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돕고 함께 나누는 푸른학교 편
‘아름다운 사람 아름다운 뉴스 - 서로 돕고 함께 나누는 푸른학교’편은 EBS에서 방송된 다큐멘터리이다. 이 글을 쓴 구재모씨는 제5회 인권영화제에서 공식 상영된 다큐멘터리 ‘평화의 시대’를 제작한 감독이다. 현재 한국영상방송아카데미 비디오저널리스트 특강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는 그는 편견없는 시선으로 푸른학교에 맡겨진 아이들을 담담하게 그려냈다 글 | 구재모(Korea Art Center 영상팀 PD) E-mail: rockspider@netsgo.com
다큐멘터리는 무엇인가? 그리고 다큐멘터리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다큐’라는 것에 대해서 처음 공부를 시작할 때 밑줄 그으며 읽었던 책들에서 ‘다큐는 이런 것이다’ 라고 내려진 정의들은 많았지만, 난 지금도 여전히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 때마다 위의 질문들을 다시 한 번 던져보고 곰곰이 생각을 해 보곤 한다. 거창한 사명의식은 아니지만 내 카메라 앞에 선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들의 인생에 대한 나의 어설픈 이해로 인해, 그들에게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저지를 수 있는 실수들을 하지 않으려고 난 항상 고민한다. 어쩌면 그것은 말할 필요도 없는 당연한 것이지만, 촬영 현장에서 겪게 되는 카메라를 든 사람과 카메라 앞에 선 사람들과의 관계는 항상 가장 큰 고민이면서 어려운 점이다. 더군다나 매우 짧은 시간 안에, 그것도 카메라에 대해서 그다지 좋은 감정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을 대할 때면 더더욱 그렇다.
갑자기 잡힌 촬영 일정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술 한잔을 하고 밤 12시가 넘어서 집으로 향하고 있는데, 학교 선배로부터 내일, 아니 오늘 촬영을 좀 해 줄 수 있겠냐는 전화가 왔다. 특별한 일이 없었던 터라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을 했고, 소개를 받았다는 담당CP로부터 전화가 왔다. 다시 작가로부터 간단히 설명 받고 자세한 내용의 구성안을 메일로 받았다. 프로그램은 EBS에서 매일 방송되는 ‘아름다운 사람 아름다운 뉴스’라는 15분물 다큐멘터리였다. 우리 사회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다른 사람을 위해 작은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이번에는 용인에 있는 작은 학교를 소개한다고 한다. 구성안을 받아 들고서 다시 작가와 전화통화를 해 보니, 이건 촬영만 하는 것이 아니라 편집, 성우 더빙과 믹싱까지 모두 책임져야하는 ‘연출’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었다. 프로그램은 6mm 디지털로 촬영하는, 우리가 요즘 흔히 말하는 VJ형식의 프로그램이지만, 다른 프로그램의 꼭지물이 아닌, 한 아이템이 독립프로그램이 되는 형식의 프로그램이다. 요즘은 PD들도 6mm 촬영을 많이 하는 편이다. 그렇다면 VJ라는 이름이 정확한 것일까, 아니면 PD라는 이름이 정확한 것일까? ‘비디오저널리스트’라는 직업이 아직 확실하게 자리매김을 못했기에 여전히 조금은 헛갈리는 부분이다. 어쨌든, 이 프로그램에서는 ‘VJ 구재모’가 아닌 ‘연출 구재모’라는 이름으로 나가는 방송이니 그렇게 정리를 해 두자. 남은 시간은 불과 12시간 정도? 일을 그냥 덜컥 맡아 버린것에 대한 후회가 약간 들었다. 이미 시간은 새벽 두시를 넘었고 그렇다고 다른 사람에게 부탁 할 수도 없고.... 정신을 차리고서 구성안과 약간의 자료들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자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날은 밝아 오고, 다시 한번 구성안 훑어보면서 촬영 순서를 정리하고, PD-150을 어깨에 둘러메고 용인으로 향했다.
