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
오는 3월 7, 8일 이틀간에 걸쳐 EBS에서 방송 예정인 자연다큐멘터리 ‘개미’는 일반 자연다큐와 달리 아주 작은 피사체를 다루고 있어 일반 렌즈로는 촬영이 불가능 하는 등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촬영작업이 까다롭고 매우 힘들게 제작한 만큼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다. 개미를 촬영하기 위해 문동현 PD를 비롯한 EBS다큐팀은 이에 따른 특수장비 제작과 다양한 촬영방법을 사용했다고 하는데 그 제작후기를 들어본다.
글 | 문동현 EBS TV1국 다큐팀 PD E-mail:dhmoon44@hotmail.com
작년 초, ‘개미’를 자연다큐멘터리로 제작한다고 했을 때 주위에서는 다양한 반응들이 나왔다. “야, 그거 재미있겠다!”라는 반응부터, “근데, 촬영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고 하거나 “그걸로 자연다큐가 될까?”하는 회의적 반응까지…. 어쨌튼 우리는 주위의 기대와 우려를 무시(?)하고 촬영을 시작했다. 늘 그렇듯 자연다큐에 100퍼센트 확실한 아이템이란 없다. 아무리 쉬워 보이는 아이템이라도 막상 현장에 나가서 부딪쳐보면 ‘아 그게 아니었구나’며 자신의 무지와 무능력에 절망하거나 반대로 ‘한 컷이라도 건지면 다행이겠다’하고 나갔는데 의외의 수확을 건지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자연이란 그런 것인가 보다. 하면 할수록 낯설고, 어렵고, 스스로를 끝없는 열등감과 자괴감에 빠뜨리는 존재. 그래서 끝내 포기하고 돌아설라 치면 어느새 살짝 돌아와 저만치 앞에서 얄밉게 손짓하고 있는 그런 존재…. 내가 ‘자연다큐멘터리 제작자’라는 자신에 대한 허울을 먼저 벗어 던져야 가슴을 열고 만날 수 있는 존재(말로는 알고 있는데, 진정 가슴으로 체득할 수 있는 날은 언제쯤 일지…). 개미를 촬영하기 시작하면서 우리가 맞닥뜨린 첫 번째 문제는 역시 ‘SIZE’였다. 피사체가 너무 작아 일반 렌즈로는 그야말로 풀샷(F.S)으로 촬영할 수밖에 없었다. 클로즈업 필터나 접사렌즈를 써야했는데, 문제는 개미가 끊임없이 움직이는 부지런한 동물이라는 데 있었다. 포커스 맞추기도 힘들 정도로 아주 작은 데다가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뽈뽈대며 움직이는(그것도 굉장히 빠른 속도로!) 그런 피사체라니! 생태를 담는 것은 그 다음 문제였다. 뭔가 특수한 렌즈가 필요했다.
작은 개미촬영용 장비 준비
촬영팀끼리 머리를 맞대고 고민과 상의를 거듭한 끝에 우리는 청계천으로 달려갔다. 청계천?. 이상한 생각을 할지도 모르지만, 청계천에는 우리가 잘 아는 특수공구상가가 있다. 거기서 우리는 개미를 촬영할 수 있는 특수렌즈를 직접 깎아 만들 작정이었던 것이다. 즉, 스틸카메라용 렌즈를 우리가 쓰고 있는 베타캠 카메라에 맞게 깎아 붙이려는 야심찬 계획!! 두 세 번 더 손을 보기는 했지만 결과는 만족할만 했다. 50mm 스틸렌즈와 기존 줌렌즈, 벨로우즈, 그리고 클로즈업 컨버터(close-up converter). 이 세 가지가 우리의 ‘청계천 작업’을 통해 만들어진 결과물이었고, 향후 개미촬영의 핵심 장비가 되었다
.이에 따라 개미들의 그룹샷(G.S)부터 얼굴 클로즈업까지 다양한 사이즈를 촬영할 수 있는 기본렌즈 문제는 해결된 것이다. 물론 사이즈를 바꿀 때마다 렌즈도 바꿔 끼워야 하는 불편함은 있었지만 그 정도는 행복하게(?)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런 행복도 잠시, 우리는 바로 두 번째 벽에 부딪치게 됐다. 바로 개미가 주로 사는 곳이었다.
형광등을 조명으로 사용.
