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로부터 온 목소리"
-팔레스타인의 기자들도, 전쟁만을 담고 싶지는 않습니다
▲ 2024 힌츠페터국제보도상 대상 수상자 모하메드 사와프 (글)
전쟁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나의 도시. 이웃들이 타겟이 되고, 도망칠 곳조차 없이 그 다음 목표는 나와 내 가족들이 될 지도 모르는 그 곳을 카메라에 담아내야만 하는 것은, 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 영상기자들과 언론인들이 직면한 가장 큰 고통이자 고뇌입니다. 스스로가 다음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저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사건을 보도해야만 한다는 언론인으로서의 사명감의 뒤편에는, 사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또한 도사리고 있습니다. 더욱 고통스러운 것은 우리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입니다. 잔인한 현실에서 눈을 돌리고 싶더라도, 이미 도망칠 수도, 스스로를 구원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 2024 힌츠페터국제보도상 대상 수상자 살라 알 하우
전쟁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전쟁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 언론인들은, 특히 이번 전쟁의 한가운데에서, 바깥의 그 어떤 기자들도 절대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을 그런 현실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전쟁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전쟁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외국 기자들은 더 이상 가자에 접근할 수 없고, 이제 이곳의 현실을 전 세계에 전할 수 있는 사람들은 오직 현지의 기자들뿐입니다. 카메라는 이들의 또 다른 눈이 되어, 그들의 발걸음을 따라 엉망이 된 거리, 폭격으로 폐허가 된 건물들을 비추며 초토화된 주위 사방을 담습니다. 그들과 그들의 가족들에겐, 내딛는 발걸음마다 위험이 도사리고,살아있는 매 순간이 또 다른 위협입니다.
이들이 마주하고 있는 복잡한 현실은, 그저 자신과, 자신 가족의 안위와 진실을 전하는 것 둘 중 무엇을 우선시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뇌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기자와 군사 목표가 점점 더 같은 뜻으로 여겨지고 있는 전장에서, 그들은 그들의 카메라로 인해 다음 번 표적이 될지도 모른다는 그 끝없는 두려움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자에서, 동료들이 한명씩 쓰러져나가고 있습니다. 마치 기자들이 정말 이스라엘군의 표적이라도 되어버린 것처럼 말입니다. 그럼에도, 그 모든 위협을 무릅쓰고 우리는 계속 이 일을 해야 합니다. 침묵을 택하느니 뻔히 보이는 죽음을 택하는 쪽이 낫고, 우리의 죽음이 기왕이면 아무도 모르는 채 이뤄지기 보다는, 차라리 아주 명백하게, 모두에게 보여 질 수 있길 원하기 때문입니다.
제 동료들, 아흐메드, 마르완, 살라, 이브라힘 등과 저는 오랫동안 한 팀으로 같이 일해 왔고, 우리 민족이 가진 서사와 아픔을 공유하며 또 함께 이어져있습니다. 우리는 단순한 기자가 아니라, 그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는 동료 시민이자 같은 인간으로서 가장 어두운 밤 그들의 곁에 섰습니다. 2023년 10월 전쟁이 시작된 이후, 우리는 매일같이 끝없는 폭격과 전차 행렬 사이에서 생사의 문턱을 오가고 있습니다.
▲ 2024 힌츠페터국제보도상 대상 수상자 이브라힘 알 오틀라
매일 취재 기획을 세우고 나서지만, 맞닥뜨리는 전장은 그동안 겪어왔던 그 어떤 전쟁과도 같지 않습니다. 보다 힘들고 끔찍하며, 그 끝이 대체 어딘지, 총성이 멎으리란 희망을 가져도 될 지조차 알 수 없게 만듭니다. 잊혀서는 안 될 아픔들을 세상에 알리고자 냉혹한 현실과 사투를 벌일 때면 순간순간이 영원처럼 길고 무겁게 느껴집니다.
그런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사람들의 이야기이고, 그래서 우리는 거리로, 또 폭격 장소로 나아가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손에 쥔 카메라가 기록을 시작하는 순간, 무엇이든 또 하나의 이야기가 됩니다. 하지만 먼저 자기 자신과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것도 깨닫게 됩니다. 폭탄이 또 우리를 겁먹게 할지라도, 우리의 일을 멈출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의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 만약 우리가 기록하지 않는다면, 우리 그리고 가자 지구 주민 모두가 시선 밖에서 조용히 죽어갈 것입니다. 아무도 모르게 죽기보단 모두의 눈앞에서 죽는 것이, 적어도 더 낫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이야기, 특히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의 인간적인 순간들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주인공들이 그저 피해자로만 비춰지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영상은 구급대원, 아이, 의사, 그리고 그 외 각자의 삶 속 작은 영웅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단순히 뉴스를 만들어 내보내는데 그치지 않고, 숫자로만 다뤄지는 사람들도 전부 하나의 인간이었음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우리의 영상 속 모든 이들은 각자 희망과 꿈, 그리고 삶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전쟁이 있기 전, 그들 모두는 세상에 전해줄 이야기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우리 기자들도 결코 안전하지는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폭격으로 인해 우리 모두의 집이 파괴되었고, 모두들 집과 가족과 동료들을 잃었습니다. 전쟁의 첫 주에, 벌써 우리 회사 사무실은 폭격으로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170명이 넘는 가자(Gaza)기자들의 죽음, 피해자의 눈으로 참상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자 책임
▲ 2024 힌츠페터국제보도상 대상 수상자 故마르완 알 사와프
나의 동료, 마르완은 이스라엘 미사일에 맞아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어지는 폭격을 촬영하기 위해 준비하던 도중이었습니다. 사망하기 불과 이 주 전에 부모와 형제, 어린 조카를 포함한 47명의 가족을 잃은 상태였지만,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 역시 심각한 부상을 입고 가족을 잃었으며, 이브라힘은 집을 잃고 남쪽으로 피신해야만 했습니다. 살라의 집도 공격당해 여러 가족들이 목숨을 잃어야만 했습니다.
이 모든 이별과 아픔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매일 다시 현장에 돌아와 끊임없이 벌어지는 사건들을 멈추지 않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저 계속 이 일을 해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 일은 이제 우리에게 있어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하나의 사명입니다. 세상은 반드시 피해자들을 두 눈으로 봐야만 하고, 그렇게 만들기 까지가 바로 우리의 책임입니다. 지금까지 170명이 넘는 팔레스타인 기자들이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목숨을 잃었으며, 한 해 동안 가장 많은 언론인들이 죽었습니다.
가자에서 팔레스타인 기자로 일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취재 후 다시 안전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때와, 스스로의 삶의 터전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취재하는 것은 한참 다릅니다. 여기선 전쟁이 일상의 일부이며, 가장 큰 공포는 자신이 다음 희생자가 될지 모른다는 사실로부터 옵니다. 가자에는 도망칠 곳이 없고, 공간은 협소하며, 모든 출구는 봉쇄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카메라를 들고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직업이 아니라, 사명이기 때문에. 다시 한 번 힌츠페터국제보도상을 수상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이 상을 고인이 된 동료 마르완과, 그밖에 이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모든 기자들에게 헌정합니다. 이 일은 우리에게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의무이며, 우리는 늘 인류애를 가져야만 합니다. 우리도 전쟁만을 다루고 싶진 않습니다. 인간은 전쟁을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며, 기자는 갈등을 부추기기 위한 존재가 아님을 잘 압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에서, 우리는 전쟁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이야기의 일부로서, 우리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하기 위해 계속해서 나아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