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저널리즘의 위기와 기회
1912년 타이타닉호가 침몰했을 때 생존자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 베인즈 뉴스 픽쳐스(Bain’s News Picture)를 통해 공개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사진이 가능했던 이유는 당시 생존자 중 아마추어 사진가가 있었고, 그를 통해 미학적으로는 조악하지만 현장의 생생함이 전해지는 사진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약 100년이 지난 현재 영상 저널리즘은 그때와는 훨씬 더 개방적이고 대중적인 영역이 되어 가고 있다. 오늘날 현장을 이야기할 때 흔히들 영상 저널리즘은 위기라고 이야기한다. 시민들보다 적은 특권을 누리는 현장, 정보를 직접 컨트롤하는 정부와 기업들, 이미지의 쓰임은 압도적으로 늘어났지만 이를 엄격하게 연출하려는 권력, 거짓 이미지가 쉽게 만들어지는 기술적 배경. 분명 이 모두에 둘러싸인 영상 저널리즘은 방송뉴스에서 가장 변화와 부침을 겪고 있는 영역 중에 하나일 것이다.
실정은 외국도 다르지 않다. 미국에선 퓰리처상을 탄 베테랑 사진 기자 존 화이트(John white) 조차 해고되기도 하고, 영국 BBC 취재 기자 출신의 한 교수는 BBC에서도 영상의 품질보다는 영상의 있고 없음에만 관심을 갖는다고 우리와 다르지 않은 분위기를 설명했다. 또 영국 주류 방송사인 ITV의 베테랑 카메라 기자 역시 아이폰이 우리의 적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더 넓은 시장을 가진 영미권의 주류 미디어의 어려움이 이 정도이니 우리가 겪고 있고 또 겪게 될 어려움은 더욱 혹독할지도 모른다.
이 시점에서 답답한 점은 현재의 상황을 위기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이를 극복할 대안의 모색과 새로운 시도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지난 5년 회사가 시대착오적으로 부서를 없애고 영상의 새로운 포맷과 플랫폼에 투자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회사 밖에서 그 대안을 찾는 과정에서 발견한 흥미로운 지점은 영국과 미국 등 서구 미디어 기업들은 20여 년 전부터 우리가 현재 겪고 있는 문제점에 대한 고민과 대안을 모색해 왔다는 점이다. 이들이 추구하는 새로운 시도의 방향은 단순한 스타일과 포맷의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인 두 가지 이슈를 건드리고 있다.
첫 번째는 보도하는 자의 자격의 문제인 주체(subject)의 문제로, 쉽게 말해‘ 너희가 누구인데 우리를 관찰하고 우리를 규정할 권리를 갖는가’의 이슈이다. 새로운 촬영기기 등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서구의 매체들은 주체의 자격 문제를 끊임없이
건드려왔다. 현재 일반적인 뉴스의 포맷은 정보의 효율적 가공과 전달에는 용이하지만, 보도하는 자와 보도되는 자 사이에 불평등한 권력관계가 내재되어 있다는 근본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한 대안적 시도들은 새로운 기술과 장비가 등장할 때마다 계속되어 왔다. 보다 객관적인 제작자의 위치를 찾기 위해 시도된 다이렉트 시네마(Direct Cinema)에서부터 객관의 한계를 인정하고 제작자의 개입을 인정한 시네마 베리테(Cinema Verite)를 넘어 진실을 체험적 주관적 범위로 좁힌 1인칭 다큐멘터리의 등장 모두 제작자와 취재원의 비대칭적인 권력관계에 대한 대안적 양식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오늘날 주류 미디어에 대항할 수 있는 표현의 창구를 가진 시청자들의 반응 역시 일방적 커뮤니케이션(Top-down)을 거부하고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을 지향하는 흐름 안에 있음을 카스텔스(Castells) 등 뉴미디어 연구자들 역시 강조하고 있다.
서구 미디어 혁신의 두 번째 방점은 새롭게 등장한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의 플랫폼과 어울리는 새로운 스토리텔링(Storytelling)에 대한 이슈이다. ‘매체가 그 시대의 지배적인 커뮤니케이션 양식을 규정한다’라는 플루셔(Flusser)의 말처럼 새롭게 등장한 플랫폼은 커뮤니케이션의 패러다임 전체를 바꾸고 있고 영상은 그 핵심적 재료가 되고 있다. 문제는 영상 촬영이 대중화된 시대에 현장의 생생함은 타이타닉의 사례에서처럼 점점 더 시민의 카메라에 의존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런 흐름은 새로운 제작방식을 요구한다. 리들리 스콧(Ridley Scott) 감독이 전 세계 시청자들이 제공한 이미지로 만든 콜라 주식 다큐멘터리‘ 하루 동안의 삶(Life in a day)’은 이미 십여 년에 시도되었고, 영국 가디언(Guardian)이나 미국 뉴욕 타임스(Newyork Times) 등 혁신을 통해 생존을 모색하는 다양한 영상 에세이들과 프로젝트는 지금도 끊임없이 영상중심의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이 두 가지 교점 위에서 미디어 기업들이 그리는 공통된 전략은 결국 시청자와 어떻게 더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수평적 눈높이에서 올바른 포맷과 기술로 대응할 수 있는가로 요약할 수 있다. 2016년 로이터 연구소(Reuters Institute)가 BBC 등 30여 명의 주류 미디어 경영진과 매체 전략 담당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서 담당자들은 생존을 위한 핵심어로 시청자와의 관계 맺음 (Audience Engagement)을 꼽았고 그 지점에 상당 부분 공을 들이고 있다고 응답했다. 이런 흐름은 영상이 생산되는 방식의 중요한 변화를 요구한다. 지난 방송산업은 부침은 있을지언정 호황의 시기를 지나왔고 그래서 영상기자들은 혁신의 필요성을 크게 체감할 기회가 없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현장의 특권적 지위와 포디즘(Fordism)식의 효율적 표준화를 기준
으로 했던 영상 저널리즘은 피할 수 없는 커다란 변곡점에 와있다. 이는 비단 우리 직종만의 문제가 아니며 이 시점만의 문제도 아니다. 지금 4차 산업혁명의 파고는 모든 직종에게 각 직종이 고등 지식 산업에 편입할 수 있는가 아니면 단순노동으로 표준화될 것인가를 묻고 있다. 이 질문에 응답하면 우리는 살아남을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지금보다 혹독한 부침을 겪을 것이다. 분명 답은 기존의 낡은 방식으로 도달할 수 없는 언덕 너머의 혁신 위에 있다.
김우철 / M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