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 도전 촬영기>
“성공할 확률 50%, 실패할 확률도 50%”
2005년 박스그랜드슬램 북극원정대는 캐나다의 최북단 이누이트 마을 레졸루트에 베이스캠프를 설치하고 출발에 앞서 마지막 장비 점검과 식량 그리고 여러 가지 기타 품목들을 점검하며 출발을 기다렸다. 약간의 초조함 속에 나는 이번 탐험에서 일어날 수 있는 3가지 일들을 예측해봤다. 성공할 수 있다는 것과 하나는 실패 할 수 도 있다는 것, 그리고 예측하지 못한 상황으로 돌아오지 못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경험하게 될 북극 탐험에 대하여 흥미롭고도 험난한 대장정을 위해 장비 담당을 맡은 나는 탐험 장비를 점검하며 특히 나의 주요역할인 영상촬영에 필요한 장비를 테스트하고 점검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지난 히말라야 등반에서 몇 번의 촬영을 담당했었으나 극지에서의 촬영은 이번이 처음이라 북극의 환경, 날씨, 기온의 변화 등 여러 가지 상황 요소에 대하여 확신하지 못했고 북극은 결코 촬영의 기회를 쉽게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 했다.
2005년 3월 9일 우리는 육지의 끝을 떠나 북극권의 장엄하고도 차가운 북극해 속으로의 거친 탐험은 시작되었다. 우리는 얼음 바위 밭을 이룬 난빙대 한쪽 옆을 가로지르면서 북극점이 있는 좌표를 향했다. 지금부터 가야하고 안 된다는 것을 진실로 느끼기 전까지 모든 것을 바쳐봐야 하는 우리 탐험대는 황량한 눈과 얼음 청빙대의 거대한 원형 속에 경미하고도 미세하게 움직이는 네 마리의 개미였다.
북극점을 향해 나아가는 동안 탐험을 제외한 모든 외부의 문제들은 정지되는 것이었다. 우리는 자연의 요소들 즉 추위, 난빙대, 리드(얼음판과 얼음판 사이에 벌어진 바닷물 강), 눈, 바람, 태양, 기타 자연현상에 만족해야 하고 이 모든 세계는 공통된 무엇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우리가 그들 자연 속에 속해 있다는 것에서 편안함을 느꼈다. 이 모두를 24시간 지지 않는 태양 아래에서 모든 자연의 모습과 우리를 카메라에 담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카메라를 한 번 작동시키기 위해 나는 썰매에서 카메라박스를 꺼내고, 벗기 싫은 장갑을 벗고, 품속에 간직한 배터리를 장착하며, 보온커버 지퍼를 열어 카메라를 작동시키는 등 정말 복잡한 절차와 노력이 필요했다.
북극점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갈 때마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탐험 되지 않은 곳을 밟을 때 느끼는 그러한 미묘한 감정을 느끼며 각 난빙들의 모퉁이는 짜릿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비밀스러운 풍경을 간직하고 있었다. 이것은 내가 어린 시절 이른 아침 눈 내린 동네 큰 길을 처음으로 발자국을 새기며 일련의 흔적을 남기는 설레는 그런 흥분이었고. 나는 이런 흥분 속에 카메라를 돌려 자연의 짜릿한 감정과 비밀스러운 풍경을 담았다. 하지만 카메라는 평균기온 -40도의 추위에 배터리는 단2분도 버터주지 못했으며 액정 역시 느려져 뷰파인더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감각에 의존하며 찍어야 했다.
나는 이번 탐험에 있어 나의 모든 생활을 깨어있는 의식의 시간과 북극의 자연과 순간적인 상황들을 즐기기 위해 사용하기 보다는 그 상황들을 기록하고 보존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 해야 했다. 또한 북극은 탐험가로서의 용기와 기술, 그리고 힘을 시험하려는 것보다. 그 사람의 도덕적 수준정도를 시험하려는 것도 있는 만큼 나는 탐험 대원들의 감정과 갈등, 그리고 심정을 담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극지라는 탐험의 특성상 행동은 차갑고 단편적이며 감정이 없어 휴먼적인 감정과 갈등을 담기에 어려움이 따랐다.
