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영상은 남아도 기자가 남지 않는다면
폭우와 폭염이 번갈아 덮친 여름, 제 카메라는 현장에서 늘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려 했습니다. 문제는 그 '한 걸음'이 때로는 내 발밑을 지우기도 했다는 사실입니다.
■ 폭우 현장-"좋은 그림"보다 먼저였던 발밑
지난달 갑작스러운 폭우로 경기 가평의 한 캠핑장에 인명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실종자 수색이 한창인 가운데 저는 보다 극적인 그림을 찾아 무심결에 더 깊이 걸어 들어갔습니다. 연이은 폭우로 지반이 물러져 도로의 여기저기가 갈라지고 찢긴 곳이었습니다.
"당장 나오세요!"
소방대원의 고함소리가 중장비들의 소음을 뚫고 제 귀를 스쳐갔습니다.
그제야 제가 선 자리가 얼마나 위험했는지 깨달았습니다. 좋은 영상을 찍겠다는 욕심이 안전에 대한 판단을 흐리게 했습니다. 제 뒤를 따르던 오디오맨 동료까지 위험에 처하게 했다는 사실도 떠올랐습니다.
저의 오판은 제 문제로만 끝나지 않습니다. 취재는 항상 팀 단위로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저의 선택은 동료의 안전과 직결됩니다. 그날 이후 저는 아무리 좋은 그림이 보이더라도 들어가기 전 의식적으로 위험 요소를 되짚어보고 있습니다.
■ "을지로, 왕십리… 아니, 바다인 것 같습니다“
폭염을 취재하다가 제가 온열질환자가 됐습니다. 오전엔 주물공장, 낮엔 을왕리 해수욕장, 오후엔 여의도 도심 스케치까지, 세 장소를 연달아 취재했던 날이었습니다. 주물공장의 실내 온도는 35도를 웃돌았습니다. 들어서자마자 눈으로 땀이 흘러 들어가 앞을 보기 어려웠습니다. 을왕리의 모래사장은 60를 넘었고 바닷물은 시원하지 않고 미지근했습니다.
뜨거운 햇빛과 축축한 공기에 하루종일 노출되니 어느 순간부터 몸이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데스크가 "지금 어디냐"고 묻자, 제 입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을지로…? 왕십리…? 바다요." '을왕리 해수욕장'을 말하고 싶었는데 말이 어눌해지고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틀을 꼬박 쉬고서야 컨디션이 되돌아왔습니다. 동료들과 함께 ‘온열질환 리포트에 우리도 함께 들어가야 하는 거 아니냐’는 웃기고도 슬픈 자조를 했습니다.
■ '건강하게 돌아오기'가 건강한 보도의 첫걸음
기자가 감수하는 온갖 위험은 종종 ‘사명감’이라는 기치 아래 가려집니다. 그러나 이번 폭우와 폭염 속에 ‘영상기자 스스로 자신의 생명과 인권, 안전을 지킬 수 있어야 타인 또한 존중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는 영상보도 가이드라인에 적혀 있는 기본 원칙을 되새겼습니다. 저와 동료의 안전을 지키지 못한 채 얻은 영상은 결국 이야기를 놓칩니다. 기자의 안전은 윤리적인 취재와 지속 가능한 보도를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KBS 정준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