줄 최소한의 장치조차 없다.

BBC의 경우 이사나 경영진에 대해서 △사리사욕 금지 △청렴성 △객관성 △책임성 △공개성 △정직성 

△통솔력 등 7개의 소위 ‘놀란 원칙(Nolan Principles)’을 적용한다.


일본 NHK는 이사나 사장의 자격조건으로 공무원의 자격제한 조건을 적용하는데 머물지 않고 방송사라는 특수성을 감안하여 방송기기(TV) 제조업이나 판매업체의 임원 역임 자이거나 10% 이상 지분 소유자, 방송사·케이블 TV·신문사·방송 지주회사·통신사 등과 같은 업체의 법인 임원을 역임한 때로부터 1년이 경과하지 않은 경우 회장이 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이사 선임 전권을 가진 만큼 절차의 투명성과 자격조건 심의 규정을 보다 세분화, 강화할 필요가 있다.


넷째, 사장 선임 시 과반 수제와 특별다수제는 어느 쪽도 일정 부분, 장점과 문제점을 가진 것은 현실이지만 최소한의 이사수가 33인이 되면 과반수가 더 적절할 것으로 본다.


독일과 일본의 경우 공영방송 사장 선출 시에 3분의 2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특별다수제를 채택하고 있다. 반면 영국과 프랑스는 공영방송 사장 선임에 있어 과반수 동의만 얻으면 된다. 

이사 선임 절차가 투명해지고 자격조건이 강화된다는 전제하에 과반 수제가 더 타당하다는 주장이다.


마지막으로 공영방송 이사들에 대한 과다한 예우를 없애 명예직으로 만든다.


현재는 공영방송 이사에 선임되면 몇 차례 회의를 하지도 않고 혹은 대우에 걸맞은 역할을 하지 않으면서도 수천만 원의 보수가 주어지기 때문에 공영방송의 중요성과 독립성 등에 대한 의지도 전문성도 없는 사람들이 모여들기 위해 혈안이다. 

또한 인원 수가 늘어나면 재정부담도 문제가 될 수 있는 만큼 명예직으로 전환하여 예우를 대폭 줄이는 것이다. 사회에 봉사하는 '명예로운 직'으로 ‘거금 대신 명예’로 보상하게 되면 적어도 정치꾼들은 원천 배제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은 정치를 혐오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정치 과잉의 나라이기 때문에 한국에 맞는 제도를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법과 제도만이 인간의 일탈과 무책임함을 통제할 수 있다. 



김창룡 교수.jpg


김창룡 교수 

인제대학교 신문방송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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