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 밖 그들의 열정이 빛나기에
“60여명의 스태프들이 차려놓은 밥상에서 그저 맛있게 먹기만 했습니다.”
스타 배우이면서 자신을 낮추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정적으로 일한 스텝진을 치켜세운 영화배우 황정민의 청룡영화제 수상소감은 모 기업이 광고에도 사용할 만큼 큰 화제가 되었다. 덕분에 대중들은 소수의 주·조연 배우를 지원하는 수많은 스탭들의 땀과 열정이 좋은 영화의 원천임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방송뉴스에선 화면에 등장하는 화려한 스튜디오의 앵커와 현장을 누비는 취재기자만을 주인공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솔직히 필자도 뉴스 현장에서 기자들과 호흡을 같이하는 취재지원장교로 근무할 기회가 없었다면 화면 밖에서 활약하는 영상취재기자의 존재를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신문과 달리 시청각 자료로 정보를 전달하는 방송뉴스는 영상이 필수적이다. 짧게는 1분, 길게는 2분가량 되는 한 꼭지의 방송뉴스에서 앵커와 취재기자가 화면에 등장하는 시간은 불과 10여초. 그 시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은 영상이 내용을 대신한다. 그만큼 영상취재기자가 얼마나 가치 있는 영상을 촬영하는지가 그 날 뉴스의 성패에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다. 나아가 그들이 렌즈를 통해 바라보는 현실을 시청자가 그대로 보고 듣고 재구성해 이해한다고 생각하면 그 중요성은 더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보다 생생한 영상을 전하기 위해 취재현장을 동분서주하는 영상취재기자, 화면 밖 보이지 않는 그들의 열정과 프로정신은 좋은 뉴스를 만드는 소중한 밑거름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필자가 취재현장에서 만난 영상취재기자들은 흡사 전투에 임하는 군인과도 같았다. 온몸이 얼어붙을 것만 같던 영하 15도 혹한의 날씨에도 특전사 요원과 함께 얼음을 깨고 들어가고,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비 오듯 쏟아지는 아프리카 남수단의 불볕더위에서도 15kg에 육박하는 카메라를 들고 흙먼지를 뒤집어쓰며 달려가며, 10미터가 넘는 전망대 사다리를 수차례 올라가는 그들의 눈빛에는 오로지 좋은 영상을 촬영하겠다는 갈망뿐이었다. 목표를 향해 돌격하는 용사처럼 한 치의 망설임과 주저함도 없었다.
사실 처음에는 오해도 있었다. 왜 짧은 영상을 위해 많은 시간을 낭비할까? 별다른 차이도 없는데 왜 다시 찍을까? 현장에서 취재를 지원하는 동안 수십 초가량의 짧은 영상을 위해 수많은 시간을 기다리고 더 좋은 장면을 얻기 위해 반복촬영을 하거나하면 솔직히 짜증이 났다. 육군의 활동상을 홍보해주기 위해 열심히 카메라를 돌리며 땀 흘리고 있는 기자에게“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그만하고 돌아갑시다.”라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을 뻔 한 적도 있었다. 그들의 열정이 그저 단순한 집착으로만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최전방 GOP 야간경계근무 취재지원을 마치고 피곤해하는 필자에게“우리는 발로 뛰고 눈을 통해 세상을 보여준다. 피곤하지만 장병들의 멋진 모습을 담아서 기분이 좋다”라고 말하는 모 매체 기자의 말이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취재기자를 현장에서 돕는 장교로서 이들 못지않은 프로정신을 가져야겠다는 사명감이 들었다. 물론 지금은 누구보다 취재현장의 특징과 촬영내용을 잘 알고 있는 책임자로서 더 좋은 영상을 촬영하기 위해 영상취재기자들과 함께 어깨를 맞대고 고민하고 있다.
이제는 영상취재기자들과 함께 땀 흘리며 호흡했던 현장 장면이 뉴스에 나오면 왠지 모를 뿌듯함과 자부심을 느낀다. 짧은 뉴스지만 그들의 땀과 열정이 고스란히 녹아있다는 걸 알기에 가끔은 기사의 내용보다는 영상에 더 집중할 때도 있다. 또 취재기자만 보고 뉴스를 평가하는 지인에겐“보이지 않는 곳에서 저 영상을 촬영하기 위해 뛰어다닌 영상취재기자들이 있다”고 괜히 흥분하기도 한다. 그만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일하는 영상취재기자들의 존재를 알리고 응원하고 싶다.
기자들도 배우처럼‘이달의 기자상’등 각 분야에서 다양한 상을 받고 명성을 떨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만일 필자가 방송기자로 취재부문에서 상을 수상하게 된다면, 배우 황정민의 소감을 빌려“영상취재기자분들이 만들어주신 좋은 영상 덕분에...전 그저 기사를 작성하기만 하면 됐습니다.”라고 그들의 노고를 한껏 치켜세워 줄 것이다. 오늘도 전국의 취재현장에서 시청자들에게 가치 있는 뉴스를 전하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뛰고 있을 영상취재기자들을 응원하며 그들의 더 멋진 활약을 기대한다.
육군 취재지원장교 소령(진) 김태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