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중립성과 역사의 교훈
최근 우리나라의 신문기사와 방송을 보면 언론의 중립성에 대해 강한 의구심이 들 정도로 정치에 매몰되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언론이 마치 전쟁 중인 나라가 심리전을 치루는 듯이 한 쪽으로 경도되어 있다는 것이 과연 필자 혼자만의 생각일까?
언론의 중립성과 심리전의 역사에 대해 간단히 정리해 보자. 과거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국, 영국, 일본, 독일 같은 제국의 전쟁에서 흑백논리, 이분법적 구도, 이데올로기에 호소하는 단어로 신문을 도배하다시피 한 심리전 논조가 여론을 지배했다. 가까운 나라인 일본을 예로 들어 보자. 지금은 ‘진보’ 언론으로 대표되는 <아사히신문>은 193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전쟁을 반대하는 논조가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1937년 중‧일전쟁 발발 이후 일본 사회가 서서히 군국주의자들의 논리에 동조해 가면서 국민을 전쟁광으로 내모는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물론 군국주의자들의 압력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언론사 내부의 ‘자기검열’ 즉 군부와 정부가 강제로 시키지 않아도 사회분위기에 편승해서 군국주의자들로 대표되는 ‘힘센 사람’에게 ‘아첨’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사회의 목탁’으로서의 역할을 방기한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이러한 언론의 전쟁선동으로 인해 일본사회에서 ‘평화’라는 단어는 철저히 금기시 되었다.
1945년 8월 일본이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함으로써 전쟁이 끝나자 <아사히신문>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평화’를 소리 높이 외치기 시작했다. 당시 일본이 패전직후라는 점은 충분히 이해하더라도 군국일본이 몰락하여 갑자기 평화가 찾아왔다고 해서 언론의 논조가 하루아침에 180도로 바뀌고 정권에 따라 오락가락하는 태도가 과연 언론의 역할인가 하는 것이다. <아사히신문>이 전쟁 후 ‘진보’ 언론으로 거듭난 뒤에 보수 언론으로부터 받은 비판은 전쟁에 찬성한 언론이 진보의 탈을 쓰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는 권력에 아첨하고 시류에 편승한 결과 돌아온 ‘부메랑’인 셈이다.
역사를 뛰어넘어 최근 한국의 언론을 보면 객관적인 팩트의 보도보다는 주관적이고 편향된 보도에 치우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2012년 대선 때 마치 선거운동원 처럼 특정후보를 치켜세우던 다수 언론과 평론가들이 지금은 당선가능성이 높은 특정후보를 옹호하는 행태가 돋보인다. 이러한 현실이다 보니 언론에 불만을 가진 특정집단이 ‘가짜뉴스’를 만들어 유포하는 사태까지 이르게 된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가짜뉴스’란 한마디로 유언비어와 같은 종류다. 유언비어가 난무하는 사회의 조건은 대체로 두 가지로 보면 된다. 언론보도를 믿을 수 없을 때와 정부가 정확한 정보를 국민에게 숨길 때 흔히 나타난다.
특히 ‘가짜뉴스’는 전쟁말기나 사회가 매우 불안한 나라에서 두드러진다. 아마 역사상 ‘가짜뉴스’가 가장 난무한 때는 일본의 패전 기색이 농후한 시기인 1944년 중반부터 1945년 8월 사이, 일본군 최고사령부였던 대본영(大本營)은 전시상황을 국민에게 알리는 ‘대본영 발표’를 했다. 당시 대본영은 팩트에 근거하지 않은 ‘가짜뉴스’를 내보내고, 이에 부화뇌동해서 라디오방송과 신문이 군사정권의 ‘나팔수’ 역할을 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고 보는 것이 지배적인 시각이다. 그 결과 일본인 다수가 ‘대본영 발표’나 이를 베껴 쓴 언론기사보다는 오히려 민간 자생적인 ‘가짜뉴스’와 적국인 미국이 공중에서 뿌린 심리전 전단을 더 신뢰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된 것이다. 특히 국가붕괴가 임박한 전쟁말기에는 이러한 경향이 더욱 두드러졌다. 이에 놀란 군부와 정부가 ‘가짜뉴스’에 대응하여 당시 일본인 사이에서 감시와 공포 대상으로 악명이 높았던 헌병과 특별고등경찰을 동원해서 대규모 사찰을 벌일 정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는 사실이 당시 일본 정부 문서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전해지고 있다.
물론 시대가 변하고 미디어 환경이 달라지긴 했지만 언론에 대한 일반인의 태도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최근 탄핵과 대선 정국에서 우리 언론의 정치적 편향성은 자칫 잘못하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경계해야 한다. 정치적으로 편향된 언론을 불신한 나머지 ‘가짜뉴스’가 사회에 만연할수록 우리나라와 같이 남북이 첨예하게 대립되어 있고 전쟁가능성이 상존하는 나라가 국가적 위기에 봉착할 때 그 부작용이 극명하게 드러나게 된다는 점을 우리는 역사 속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