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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민주주의 한국은 돌아오지 않았다



전 세계 내전을 연구해 온 정치학자 바바라 F. 월터는 트럼프 행정부 아래의 미국이 ‘제2의 내전’ 위험에 근접했다고 경고해 왔다. 그녀는 과거 남북전쟁과 같은 전면전이 불가피하다고 보진 않지만, 트럼프가 ‘민족 간 대결’을 부추겨 내전적 갈등을 자극한다고 우려한다. 월 터의 진단은 내전 발생 위험이 급격히 높아지는 두 가지 조건이 미국에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는 데 근거한다.


첫째, 미국이 민주주의 에서 독재로 또는 독재에서 민주주의로 이행 하는 과정에 나타나는 불안정한 정치 체제인 아노크러시(anocracy) 상태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그녀는 미국의 정치 체제 지수(polity index)가 지속적으로 하락해 오늘날 아노크러시 권역에 진입했음을 지적한다. 이 불안정 한 체제에서는 공식 제도가 분쟁을 평화롭게 중재하기에 너무 약하고, 대규모 폭력은 억제 가능하나 국지적 충돌을 촉발하기 쉽다. 둘째, 정치적 정체성 집단 간 갈등을 조장 하는 정치 세력의 증가가 내전 위험을 증폭 시킨다. CIA 역시 내전 발생의 주요 요인 중 하나로 국가 내부의 정체성 갈등을 꼽는다. 월터는 이미 미국 사회 곳곳에 분열적 정치 집단이 형성되어 있으며, 이들이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 보수‧극우 매체를 통해 극단적 서사를 확산하고 인적‧재정적 자원을 축적한 다고 경고한다. 월터는 미국이 내전을 겪을 것이라고 단정 하지 않지만, 현 체제가 지속된다면 아노크러시 상태가 심화되면서 의회, 행정, 사법, 언론 등 민주주의 제도가 형식적 균형만 되풀이하며 제 역할을 상실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기존 제도가 개혁을 주도하기보다 관습에 안주 할 때, 정치 세력들은 그 틈을 타 더욱 기승을 부린다. 


아노크러시에 대한 위기는 미국만의 문제 가 아니다. 한국도 그 위기의 파장 안에 여전히 놓여 있다. 12·3 내란 사태 이후 6개월간 우리는 독재 복귀와 국권 후퇴의 공포 속에 살아왔다. 이는 아노크러시 상태에 대한 본능적 반응이었다. 6·3 대선으로 시민은 분열 과 불신의 위기를 투표로 종식시키고 새 정권을 수립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민주주의 한국이 돌아왔다”고 선언하며 특별검사제 도입 등 제도 개혁에 나섰지만, 선언만으로 아노크러시를 극복했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민주주의 회복은 ‘개혁 없는 청산’도, ‘청산 없는 개혁’도 아닌, 청산과 개혁의 동시적 이행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 과정은 기존 세력의 긴장과 갈등을 다시 자극한다. 정치적 정체성의 갈등과 분열을 통해 세력화하려는 기회주의 정치 세력들은 여전히 그 틈에서 기 회를 엿보고 있다. 더욱이 한국의 의회, 행정, 사법. 언론에 대한 신뢰와 견제 및 균형 장치 가 신뢰도와 안정성이 취약한 상태인 지금, 청산과 개혁 과정은 매 순간 일촉즉발의 위기를 내포할 수밖에 없다. 


즉, 지금은 민주주의도 아노크라시도 아닌 “민주주의 위기(Demo crisis)”의 지속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민주주의 위기 체제에서 언론 보도 역시 이러한 불안정한 체제에 대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 예를 들면, 권력 비판과 관련한 보도가 그러해야 한다. 권력 비판은 언론의 가장 중요한 책무이지만, 그 정당성은 단순한 사실 전달이 아니라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맥락에 의해 판가름난다. 권위 주의 체제이든 민주주의 체제이든 상관없이, 언론은 권력이 행사되는 모든 순간을 감시하고 비판해야 한다. 그러나 ‘비판했다’는 사실만으로 그것이 정당해지는 것은 아니다. 비판의 정당성은 언제나 그 비판이 이뤄진 역사적, 사회적 맥락 위에서 결정된다. 자유와 정의라는 보편적 가치는 중요하지만, 그 가치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현되어야 할지는 각 사회의 과거 경험과 현재 조건에 따라 달라 진다. 좌고우면하는 것과 맥락적 성찰은 전혀 다르다. 


따라서 언론은 단지 팩트만 나열하는 전통적 객관주의(Objectivism)를 넘어서 맥락적 객관성(Contextual Objectivity)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탈맥락화된 객관주의가 사건의 파편을 제시하고 책무의 완수를 선언 하는 반면, 맥락적 객관성은 그 사실들의 파편이 놓인 현재의 정치, 사회, 문화적 토대의 민주적 복원을 책무의 최종 단계에서 확인하고자 한다. 맥락적 객관성은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출현해야 할 사건이 무엇이며, 그 사건이 야기할 현재의 위기 구조와의 관련성이 우선 고려된다. 또한 오늘날 정치 사회 전반에서 미디어 시민 참여가 확장되고 있다 는 현실을 반영해, 언론은 보도 후에도 시민을 공론장의 주체로 남겨 두는 메커니즘을 갖춰야 한다. 특히 권력 비판과 견제 과정에 시민의 직접적이고 적극적인 참여가 광범위 하게 확장되고 있는 미디어 정치 사회 속에 언론의 맥락적 객관성은 객관주의를 대체해야 할 당연한 규범이 되어 갈 것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지금 대한민국은 여전히 아노크러시의 위기 체제에 갇혀 있다. “민주주의가 돌아왔다”는 선언만으로 민주주의가 귀환하지 않듯이 언론 책무는 역할을 수행한다는 행위 자체로 실행되었다고 할 수 없다.



채영길 한국외국어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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