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 화재 취재기 Ⅱ>
사라진 숭례문, 우리 지성의 현주소를 보여줘
2008년 2월 10일 밤 8시 50분경. 국보 1호가 불에 타기 시작했다. 내가 숭례문 현장에 도착한 것은 12시가 거의 다 되어서였다. 현장으로 가는 차 안에서 2-3분 간격으로 걸려오는 전화 속 선배의 목소리는 다급함 그 자체였다. “지금 가고 있다니까요, 선배! 곧 도착할 겁니다.” 나의 이유 있는 답변은 선배를 전혀 안정시키지 못했다. 그 이유는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알 수 있는 것이었다. 누구라고 그렇지 않았을까.
옥상을 개방해준 YTN 덕분에 나는 불타는 숭례문을 공중에서 취재할 수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밀집한 메트로폴리탄 중의 하나인 서울의 한복판에서, 우리를 상징하고 그뿐 아니라 우리의 역사를 상징하는 숭례문이 붉은색 망토를 뒤집어쓴 채 춤추고 있었다. 5시간이 지나서, 숭례문은 바닥에 주저앉았다. 마치 아무도 책임져주지 않는 내 가정의 처녀가, 폭군의 노리개가 되어 강제로 춤추며 흥을 돋우는 운명에 놓였다가, 삶의 모든 이유를 잃어버린 채 혀를 깨물고 바닥에 쓰러지기라도 한 것처럼, 그 모습은 슬펐다. 나 뿐 만아니라 불이 날 때, 그리고 불이 꺼지고 난 후 현장을 찾은 많은 사람들의 한결같은 그 슬픔은 무엇에 근거한 것일까?
민족적, 사회적 분노와 허무는 상당히 오래 지속됐다. 그리고 그 감정들은 대부분 우리가 책임이 있다고 믿는 관계당국들 - 소방방재청과 서울시 중구청, 그리고 문화재청 등 - 을 향했다. 물론 그러한 책임추궁은 매우 타당하다. 그러나 주저앉은 국보가 단지 그들만의 문제라고 결론 내버린 사회적 분위기가 썩 개운치만은 않다. 오히려 숭례문 화재가 그동안 우리 사회가 축적해온 지적, 문화적 정신적 수준을 단적으로 드러내주었다고 볼 수는 없을까?
우리의 민의를 대변한다는 국회가 문화재청에 내준 전체 예산 규모는 4278억 원이다. 이는 정부 전체 예산의 0.19%에 불과하다. 프랑스의 경우 문화재 복원비용으로만 5천 6백억 원을 쓰고 있다. 234개 지자체 중 문화재 전담부서를 두고 있는 곳은 단 4곳밖에 없을 정도로, 우리의 문화재 관리는 허술했다. 그러한 관행과 현실로부터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 한명 한명의 시민들이 완전히 자유롭다고 할 수는 없다. 우리가 무관심하고 그 중요성을 잊고 있는 동안 우리가 보수하고 후손에 돌려줘야 할 문화는 조금씩 훼손되어왔다.
많은 사람들이 한 사회를 평가할 때 국민총생산이나 무역규모, 기업의 투자 같은 것들을 손쉽게 지표로 삼지만, 그러한 것들이 한 사회의 진면목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오히려 문화 - 총체적 의미에서의 - 야말로 그 사회의 지적 성숙도, 시민의식, 정신의 깊이를 가늠케 하는 진정한 척도라 할 수 있다. “우리도 최선을 다했다.”는 어느 소방관의 항변은 그야말로 유아적이고 천진난만하다. 그러나 철부지 같은 한 소방관의 말에는 문화적으로 지적으로 그 깊이가 매우 얄팍한 우리의 현실을 정확히 꼬집는 것 같기도 해 씁쓸했다. 적어도 이번 화재를 통해 단지 한 단면만을 보고 또 다른 측면을 보지 못하는 눈은 정확하지 못하다.
불을 끄지 못하고 허둥대는 소방관의 모습에는 적어도 문화의 보수와 질적 성장을 외면해온 대한민국의 모습이 오버랩 돼있다. 사라진 국보는 우리 사회 지성의 현주소를 상징하는 거울인지도 모른다. 화재 관련 당국을 합리적으로 문책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우리 사회가 저마다의 방기된 책임에 대해서도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것이 어쩌면 600년을 산 민족의 선생이 자신을 태우면서 우리에게 남기고 싶은 교훈은 아니었을까.
김정은 / KBS 보도본부 영상취재팀 기자