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 기름 유출 사태 취재기 Ⅰ>
국내 최대 원유 유출사고 그 10일간의 기록!
12월 7일 오전 7시 50분 취재기자 선배로부터 걸려온 한 통의 전화! 충남 태안군 만리포 북서방 5마일 해상에서 항해 중이던 홍콩선적 14만6천t급 유조선이 삼성중공업 소속 해상크레인을 적재한 1만1천800t급 부선과 충돌해 유조선 왼쪽 오일탱크 4개에 구멍이 나 1만2천547㎘원유가 바다로 유출되고 있다는 다급한 목소리의 사건 소식이었다. 카메라 장비를 챙겨 일단 태안으로 향했다.
이미 바다는 풍랑주의보가 발효된 상태! 사고 현장을 가기위해 배를 타는 것은 불가능 하였고 헬기도 현 상황에선 뜰 수 없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래서 일단 정확한 상황과 사고 경위를 파악하기 위해 태안 해경으로 향했다. 해경 도착 후 유조선(허베이 스피리트호)에 대한 각종 정보와 현재 상황 등을 브리핑을 통해 알 수 있었고 상황이 매우 심각함(국내 최대 원유유출)을 파악 할 수 있었다.
방송은 영상이 생명! 무조건 사건현장의 그림을 시청자들에게 제공해야 했다. 하지만 우리가 사고 첫 날 사건 현장취재를 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항공촬영 뿐 KBS는 본사에 항공2호기가 있기에 서울에 취재를 요청하였고 현장에서 들어오는 CCTV화면을 확보해 대전 보도팀에 그림을 송출할 수 있게 하였다. 그리고 그 날 전국에 TV를 통해 태안 사태를 알렸고
그렇게 첫 날의 취재가 끝나갈 무렵 취재팀은 만리포 해안에 기름띠가 나타났다는 제보를 받게 되었다. 바로 현장으로 달려가 보니 이미 원유가 해안가까지 밀려와 해변을 시커멓게 오염시키고 있었다. 오전 해경브리핑 시 충분한 방제력을 동원하였기 때문에 원유유출로 인한 해안가 오염은 없을 것이라던 당초 발표와는 달리 브리핑 13시간 만에 원유가 만리포 해안까지 이동해 온 것이었다. 11시 뉴스라인에 단독으로 그 현장을 고발 하였고 이 사건이 결코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을 예감했다.
둘째 날 이미 해경에는 수많은 방송사의 촬영기자들과 취재기자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지난 95년 여수 앞 바다에서 일어났던 시프린스호 원유 유출사건(5천여 톤) 이후 국내 최대 규모의 원유 유출사건(1만2천547㎘)! 말 그대로 초대형사고이자 동시에 초대형뉴스였다. 일단 우리 팀은 전 날 풍랑주의보로 취재가 불가능했던 유조선 사고 현장에 가기 위해 해경 배에 몸을 실었다. 여전히 해상은 바람으로 인해 3m정도의 높은 파도가 치고 있었다. 1시간 30여분이 흐르자 드디어 사고현장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웅장한 자태를 뽐내며 바다 위에 한가로이 서 있는 크레인선! 흰 유증기를 내뿜으며 어제의 재앙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유유히 바다를 표류하는 유조선! 아!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유조선 앞 부분 구멍에서 많은 양의 원유가 여전히 뿜어져 나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즉시 최대한 줌인을 하여 카메라의 레코더 버튼을 누르고 높은 파도에 내 몸이 어떻게 되는지도 모른 채 유조선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분명 어제 발표에서는 더 이상의 원유유출은 없다고 했는데 말이다. 시커멓게 뿜어져 나오는 원유는 계속해서 점점 더 바다를 점령해 가고 있었다. 해상 중간 중간 방제선에서 뿜어져 나오는 유화제나 차단막으로 쳐 있는 오일펜스도 무용지물이었다. 