북극은 처음 떠나올 때의 예상보다 차가웠고 거칠었으며 처절했다. 이 북극의 환경은 대원들을 더욱더 어려움에 직면케 했고 대원들은 각자 고난에 익숙한 사람이 지니고 있는 긴 고통의 인내심으로 탐험의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나는 이 처절한 상황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나에게 부과된 고난은 의문 없이 받아 들여야 한다고 생각했고, 또한 상황이 처절하며 처절할수록 카메라에 담겨지는 기록은 더욱 소중하고 흥미로운 기록이 되었기에 나는 간혹 위험을 감소하면서 카메라를 돌렸고 복잡한 절차 탓에 장갑을 벗고 카메라를 잡은 손은 곧 추위에 노출되어 불과 1분도 채 되지 않아 손가락의 감각을 읽어 버리곤 했다. 나는 손가락의 감각을 되살리기 위해서 따뜻하게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해 보았으나 굳은 혈관으로 혈액이 순환됨으로써 생기는 통증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럽고 자극적인 고통을 경험해야 했다.
북극의 석양은 끊임없이 무질서하게 솟아있는 난빙을 엷은 장alt빛으로 물들게 했다. 나는 그것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기에 카메라를 들고 난빙 속을 돌아다니며 카메라에 담았다. 하지만 이런 행동은 리드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하지 못했고 리드에 빠지는 수난을 여러 번 경험해야 했다. 탐험은 계속 되었고 대원들은 북위 87도를 넘어서면서 감상적인 기분은 사라졌다. 추위와 배고픔 그리고 탐험으로 인한 피로는 친숙하여 졌으며 이러한 현상은 카메라를 작동시키는데 더 이상 방해하지 못했다. 북극의 햇살은 노출이 과다한 사진과 같이 색깔이 없었고 따뜻하지 않았으며 어떠한 밝은 전망도 제시하지 않았다. 탐험이 끝나갈 무렵 무거워지는 나의 발은 체력의 저하를 알리고 있었고 보다 많은 상황을 카메라에 담지 못한 것에 대한 조급함과 중압감이 다가 오고 있었다. 매섭게 불어오는 바람은 대원들의 고개를 숙이게 했고 북극점을 며칠 앞둔 우리는 블리자드와 화이트아웃과 싸우며 전진하는 현상을 카메라에 찍기 위해 상당한 양의 체중이 감소되었음에도 나는 마지막 남은 체력과 협상하며 앞에서 찍고 뒤따라가며 찍는 반복된 촬영을 수행 했다.
나는 의지가 약해질 대로 약해져 냉엄하고도 차가운 청빙에 기댄 채 바람을 피하며 햇살을 쬐며 쪼그려 않은 채 영양식을 마시며 이 처절한 환경 속에 나는 살아있었고 오로지 내가 지금까지 찍은 필름들은 단순히 우리가 견딘 시련의 추억들이 되길 바랬다.
탐험 53일째 우리는 그토록 많은 고난과 어려움을 겪으며 미세하고도 경미하게 움직여 목적한 지점에 도착 했고 결코 한명도 못서게 할 거대한 극장 무대의 한가운데 북극점은 차갑고도 장엄한 난빙의 한 중심에 서 있었다. 이곳은 하얀 사막과 같이 내 앞에 여기저기 흩어진 빙하는 나의 상상력이 새롭게 펼쳐지는 듯 했다.
나는 탐험이 끝나자 BC로 돌아와 제일먼저 목욕을 했다. 처음으로 따뜻한 욕조 안에서 57일 동안 햇빛을 보지 못한 내 지친 몸뚱이를 녹이며 따뜻한 물과 여유를 한껏 누렸다. 살갗은 모두 말라 얇은 조각으로 벗겨졌고 양다리는 우스울 정도로 야위어 있었으며 갈빗대는 양 가슴에서 눈에 띄게 튀어나와 있었다. 얼굴은 마치 주의 깊게 치료 받고 있는 환자와 같았다.
박스그랜드슬램 북극원정대
산악인 홍성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