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여객기 추락사고 취재기>
가족처럼 슬펐다!
캄보디아를 향해 날아가는 비행기 속에서도 나는 실종자 가족들의 걱정과 두려움을 가슴으로 느끼지 못했다. 내게 일어난 일이 아니고, 더군다나 이런 사건사고를 취재해 온 것이 어언 7년 아니던가. 게다가 그 비행기 속에서는 ‘희생자’ 가족이 아니라, ‘실종자’이었다. 실종자들이 생존해 있을 걸 기대한다면 한없이 걱정에만 휩싸여 있을 일도 아니었던 것이다. 이 턱턱 막히도록 후텁지근한 프놈펜의 공기를 들이키며 내 몸이 온통 땀에 젖었을 때에도, 사망 소식 보다는 ‘어떻게 하면 생존자 소식을 누구보다 신속하게 잘 취재하여 송출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리고 날아든 날벼락 같은 소식. ‘유가족’이라는 호칭으로 그들을 서슴없이 부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도래하고 말았다. 도착 다음 날 아침, 전원 사망이라는 절망적인 메시지를 들어야만 했던 가족들. 하루 더 수색을 했더라면 그 하루만이라도 가슴에 희망을 품을 수 있었을 텐데, 그런 청천벽력(靑天霹靂)같은 소식을 너무나 허무하게 들어버리고 말았다.
무거운 분위기 속의 취재, 카메라를 들이대기가 겁이 났다. 같은 호텔에 묵으며 이래저래 유가족들의 눈치를 보게 되었다. 내가 그들의 심정을 어찌 알리요. 상상만으로 그들을 측은(惻隱)해 할 뿐, 내 할 일은 그들을 촬영하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적으로 참 할 짓이 못 되었다. 그래도 그들이 영정사진을 보며 울부짖을 때 나는 뷰파인더 너머로 무심히 그 모습을 촬영하며, 아무 감정 없는 차가운 카메라 속에 영상을 저장해야했다.
그런데, 내 눈과 가슴에서도 무엇인가 울컥 솟구쳐 올랐다. 만(滿) 이틀 만에 자신의 수족(手足)의 영정을 보러 달려가는 유족들의 갑작스런 행동에 미처 촬영할 새도 없어 당황해서 일까? 목이 메어 꺼이꺼이 울어 대는 한 유가족의 모습이 뷰파인더 속에서 살아 나와 내 가슴 역시 미어지게 만든 것인가? “왜 네가 먼저 갔어. 애미는 어쩌라고~” 절규하며 외쳐대는 어머니의 한 맺힌 목소리가 10m는 족히 떨어진 포토라인까지 들려와 내 가슴을 쿵쾅쿵쾅 방망이질 해댔다.
이러면 안 되는데……. 사고로 죽은 1살짜리 아기의 일이 마치 내 아이 일인 양 느껴져도, 저 사람이 어루만지는 영정 사진 속 여자가 내 여동생 같고, 내 친구 같은 사람이 죽었어도 나는 냉철한 눈과 가슴으로 취재에 임해야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함께 슬퍼할 여유가 없는데, 유가족들의 눈물과 오열이 내 눈에 눈물을 내 손가락에는 떨림을 가져왔다.
그들의 슬픔의 무게가 느껴져서일까? 나는 뷰파인더에서 눈을 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카메라는 그들을 향하고 있었지만, 나는 무심한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없이 빠져드는 슬픈 감정 속에서 헤어나려고 애쓰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치 내 가족의 일인 것처럼 슬펐다. 지금이라도 살아 돌아올 것만 같은 소중한 가족, 사랑했던 자식을 그렇게 허무하게, 마음의 준비도 없이 저 세상으로 떠나보내야 한다는 것이 그 얼마나 비참하고, 찢어지는 고통이 아니란 말인가.
비운(悲運)의 땅 캄보디아. 그들은 이곳에 즐거운 마음으로 놀러와 어제까지도 들려주었던 그 생생한 목소리까지 모두 묻어둔 채, 차가운 시신이 되어 돌아가야만 했다.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상황이라 출장 내내 힘들고, 느려 터진 인터넷 송출에 애를 먹기도 했지만, 유가족들을 생각하면 한없는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이 자리를 빌어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들이 한시라도 빨리 깊은 슬픔에서 헤어나기를 바란다.
윤원식 / YTN 보도국 영상취재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