일본왕개미나 곰개미, 불개미류는 대개 햇볕이 잘 드는 탁 트인 곳에 살기 때문에 광량(光量)에는 별 문제가 없다. 그러나 그보다 작은 종들, 예컨데 고동털개미나 꼬리치레개미, 주름개미 등은 나무줄기 등에 살고, 갈색발왕개미나 침개미류는 아예 침엽수림이나 낙엽 밑에서만 산다. 이 녀석들을 촬영할 때는 늘 그늘이 져 있기 때문에 사이즈가 문제가 아니라 기본적인 광량조차 제공되지 않는 것이다. 부족한 광량으로 인해 기껏 찍어봐야 심도가 얕아 포커스가 뭉개지기 일쑤였다. 조명해결이 급선무였다. 우리가 야외촬영 시에 일반적으로 쓰는 쥬피터(Jupiter Light)나 휴대용 썬건(Sun Gun)은 열이 발생하기 때문에, 그걸 개미들한테 갖다 대는 것은 바로 뜨거운 열로 고문하는 행위, 그 자체였다. 열이 안 나면서도 안정적인 광량을 확보할 수 있는 조명기구가 필요했다. 열이 안나는 조명기구?, 쿨라이트(cool light)?…. 그래 쿨라이트!!
다행히도 영상팀에 쿨라이트(Cool Light ; Tungsten)가 있었다. 휴대하기도 좋게 사이즈도 작았다. 가을 이후엔 한 대 더 받아 두 대나 쓸 수 있었다. 덕분에 우리 조명감독(베스트 조명의 김모씨)은 참 편했다. 조명기구라고 해봐야 겨우 한 손에 들 수 있는 라디오만 한 쿨라이트가 전부였으니. 아, 그 대신 쿨라이트는 전원공급을 따로 해야하는 불편이 따랐다. 휴대용 발전기를 들고 다녔는데, 발전기에서 나는 소음이 굉장했다. 최소한 50미터 이상 떨어트려야 하는데 그게 현장에서는 뜻대로 안된다. 그래서 우리가 촬영한 테이프의 현장음(S.O.T;Sound of track)은 거의 다 발전기 소음이다. 결국 오디오를 편집해야 하는 나만 죽을 일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일단 촬영은 하고 봐야 되니까.자연다큐 촬영은 늘 그렇듯이 산 넘어 또 산이다. 하나 해결되면 또 다음 문제가 기다리고 있다. 그게 자연다큐의 매력(늘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키는!)이라고들 하지만, 참 괴로운 매력이다. 쿨라이트 하나로 조명이 해결됐다고 좋아했더니, 또 하나의 문제가 발생했다. 쿨라이트는 작은 크기만큼이나 조명범위가 매우 좁다. 불과 수 센티미터…. 개미 그룹샷 밖에 안된다. 게다가 빛이 텅스텐이라는 단점도 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텅스텐은 자연광과 다르다. 약간 더 누렇게 나온다. 클로즈업이야 그렇다 쳐도 풀샷용 조명이 필요했다. 그늘진 곳에서의 풀샷용 조명은 열이 발생하지 않는 것이어야 했다.
우리 카메라맨 부사수는 기발한 아이디어가 많고, 사람을 웃기는 재주가 뛰어난 사람이었다. 아쉽게도 지금은 다른 곳으로 옮겼지만, 그 친구 덕분에 촬영기간 내내 모두들 즐겁게 일할 수 있었다. 풀샷용 조명 문제 역시 그 친구가 해결을 했다. 아이디어를 내고 직접 제작도 했다. 답은 형광등이었다. 형광등은 열도 안나고 색온도 역시 자연광(Day Light)과 비슷했다. 형광등을 다섯 개씩 이어 붙여서 큰 조명판을 만들었다. 그걸 두 개 만들어 양쪽에서 비추면 완벽한 조명기구가 되는 것이다. 고정으로 세팅해 놓거나 급할 땐 하나씩 떼서 들고 나갈 수도 있다. 조금 무겁기는 하지만, 그런대로 쓸만하다.
이와 같이 기본 조명에 덧붙여 필요할 때마다 이노비젼 라이트(Innovision Light)를 활용함으로써 조명 문제는 완전히 해결되었다.
개미촬영용 크레인 제작
내친 김에 우리는 개미 촬영용 크레인을 만들기로 했다. 일반 크레인은 너무 커서 개미같이 작은 피사체엔 접근하기조차 힘들기 때문이다. 이른바 미니크레인을 제작하는 것!. 이 정도는 몸으로 때우는 데 익숙해져 있는 우리 EBS 자연다큐팀에겐 식은 죽 먹기였다. 굳이 청계천까지 갈 필요도 없었다. 철물점이면 충분했다. 지면 관계상 상세한 설계도를 첨부할 순 없지만, 대충 설명한다면 다음과 같다. 우선 몸체(Body)는 전부 앵글(철물점에 가면 쌓여있다)로 만든다. 기본축은 5∼6자 정도. 각 연결부위는 베어링 너트를 사용하고 약간씩 기름칠을 해주면 좋다. 가장 어려운 부위는 카메라를 얹는 부분인데, 카메라 발바닥을 이용하면 된다.