촬영을 준비하면서
촬영 약속은 오후 두시로 잡혀있다고 했다. 초행길이고 또 내가 현장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지 못한 터라 조금 일찍 도착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경부고속도로로 향했다. 학교의 정확한 위치를 알기 위해 대표분께 전화를 드렸는데, 왠지 목소리가 그리 탐탁지 않은 듯한 느낌이다. 약속시간보다 두 시간이나 일찍 도착했다. 학교 위치를 확인하고서 간단히 점심을 먹고, 학교 주변 동네 스케치 촬영을 몇 컷 하고서 다시 구성안 검토. 푸른학교라는 이름의 그곳은 정식 학교는 아니고, 실직자 가정의 자녀들을 방과후에 데려다가 무료로 공부를 가르치고 식사를 해결해 주는 일종의 공부방이라고 한다. 약속시간 보다 한 시간 정도 일찍 학교에 도착해서 통화했던 주경희 대표를 찾았다. 마침 주부 컴퓨터 교실 수업중이라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만날 수 있었다. 프로그램에 대해 이런 저런 소개를 하고 푸른학교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리며, 수업 중에는 인터뷰가 어려울 것 같아 미리 인터뷰를 부탁했는데, 뜻밖에 약간의 짜증까지 내는 것이 아닌가? 물론 많은 상황에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의외의 반응에 조금 당황했다. 선생님들도 모두 자원봉사자들이고 학교 운영도 후원금으로 유지된다는 곳인데, 이런 곳이 방송에 나간다면 학교 입장에서도 그리 나쁘지 않을 듯 한데 도리어 귀찮아하는 반응에 잠시 생각을 정리해 봐야만 했다.
담당 구성작가가 자료수집을 위한 전화 인터뷰를 하면서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을 충분히 했었겠지만, 이럴 때는 다시 한번 내가 직접 프로그램에 관한 설명을 ‘공손히’ 드리는 것이 필요하다. 어떠한 의도로 만들어지는 것이며, 어떤 내용들을 담고자 한다는 내용의 설명을 푸른학교 대표께 충분히 드렸다. 그제야 잠시나마 짜증을 냈던 이유를 설명하는 대표의 얘기를 듣고 난 충분히 수긍할 수 있었다. 내가 그곳 푸른학교로 취재를 가기 얼마 전 타 공중파 방송사 1곳과 지역 케이블 방송사에서 그곳 푸른학교를 취재해 갔었다고 한다. 그런데 푸른학교 대표님은 그렇게 나간 방송이 마음에 들지 않으셨던 것이었다. 촬영을 하면서 이렇게 해달라 저렇게 해달라 요구를 하다 보니 카메라 앞에 선 사람들은 피곤에 지치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그 방송에서 그렸던 그곳 아이들과 선생님들의 모습이 사실과는 조금 다르게 나갔던 모양이었다.
푸른학교에는 매일 평균 40여명의 아이들이 온다. 대부분 부모님들이 IMF때 실직을 한 가정의 아이들로서, 경제적인 형편이 좋지 않은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또래의 다른 아이들이 피아노 학원, 태권도 학원에 갈 때, 갈 곳도 없이 또 함께 놀 친구도 없이 그냥 골목길을 배회하는 아이들을 보고서 그냥 놔둘 수가 없어서 만든 것이 푸른학교이다. 가난은 단지 불편한 것일 뿐이며 시대적인 문제이지 그 아이들 개개인의 잘못으로 인해서 생긴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그 가난이라는 것조차도 서로 돕고 함께 나누면 극복할 수 있는 문제라는 것을 아이들에게 심어주고, 지역에 있는 사람들이 십시일반으로 세운 푸른학교를 통해서 새로운 작은 공동체의 의미를 만들어 가고 싶은 것이 주경희 대표의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전에 나간 방송에서는 내가 직접 보지 않아서 함부로 말할 수는 없지만 주경희 대표의 말에 따르면, 그 아이들의 ‘가난한 모습’에 포커스가 많이 맞추어져 있었던 모양이었다. 촬영 시간에 정확히 도착을 해서 정해진 구성안 대로의 촬영만을 했다면 아마 나 또한 그러한 실수를 범했을 지도 모른다. 단지 몇 시간 동안 습득한 십 수 개의 정보들만 가지고서, 그것도 15분이라는 시간 내에 취재 대상의 무언가를 말한다는 것에 다시 한번 조심스러워짐을 느끼게 되었다.