대한민국의 방재시스템이 얼마나 허술한지가 명명백백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현장 취재를 마치고 다시 KBS 취재본부가 꾸려진 천리포로 가는 길! 해안가는 이미 시커멓게 물들어 있었고 바닷물은 이미 푸른색이 아닌 검은색으로 변해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방제 작업에 나서고 있었지만 언제 끝날지 모를 싸움인 듯 해 보였다. 날이 갈수록 전국 각지에서 모인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만리포와 학암포 신두리 사구 모항 의황리 파두리 그 외 여러 지역을 찾아가 시커먼 오일로 뒤덮인 해안가와 바위 틈새 틈새를 닦아내고 원유를 퍼 나르면서 이 재앙이 끝나기만을 기원했다. 가족단위의 자원봉사자, 재외국인, 한국에 시집온 해외 이주민들도 눈에 띄었다. 카메라에 이들의 모습을 담으면서 그 옛날 IMF때 대한민국의 저력이었던 금모으기 행사가 떠올랐다. 정말 놀라웠다. 재앙 앞에서 망연자실하기보다 더욱 단결하고 하나 되는 것이 우리 국민의 저력이 아닌가 싶다. 대한민국이 아직 살아있음을 희망이 있음을 피부로 직접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 삶의 터전을 잡고 살아온 사람들! 두 팔 두 다리 다 걷어 부치고 현장을 사수하고자 방제현장을 뛰며 살려달라고 언론사 취재진들을 붙잡으며 이야기 하던 사람들! 이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며 깊은 슬픔과 절망감이 교차했다. 원주민들은 이제 허탈을 떠나 절망으로 내딛고 있었다. 사고 10일째 이미 눈에 보이는 기름은 상당수 제거되고 해안가는 제 모습을 찾아 가는 듯 보였다. 하지만 이들의 마음엔 원유보다 더 시커먼 실망감과 절망감이 닦아도 닦아도 지워지지 않고 가슴 한 켠에 남았다.
원유의 기름띠는 어느 정도 제거 됐지만 상당수의 원유가 이미 모래 속으로 파고들었고 타르덩어리로 변질되어 바다 위 아래로 수 십 킬로 수 백 킬로미터의 해상을 떠돌고 있다. 문제는 이 원유들이 더운 여름이 되면 다시 녹아 해상으로 해안가 위로 떠오른다는 것이다.
복구를 한다 해도 이미 생태계가 제자리를 찾는 데는 10년 - 20년 이상이 걸린다고 하니 이들의 삶의 터전을 원상복구 하는 방법도, 예상치 못했던 재해로 한 순간 얻게 된 수많은 빚을 해결할 방법도 현재는 시커먼 원유처럼 캄캄하기만 하다. 이미 이들의 여름은 없어진 지 오래다. 수십 수백만의 인파로 북적였던 해수욕장의 모습도 배 한가득 파닥파닥 뛰는 물고기를 싣고 항구로 들어오는 배들의 모습도 한 동안은 이곳에서 볼 수 없을 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도 올 여름 북적이는 해수욕장의 인파와 배 한가득한 물고기보다는 카메라에 다시 떠오른 원유와 기름 덩어리들을 취재 할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도 충남 태안 앞바다와 그 일대 그리고 군산 앞바다까지 수많은 자원봉사자들과 방재 인력들이, 한 번만 더 생각하고 한 번만 더 점검하고 한 번만 더 조심했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사람에 의한 재해에 매달리고 있다. 보다 철저한 사고 조사로 다시는 이러한 일이 반복해 일어나지 않도록 그 대책을 마련하고 직, 간접 피해 주민들에 대한 충분한 보상 그리고 보다 적극적인 국민들의 참여가 이번 대 재앙을 이겨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으로 생각되어진다. 나 또한 앞으로 시청자의 눈과 귀로서 이번 태안 사태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이며 시청자의 알권리 충족에 보다 만전을 다 할 것이다.
다시는 이러한 사고가 뉴스에 등장하지 않기를 바라며… 충남 태안에서…
심각현 / KBS 대전총국 보도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