약간의 용접이 필요하고, 카메라 손잡이에 발바닥을 붙이는 게 중요하다. 기본 삼각대는 고장났거나 못쓰는 것을 이용하면 되고(카메라의 무게가 꽤 있는 관계로 가능한 튼튼해야 한다) 삼각대 헤드는 두 개가 필요하다. 삼각대와 몸체를 잇는 부분하고 카메라가 실리는 부분까지 헤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카메라의 무게와 평형을 잡아주는 도구로는 역기의 추를 사용했다. 이것도 두 개 정도면 충분하다(재료는 체육관련 용품점 등에 가면 많이 있다). 이것으로 OK. 무게가 많이 나가기 때문에 이동할 때 휴대하려면 분해와 조립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로인해 너트를 풀 수 있는 공구를 늘 갖고 다녀야 한다. 크레인 제작에 대한 내용이 조금 장황하고 설명이 미흡한 부분이 있지만, 카메라를 접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대충 이해했으리라 믿는다.
팬 콤마 촬영기법 사용
개미라는 특수한 아이템인 만큼 특수한 장비도 많이 썼고, 특수한 촬영기법도 다 동원했다. 이 중에서 팬-콤마(Pan-comma) 촬영기법을 사용했다. 일반적인 콤마촬영(미속촬영)은 이제 어느 정도 일반화됐기 때문에, 팬(Pan)이나 달리(Dolly)를 하면서 콤마촬영이 되는 기법을 쓰기도 했다. 처음 시도라 완전 만족스럽진 않았지만 나름대로 신선한 영상이 만들어졌다. 열흘 이상이 걸리는 불개미탑 건설과정이나 나무기둥에 집을 붙여 올리는 고동털개미의 집짓기 장면 등은 콤마촬영만이 담아낼 수 있는 탁월한 영상이다.
다큐제작에 따른 서로간의 정보교환이 중요
작년에도 VIDEO PLUS에 글을 게재한 적이 있었는데 그 기사를 보고 모 방송사에서 장비 사용에 대해 문의 전화를 해온 일이 있었다. Finger cam(흔히 ‘꼬마카메라’라고 부름)의 구입처와 사용법 등에 대해서였다. 그래서 우리 영상팀에 연결해 줬던 기억이 있다. 이번에는 나름대로 상세하게 썼다고 생각하지만 궁금한 게 있다면 직접 찾아오는 것도 대환영이다. 국내 자연다큐의 발전을 위해서 장비 뿐 아니라 다양한 정보교환이 서로간에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개미는 일반 곤충들보다도 촬영이 훨씬 어렵다. 눈으로 보이는 부분도 힘들지만, 녀석들이 땅속으로 들어가 버리면 정말 암담하다. 정말 중요한 속내는 그 속에 다 있는데…. 내시경 카메라도 사용해 보고 개미의 굴을 교묘하게 절단하는 등 여러 방법을 동원해 찍어내기는 했지만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외국의 선진 자연다큐 제작물 중 개미의 굴속까지 따라 들어가 찍은 장면을 본적이 있다. 그들은 어떻게 찍었을까? 어떤 장비를 사용했을까?. 기회가 주어지면 한번 가서 보고 싶기도 한데, 마음만 급할 뿐이다. 우리는 오늘 당장 찍어내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이러한 여건 내에서도 우리는 최선을 다 기울였다.
자연다큐멘터리 2부작 <개미>는 3월 7일, 8일 이틀간에 걸쳐 방송 됐다. 이 프로그램은 개미의 신비한 생태, 인간사회와 너무나 비슷한 그들의 사회생활 등이 담겨져 있는 재미있는 작품이다. 아울러 영상적인 측면에서 더 많은 가치를 두고 싶은 작품이기도 하다. 다양한 방법과 새로운 촬영기법들이 동원되는 등 촬영작업이 까다롭고 매우 힘들게 제작한 만큼 심혈을 기울였다. 촬영이 끝나고 마무리 편집 작업을 하고 있는 요즘, 새삼스레 촬영 때의 일들이 떠오른다. 촬영은 제쳐두고 렌즈 깎는다고 청계천의 어디로 정신없이 뛰어 다니던 모습, 철공소 직원들처럼 하루종일 장비만 만들다가 “우리 카메라맨 맞어?”하며 웃던 모습들, 쇳덩어리 같은 장비 두서너 개씩 짊어 매고도 씩씩거리며 올라가는 우리 촬영팀을 바라보던 등산객들의 경이로운 눈빛들, 개미를 찍고 있는 우리를 빙 둘러싸고 신기해하며 구경하던 사람들(모니터는 아예 그사람들 차지였다) 등…. 그런 모습들 속에서 자연다큐 제작자로서 자괴감과 보람을 동시에 느끼기도 했다. 자연다큐 제작 현장에서 발생하는 의외의 상황들에 대해 제작팀이 직접 몸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장비나 기술적인 부분이라도 지원이 좀더 이루어졌으면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해마다 아쉬움은 남지만 그래도 자연다큐멘터리 작품들은 해마다 제작되고 있다. 모두가 힘들게 고생해 가면서 만들어내는 작품들이다. 애정을 갖고 따뜻한 눈으로 지켜봐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서로 격려도 해가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