물론 어떠한 주어진 조건이라도 깔끔하게 만들어 내는 것이 기획/구성력, 연출력이고 그것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이 지녀야 할 당연한 요소들이지만, 간혹 프로그램을 위한 제작이 되는 경우는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들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의 경우는 더욱 더 그럴 것이고. 그렇게 얘기를 나누면서 제작 방향을 다시 검토하고 가다듬을 수 있었다.
촬영은 시작되고
언제나 그렇지만 아이들을 촬영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카메라를 향해 소리 지르고 달려들고... 아이들과 한바탕 전쟁을 치러야만 한다. 그런데 이곳 푸른학교 아이들은 유난히 더 심했다. 이미 카메라를 몇 번 본 탓인지, 어떤 아이는 PD-150 카메라의 LCD 모니터를 열어달라는 황당한 부탁까지 하는 것이 아닌가?
오후 4시부터 시작되는 수업을 위해서 3시에 푸른학교에서 봉고차가 출발한다. 아이들 데리러 가는 모습을 촬영하기 위해 함께 차에 올랐다. 한 두 명씩 아이들이 차에 타고 갑자기 만난 카메라에 어리둥절해 하더니만 이내 장난은 시작되었다. 짓궂은 아이들의 장난들이지만 일부러 무섭게 보이거나 야단을 쳐서 얌전히 ‘촬영하기 좋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저녁 한 끼를 집이 아닌 푸른학교에서 해결해야만 하는, 가난한 환경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아이들이지만 아이들의 눈동자는 너무도 맑고 밝았기 때문에, 그냥 있는 그대로 촬영하기로 하고 마이크 녹음 레벨만 신경쓰며 아이들 모습을 담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얼굴은 가난으로 인한 어두운 그림자들로만 가득찬 얼굴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또래의 아이들보다도 더 맑고 밝은 모습들이었다. 저녁 6시부터는 저녁시간이다. 근처에 있는 용인대학교 구내식당에서 아이들을 위한 식사를 매일 준비해 주는 덕분에 아이들은 저녁을 굶지 않을 수 있었다. 촬영을 다니다 보면 어려운 상황 중에 하나가 바로 밥 먹는 모습을 촬영하는 것이다. 식사하는 모습을 촬영하려하니 푸른학교 대표와 선생님들이 나도 함께 밥을 먹으라고 한사코 권유를 하시는 것이 아닌가? 촬영을 해야 했기에 어렵게 거절을 하고(사실 나도 배는 무지 고팠지만) 아이들 얼굴을 담기 시작했다. 한 입 가득히 비빔밥을 먹는 모습들이 너무도 귀엽고 예뻤다. 햄버거와 피자에 입이 길들여진 요즘의 일부 아이들에게서 찾아보기 힘든 김치와 밥을 맛있게 먹는 모습은 이곳의 아이들에게서는 전혀 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했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하는 측은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밥을 다 먹고서 스스로 치우는 모습까지, 그리고 하늘이 어두워서야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의 뒷모습까지 카메라에 담았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 봉고차 안에 있던 한 아이가 내게 “아저씨, 찍어 줘서 고마워요!”라는 말을 했다. 뭐가 고맙다는 건지, 하지만 그 아이의 말이 왠지 정감있게 들리는 건 왜일까? 편집에서 마지막 부분에 그 아이의 말을 넣었다. 보는 사람들이 그 아이의 말에 작은 미소를 짓게 만들고 싶었고 그대로 효과를 발휘했다. 무엇이 고맙다는 것인지는 뭐 여러 가지로 답을 내릴 수 있겠지만, 굳이 해석하고 싶지는 않았다. 넉넉지 못한 환경이지만, 웃음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는 느낌을 받았기에 그냥 느낌 그대로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렇게 밝은 아이들과 그렇게 밝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푸른학교’ 선생님들께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다. 촬영에 협조해 줘서가 아니라, 우리의 미래를 덜 어둡게 만들려고 하는 그 분들의 노력에 대해서 진심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