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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화재 취재기 Ⅰ>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참사 이천 물류창고 화재

‘이천에 있는 물류창고 화재. 10여명 부상 30여명 대피’

 무조건 이천으로 출발하라는 데스크의 지시와 함께 내가 들은 정보는 이게 전부였다. 화재가 발생한지 이미 수시간이 흘렀고 서울에서 이천까지 두 시간 정도 더 소요될 것이기 때문에 도착할 때쯤이면 상황이 끝나 있을 그렇고 그런 화재 취재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멀리서 보이기 시작한 거대한 검은 연기 기둥은 이런 내 예상을 여지없이 깨버리고 말았다. 생각보다 몇 배는 큰 물류 창고, 태양을 가려버릴 정도로 한없이 쏟아져 나오는 검은 유독 연기, 창고 앞 마당을 가득 채운 소방차와 구급차, 정신 없이 오가는 소방관과 취재진들. 그 동안 수많은 화재현장을 누볐지만 이건 차원이 다르다는 걸 직감했다.

 현장에 도착해 겨우 상황을 파악하고 여전히 엄청난 연기를 뿜고 있는 물류 창고 앞의 취재를 담당하기로 했다. 소방관들의 작은 움직임도 놓치지 않기 위해 취재진들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얼마 후 창고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30여명이 모두 사망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왔고 곧 사망자의 시신을 수습해 나올 것이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그러자 불이 난 물류창고 앞의 모든 취재진은 지독한 유독가스에 아랑곳하지 않고 창고에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 모였다. 처음 면 마스크만 하고 시커먼 연기가 쏟아져 나오는 현장으로 들어간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뒤로 물러선 후 방진 마스크를 하나 더 착용하고서야 창고 앞까지 다가 갈 수 있었다.

 수 십명의 소방관들이 혹시 모를 생존자를 위한 구호 장비와 소방 장비를 들고 물류창고 안을 바쁘게 오갔다. 나를 비롯한 여러 명의 영상기자와 사진기자들은 가쁜 호흡과 따가운 눈을 참아가며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소방관들에 의해 수습된 시신이 하나 둘 들것에 실려 나오기 시작했다. 비록 시신은 하얀 천으로 덮여 실려 나왔지만 시커멓게 타버린 팔다리를 완벽히 가리지는 못해 그 참혹한 모습을 계속 지켜봐야만 했다. 그렇게 수습된 시신은 모두 40구. 어떤 시신은 여전히 불길에 휩싸여 있는 듯 계속 연기를 내고 있었고 어떤 시신은 뼈만 남은 듯 앙상한 모습이었다. 새까맣게 타버린 신체의 일부를 드러낸 채 일렬로 늘어선 시신들은 오히려 내 오감을 마비시켜 마음을 무덤덤하게 만들어 버렸다.

 진화는 다 됐다는데도 여전히 연기가 심하게 뿜어져 나오는 상황. 잔불 정리 및 시신 수습을 하는 소방관들을 따라 물류창고 안까지 들어가는 등 다소 위험한 취재가 계속되자 결국 경찰이 현장을 통제하기 시작했고 우리는 폴리스라인 밖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취재를 해야만 했다. 소식을 듣고 찾아온 사망자의 유가족들이 모여들었다. 현장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울부짖는 가족들도 있었고 맥없이 주저 앉는 사람도 있었다. 그 모습을 아무런 동의 없이 다른 취재진들과 몸을 다투며 담아야 하는 내 마음은 무척이나 착잡했다. 해가 지고 연기는 조금씩 잦아들었다. 그날 뉴스를 위한 스트레이트 취재는 거의 마무리 되었지만 이것은 끝이 아니라 화재 원인과 책임 소재, 그리고 사망자에 대한 보상과 장례 문제 등 화재에 관한 본격적인 취재의 시작일 뿐이었다.

 이천으로 달려가는 차 안에서 머릿속에 그린 그림과는 규모부터가 달라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던 현장 상황. 계속해서 수습되어 나오는 시신들을 무감각하게 바라보며 취재를 해야만 했던 순간.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화재 현장이었다. 유독가스를 잔뜩 들이 마시고 위험한 현장으로 뛰어들어야 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번 화재는 너무나 어이 없이 40명의 목숨이 사라져간 이 땅에서는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할 참사였기 때문이다.

주용진 / SBS 영상취재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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