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여객기 참사 취재 현장에서
사건사고를 급박하게 취재하다보면 여러 가지 고민할 상황에 빠질 때가 많습니다. 특히 이번 캄보디아 여객기 추락사고 취재현장에서는 극단적인 여러 상황만큼이나 많은 고민을 준 출장이었습니다. 보름이 훨씬 지난 지금 극단적인 여러 상황에서 한 그 고민과 선택 그리고 결정의 순간들 ... 어떤 선택이 올바르고 또 어떤 결정이 합리적이었을까요? 여러 고민들 중에서 현장으로 향하는 헬기와 추락 항공기 잔해가 발견된 밀림 속에서 한 고민들을 적었습니다.
#1. “헬기를 사수하라”
500달러를 주고 올라탄 시신운송헬기. 이미 경쟁사는 구조대헬기를 타고 현장에 갔다 왔다. 그런데 같이 갔던 사진기자가 현장에 내리자마자 돌아올 수밖에 없었단다. 더구나 상공에서도 자신은 현장이 보이질 않았단다. 시신을 싣기 위해 좌석을 떼어내고 있었는데 갑자기 군인들이 들이 닥친다. 한국인이 4명 있었는데 모두 내리란다. 일단 외부에 있던 대승이(기재담당)에게 전화를 걸어 빨리 6mm 장비를 가져와 달라고 한다. 기장이 오더니 받았던 돈을 몰래 돌려준다. 헬기는 시동이 걸린 상태. ‘에이 버티자’ (조금만 버티면 이륙하겠지.)
내리라며 총으로 밀어내는 군인에게 웃으며 “릴렉스, 저스트 원 미니트”를 외친다. 그때 입구의 상사가 인상을 쓰며 뭐라 지시를 한다. 갑자기 흥분한 군인이 바닥에 있던 ENG카메라와 위성인터넷 장비를 뺏어들고 앞문으로 내린다. “호찬아(취재기자)! 6mm 잘 챙기고 무조건 버텨”(ENG없이 현장에 간다는 것이 내내 찜찜하다. 일단 시간을 끌어보자)
하는 수 없이 내려 보니 내 장비는 이미 저만치 군인들이 들고 가고 있다. 아 이대로 끝인가? 어라 근데 웬일? 헬기 이륙 스텝이 나를 잡아끈다. 빈손으로 현장에 있던 나를 보고 뭔가 착각이 있었나 보다. 그의 안내를 받아 헬기 뒷문(탈출 헤치)으로 가서 자연스럽게 올랐다. 남아있던 한국 취재진과 실랑이를 벌이던 군인들이 나를 쳐다본다. 당당하게 웃으며 말했다. “유어 캡틴 ... 퍼미트.” (에이 될 대로 되라. 어떻게든 되겠지.)
이내 헬기는 바로 이륙했고, 밀림상공에서 구석에 있던 상사와 눈이 맞았다. 나를 째려보며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손가락으로 머리 위를 살짝 찌른 후 웃어줬다.
밀림을 지나던 헬기는 암반으로 이뤄진 보꼬산 정상부근에 착륙준비를 한다. “나 먼저 간다.” (그대로 있다가 상사한테 잡혀서 아무것도 못하고 다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르잖아) 6mm장비를 챙긴 후 헬기가 착륙하기 전에 뒷문으로 뛰어내렸다. 헬기 앞에서 내리는 군인들을 조금 스케치하다가 저만치 앞에서 밀림으로 들어가는 군인을 따라 무조건 뛰었다. 와이어리스 마이크를 취재기자에게 준다. “기자는 지금 어두운 밀림 속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취재기자는 우리가 들어가는 모습 등을 찬찬히 채널 1에 담는다. (특보나 속보를 위해서다. 우리는 캄보디아로 향하는 비행기에서부터 이런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대략의 시나리오를 짰다.) 물구덩이와 밀림을 뛰기 시작한지 10여분 드디어 현장이 눈앞에 들어오고
내 앞에는 아무 기자도 없다.
#2. “1보를 전하라”
갈갈이 찢겨진 비행기잔해. 그리고 곳곳에 흩어진 유품들. 비행기 밖과 속에서 뒤엉킨 희생자들. 말 그대로 참상이고 아수라장이다. 담담하게 현장을 카메라에 담는다. 취재기자의 목소리도 계속해서 들려온다. 급하게 챙긴 6mm 장비에는 테이프가 달랑2개. 현실적으로 1보를 보내면 더 이상의 속보는 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현장에서 20분정도 지난 후 취재기자에게 테이프를 뽑아준다.
“호찬아! 최대한 빨리 가서 아무헬기나 타고 어디든 가서 전화해서 위성잡고 송출해. 빨리 가”(현지 방송사도 없고 외신도 없다. 속보를 못하더라도 무조건 1보만 하면 된다.)
10여분 지난 후 APTN로고가 있는 ENG가 들어온다. “호찬아! 빨리 뛰어” 들리는지 모르지만 큰소리로 밀림을 향해 소리 지른다. (지금 나가면 무조건 1보다. 외국에서 일어난 사고현장에서 우리가 1보를 하는 것이다.)
#3. 디카 메모리
희생자들의 시신 수습이 시작된다. 항공기 사고치고는 온전한 모습이라지만 망자들의 시신을 똑바로 쳐다보기엔 머리가 너무 망가져있어 어지럽다. 간간히 희생자들의 여권이나 유품들이 나온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현장에 부서진 디지털 카메라들이 많았는데 어느 것 하나도 메모리를 찾을 수 없었다. 비행기 내부에서 외장하드 가방에서 외장하드를 자신의 주머니에 넣는 군인을 보고서야 궁금증을 털어낼 수 있었다. (나중에 그 외장하드는 먼저 나간 취재기자가 군인들에게 돈을 주고 다시 샀단다.) 그러던 중 우연히 발견한 망가진 똑딱이 디카. 메모리가 있기는 한데 외형이 찌그러져 도저히 빼낼 수가 없다. (아 ... 어떻게든 빼야 하는데 ... ) 갑자기 현지 군인이 쳐다본다. 그냥 발아래에 내버려둔다. 현장에 있던 교민에게 부탁한다. 교민은 1시간이 지난 후 나에게 그 메모리를 가지고 왔다. 현장에 있던 연합뉴스 사진기자의 카메라에 넣으니 사진들이 나타난다. 다정한 모녀의 관광 사진이다. 사고기 앞에서, 사고기 트랩에서, 사고기 안에서 그들은 즐거운 표정이었다. 그리고 그들을 삼켜버린 밀림과 비구름들을 찍은 내용이다. 아마도 그 사진이 마지막 사진이었을 것이다. “어쩌지” (사진의 내용을 촬영할까? 그래도 되나? 유족들이 심하게 반발 하겠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사진에 대한 사용을 허락 받지도 못했고 ... ...)
“천천히 한 장씩 보여 주세요.”(에이 모르겠다. 판단이 서지 않으니 일단 찍고 나중에 유족의 동의를 구해야지. 데스크들이 고민하겠지.)
그렇게 촬영하고 메모리를 의료팀 교민에게 돌려주니 대사관을 통해서 유족들에게 전달하겠단다. (며칠 뒤 캄보디아 현지에서 취재팀이 입수한 유품을 유족들에게 보여준 후 몇 장의 사진을 동의를 구해 방송으로 전했다.)
#4. 대한민국 사람 아닙니까? -시신 이송용 헬기 안에서
밀림에서 수습된 희생자들의 시신은 들것에 들려 헬기 안으로 올려졌다. 헬기 안에는 시신들을 이송하기위해 좌석들이 모두 제거된 상태. 그런데 문제는 군인들이 시신을 헬기 내에 어지럽게 놓다보니 공간이 모자라게 된 것이다. 현지 교민이 비를 피하던 나에게 손짓한다. “이리와 보이소, 다 대한민국 사람 아닙니까?” “네” (그래 한국 사람들이 희생되지 않았다면 여기 올 일도 없었겠지. 조금만 도와줘도 빨리 일이 마무리 되는데... 어차피 다른 경쟁사도 없는데 ... ...) 헬기에 올라 시신을 이리 저리 옮긴다. (조금 전까지 이들의 시신을 취재하지 않았던가? 촬영의 대상이 된 그들에게 이 정도는 예의겠지.) 그리고 다음번에는 연합뉴스의 서명곤 사진기자가 헬기에 올라 시신 정리를 했다. 그런 우리를 보고 현지 교민들은 이곳까지 온 것도 대단한데 이런 도움을 줘 고맙단다. 그리고 한참 후 헬기가 수도 프놈펜으로 이동하 때 현지 의료팀 교민과 함께 헬기에 오를 수 있었다.
벌써 보름이 지났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 캄보디아 여객기 참사는 이제 먼 이야기가 된 것 같다. 나 역시도 한국에 돌아온 후 이런 저런 현장을 다니다 보니 그때의 기억은 저 멀리 흘러 지나는 듯하다. 하지만 그때의 상황과 고민들, 그리고 순간의 결정들은 언제나 현장에서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
권혁용 / MBC 보도국 영상취재2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